"공부처럼 일도 잘하겠지" 우리가 학벌을 읽는 '신호'

2026. 2. 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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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신호발송 및 선별이론
졸업과 입학 시즌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보통 집 근처에서 다니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경우 좋은 학교에 가려면 몇 년씩 준비해서 입시를 치러야 한다. 다음 주면 상당수의 청소년이 신입생이 되어 원하던 학교에서 첫 수업을 들을 것이다. 이들에게 먼저 축하와 격려의 인사를 전한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너는 왜 열심히 공부하니”라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좋은 대학에 가려고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좀 더 원대한 꿈을 품고 순수한 열정으로 공부를 해주면 좋으련만, 현실적으로 한국의 중고교 교육은 대학 입시에 최적화된 지 오래다. “그럼 너는 왜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니”라고 물으면 역시 십중팔구는 “돈 잘 벌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으려고요”라는 답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해 과외를 하는 영화 ‘기생충’의 등장인물. 노동시장의 신호가 제 역할을 못하는 부조리한 상황을 꼬집는다. [사진 CJ ENM]
실제로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그렇지 못한 대학을 나오거나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다. 다른 직군에 비해 평균 급여가 높은 직업,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정년까지 일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 등등. 그런데 여기서 ‘좋은 대학’의 역할이 뭘까. 이름난 대학에는 정말 ‘능력 있고 노력하는 똑똑한 학생’만 모여 있을까. 의외로 ‘운 좋은 학생’도 있지 않을까. 원래 삶이라는 것 자체가 노력과 운이 뒤섞인 것이 아니던가.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한 영화 ‘기생충’에서는 노력보다 운의 역할을 크게 보는 관점이 드러난다. 주인공 기택은 “38선 아래로는 골목길까지 훤하고” “코너링이 훌륭한” 운전실력을 갖고 있지만 대기업 임원 차를 운전했다는 경력은 꾸며낸 것이고, 아들 기우는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했지만 고등학생의 과외선생으로는 별 부족함이 없다. 학위증이나 경력증명서가 실제 능력과 큰 관련이 없다는 시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채용 과정 정보의 비대칭성 크게 발생
그 이유가 무엇이든 명문대 출신이 노동시장에서 고임금을 받는다는 통설이 일단 자리 잡고 나면 뒤집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A라는 회사에서 B대학 출신을 많이 뽑는다는 것이 알려지고 나면 B대학에 진학하려는 고교생이 많아질 것이고, 경쟁을 통해 B대학 입학생의 평균 학업성취도는 실제로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 A회사 입장에서는 B대학 출신을 뽑을 유인이 더 커지는데, 이것을 아는 고교생들은 B대학에 들어가려고 더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다. 대학 서열화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누구나 하지만, 한번 정립된 서열을 바꾸는 것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핵심은 B대학이 어려운 경쟁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A회사는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앞으로 성실하게 일을 잘할 사람을 골라 뽑고 싶어한다. 그런데 어떤 지원자가 B대학을 졸업했다면 대학 입시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학창 시절에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매우 열심히 공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B대학의 졸업장은 그 지원자가 성실한 사람이며 앞으로 일을 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나타내는 ‘신호’가 된다.

이러한 논의를 일반화하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신호발송(signaling) 및 선별(screening) 이론이 된다. 시장에서 달걀 한 판을 산다고 해 보자. 소비자 입장에서 서른 개의 달걀 중 깨진 것이 하나도 없는지는 포장을 열어보아야 알 수 있고, 겉은 멀쩡해도 속이 상한 것이 있는지는 집으로 돌아가 달걀을 깨어 요리에 넣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달걀을 생산한 농민, 가게까지 달걀을 실어온 유통업자, 마트에서 달걀을 진열한 직원 등은 달걀의 신선도나 깨짐 여부에 대해 소비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했다고 한다. 거래 당사자 중에서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정보가 부족한 쪽에서는 원하는 정보를 알아내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달걀을 사기 전에 종이박스를 열어 깨진 것이 없는지 확인해 보고, 유통기한이나 생산 일자를 이용해 신선도를 짐작한다는 얘기다. 신선식품을 살 때는 매장이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되는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럴 때 생산 일자나 매장 청결도 등을 ‘신호’라고 하고, 이런 신호에 따라 본인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과정을 ‘선별’이라고 부른다.

노동시장에서 기업이 근로자를 새로 채용할 때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특히 크게 발생한다. 지원자는 본인이 어느 정도 성실한 사람인지, 앞으로 얼마나 열심히 그 회사에서 일하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기업 입장에서는 서로 비슷해 보이는 지원자 중에서 어떤 사람이 직무에 잘 맞고 앞으로 성실하게 일할지 가려내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기업은 지원자의 성실성이나 직무 적합성 등 ‘숨겨진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신호를 찾으려 시도한다. “나는 성실합니다”라는 자기소개서는 누구나 그렇게 쓸 것이기 때문에 큰 효과가 없지만,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하는 것은 지원자의 성실성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고, 전공이나 공모전 참가 경력 등으로 직무 적합성을 선별할 수 있다. 이외에도 기업은 적성 검사나 심층 면접, 인턴십 등을 총동원하여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신호를 찾아내려 애쓴다.

이 논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이 이런 신호들을 활용해서 지원자를 선별한다는 것이 알려지고 나면 지원자는 남들보다 자기가 그런 신호를 더 잘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된다. 결국 이것이 입시 지옥의 출발점이다. 기업이 선호하는 대학, 선호하는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중고교 기간 내내 밤새워 공부하고 대학에 가서도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이러한 노력이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만약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지식과 지혜를 쌓기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인재들이 노동시장에서도 좋은 신호를 보내어 좋은 직업을 갖게 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그리 나쁠 것이 없다. 경쟁은 힘들지만 경쟁 자체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그렇다면 경쟁이 사회의 발전을 돕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그런데 수능시험에서 특정 유형의 문제를 기계적으로 잘 풀도록 연습하는 것이 진정 개인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공부일까. 청춘의 시간을 몇 년간 온전히 바쳐 대학 졸업장이라는 신호를 따냈는데 실질적으로 인적자본은 쌓지 못했다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낭비가 될 것이다.

부모 재력이 입시 영향 미치는 것도 문제
이런 신호들이 본인의 노력과 별 상관없이 운에 따라 얻어진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사교육 시장의 과열을 우려하는 이유가 이것인데, 학생 본인의 능력과 노력 외에도 부모의 재력이 대학입시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명문대 졸업장이 능력과 성실성의 신호가 아니라 운 좋게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신호가 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결국 교육개혁을 할 때는 학위라는 신호가 노동시장에서 선별의 주요 수단임을 염두에 두고 기본 방향을 잡아야 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행위가 실제로 지식과 지혜를 쌓는 과정이 되도록 하고, 입시의 성과가 운보다는 본인의 능력과 노력에 좌우되게 해야 한다. 단순히 입시 문제를 쉽게 낸다든가 기업에 블라인드 채용을 강요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가 어느 신호로 무엇을 선별하는지 최대한 잘 볼 수 있게 하고, 그 신호를 발송하려는 개인의 노력이 본인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입시 지옥의 궁극적 해결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졸 근로자가 안정적으로 중산층 소득을 얻을 수 있게 될 때 신호 발송을 위한 경쟁은 한결 약화될 것이고 한국의 고교생들도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태환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했다. 주변의 사회문화 현상을 경제학으로 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SERICEO에서 5년 간 ‘세상만사 경제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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