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의 딸마저 공신한테 ‘분배’…단종 숙부 세조의 악마성
조카 죽이고 사육신 처와 딸을 ‘분양’한 임금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개봉으로 재조명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한 이후 경기 남양주시 광릉은 여러 지도 앱에서 ‘별점 테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덤 주인공은 세조. 권력을 탈취하고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누구보다 잔혹했던 왕으로 기억됩니다.
조선멤버십 인기 시리즈 ‘유석재의 악인전’은 어린 단종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이유(李瑈·1417~1468)가 저지른 악행을 소개합니다.
1453년 10월,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적인 김종서·황보인 등 대신들과 혈육인 안평대군을 동시에 제거합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수양대군 일파는 단종을 압박해 왕위를 물려받는 형식으로 왕좌를 찬탈합니다. 1456년에는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돼 성삼문·박팽년 등 사육신을 비롯한 신하들이 혹독한 고문 끝에 처형됐지요.
그런데... 1456년 9월7일 세조실록에 눈을 의심케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세조가 의금부에 명해 사육신 사건으로 처형된 신하들 유족 중 아내와 딸을 한확·정인지·한명회·홍윤성 등 각 공신에게 노비나 첩으로 분배합니다.
“성삼고(成三顧)의 아내 사금(四今)및 한살 된 딸은 우찬성(右贊成) 정창손(鄭昌孫)에게 주고...”
성삼고는 성삼문의 친동생인데, 그의 한살배기 딸을 단종 복위 모의를 세조에게 고변한 정창손에게 넘긴 기록도 있습니다.
세조는 말년에 악행을 일부 후회하는 듯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죽기 전 고통스러운 피부병을 앓아 고생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그가 유난히 불교를 숭상한 것도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은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하늘이 내린 벌은 아니었을까요.
세조의 악행과 최후, 그리고 사후 평가는 조선멤버십에 가입하고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가 쓰는 ‘악인전’ 본편에서 확인하세요.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