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락 안 해?” 서운한 한국, “지금 괜찮아?” 먼저인 일본
● 김일성 사망과 오빠의 맹장염, 한국의 첫 기억
● 스마일 0엔과 혼밥,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
● 성(姓) 제도와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온도차
● 한일 두 강의 양쪽에 발을 딛고 선 ‘다리’

김일성 사망과 오빠의 맹장염, 한국의 첫 기억
"엄마가 오빠 곁을 지키느라 그렇게 가고 싶었던 롯데월드에도 못 가고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낯선 환경에 당혹스러웠는데 간호사 언니들이 너무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감동했어요.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간 여행이었지만 너무 다이내믹하고 활기찬 분위기와 친절한 한국분들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아 대학생이 되면 꼭 서울로 유학을 와야겠다고 생각했죠."그녀는 이 결심을 실행에 옮긴다. 대학교 2학년이 되자 휴학하고 한국으로 유학을 온 것.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이었다. 서울은 과연 역동적이었다. 연말 대선에서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극적으로 당선됐다. 그녀는 서울의 활기에 흠뻑 빠져 지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인생 전체를 바꾸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사히신문에 입사해 기자가 됐다. 원래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문화부 기자를 하면서는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를 알리는 기사를 쓰게 됐다. 하지만 전문성을 갖기가 어려웠다. 부서 이동도 잦았고 맡은 분야도 바뀌었다. 오랜 고민 끝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아예 신문사를 그만두고 9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왔다.
거의 매달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며 살고 있는 세월이 올해로 9년째. 한국 영화와 관련한 박사학위도 땄고, 영화를 비롯해 한국 문화를 일본에 알리는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그녀를 서울에서 만났다. 지난해 펴낸 '지극히 사적인 일본'이라는 책 이야기부터 꺼냈다.
책 제목이 말해 주듯 한일 양국을 오가며 느낀 두 나라 사람들의 섬세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공감도 되고 재미있었어요. 사실 일본분들하고는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서로가 참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거든요.
"저도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 몇 가지가 있어요. 예를 들어 한국 친구들이 자꾸 저한테 '연락을 자주 안 하니 서운하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몇 년 전 수술을 받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친구들이 '왜 그러냐' 묻길래 '수술했다'고 하니까 대뜸 서운하다는 거예요. 왜 연락하지 않았느냐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 내가 뭘 잘못한 건가, 미안해져요. 저는 일본에서도 별다른 용건이 없으면 연락을 잘 안 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다고 말하는 일본 사람들은 별로 없거든요.
사실 '서운하다'는 말은 일본어에는 없는 단어입니다. '사비시이'라는 말이 있긴 한데 그건 '쓸쓸하다, 외롭다'는 뜻이라 뉘앙스가 좀 다르지요."
서운하다는 건 상대에게 뭔가를 기대했지만 충족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죠. 일본 사람들은 그런 기대가 없는 건가요.
"그렇게 볼 수도 있지요. '수술받았다'고 이야기했을 때 일본 친구들의 첫 반응은 '지금은 괜찮아?' 였어요. 한국분들은 정이 많다고 할까요. 친한 한국 친구로부터 '집을 같이 쓰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는데 속으로 좀 놀랐어요. 그 따뜻한 마음씀씀이에 우선 놀랐고, 문화 차이에 놀랐지요. 일본에선 가족 말고 그런 경우가 없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외롭다는 감정을 고립 등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은 지방마다 특색이 강해서 제 이야기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개인주의가 한국보다 강한 건 맞는 것 같아요. 지금이야 한국에서도 '혼밥'이 자연스럽지만 아직도 일본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혼밥이 너무 일상적이어서요."
왜 그럴까요.
"함께 밥을 먹으려면 일단 약속을 해야 하고 메뉴도 맞아야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신경이 쓰이잖아요. 내가 고민하는 것을 상대방도 똑같이 고민한다고 생각하면 그게 또 부담이 되고. 여기에는 지역 차이가 있긴 해요. 오사카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도쿄 사람들은 '혼자'에 익숙하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혼자 밥 먹었다'고 하면 '왜 나를 부르지 않았느냐, 누구랑 먹었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에서는 그런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아요.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고독한 미식가'는 사실 일본에서는 그렇게 인기 드라마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한국분들이 좋아하게 된 건 당당하게 '혼밥'을 즐기는 것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요."
책에 고부 관계에 대한 경험을 써놓으셨던데, 시부모가 자식 부부에게 아이를 언제 가질지를 전혀 물어보지 않는다는 대목이 우리와 또 다른 정서로 읽혔어요.
"마음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래요. 제 시부모님도 아이를 언제 낳을 거냐,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거냐 물어본 적이 없으세요."
스마일 0엔과 혼밥,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
일본분들은 속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던데."맞아요. 저는 그 점에서 한국이 좋아요(웃음). 도대체 일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도 모를 때가 많으니까요. 초창기 유학할 때 한국인 남자 친구를 사귄 적이 있는데 의사소통 방식 차이로 헤어졌어요."
더 듣고 싶은 이야기네요.
"일본 사람들은 불만이 있어도 참는 경우가 많아요. 불만을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른다고 해야 할까…상대방이 알아서 눈치채기를 기대하면서 되도록 싸우지 않고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남자 친구를 사귈 때 그게 잘 통하지 않았죠. 저는 불만을 계속 마음속에 담고 있었고 어떤 식으로든 전달이 되겠지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에 '아, 더는 못 만나겠다' 결심이 서서 '헤어지자'고 하니까 너무 놀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유를 설명했더니 '그동안 왜 그런 이야기를 안 했느냐'며 엄청 화를 냈어요.
저는 직접적으로 뭔가를 표현하는 게 서투르기도 하고, 특히 상대방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하면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먼저 생각해요. 그런 걸 배려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상대방이 직접적으로 의견을 이야기하면 많이 놀라요. 저도 처음엔 적응이 안 됐지만 이제는 일본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제 남편은 제가 한국에 살면서 너무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해요(웃음)."
일본분들이 예스, 노가 명확하지 않아 곤란했던 경험은 저도 있어요.
"일본에서는 '검토하겠다'고 하면 대부분 거절이라는 뜻이죠. 저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어요. 인터뷰를 신청했는데 답변 메일을 아무리 읽어도 예스인지, 노인지 알 수 없던 적이 있으니까요. 어떻든 일본 사람은 완곡어법을 많이 쓰는데 그게 좀 더 품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교토 사람들을 떠올리는 분이 많아요.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부부즈케(오차즈케)죠. 밥에 따뜻한 녹차를 부어 먹는 음식인데, 교토 사람이 집에 놀러 온 손님한테 '부부즈케 먹을래요?" 하면 '슬슬 집에 가달라'는 뜻이라고 해요. 그만큼 교토 사람들이 품위 있고 완곡한 표현을 쓴다는 거죠. 나쁘게 말하면 속마음을 알기가 어렵다는 거고요.
2024년 일본에서 고치노 겐토의 '하이 요로콘데'라는 노래가 주목받았는데 '네 기꺼이'라는 뜻이죠. 가사에 위로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미소를 지으며 '네 기꺼이'라고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화를 내거나 울고 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죠. 가사에 '분노를 품어도 다정함이 이기는 당신'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화가 나도 참고 웃어주는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죠."
그는 연극 대본에서도 한일 간의 정서 차이가 있다고 했다.
"배우이면서 한국에서 극단을 운영하는 고수희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일본 희곡만 무대에 올리는 극단인데 배우들이 일본 사람들의 '돌려서 말하기' 혹은 '속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는 대사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니 확실히 그런 장면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책에 소개한 '스마일 제로(0)엔' 에피소드가 재미있었어요.
"제가 책에 소개한 맥도날드 '스마일 0엔' 메뉴는 1980년대 오사카 맥도널드 지점 직원이 낸 아이디어였는데 나중에 전국에 퍼졌죠. 메뉴판에 '스마일 0엔'을 적어놓은 거예요. 한마디로 미소는 공짜라는 거죠. 한국 사람들에게 이걸 말했더니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어요. 일본 사람들은 일종의 서비스로 생각하면 되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반응이었고요. '스마일 0엔'은 일본에서도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해서 없어졌는데 최근 다시 부활하더군요.
일본 사람들, 특히 일본 여성들이 미소 짓는 표정을 많이 하는데 이것도 속마음이야 어떻든 얼굴은 웃고 있는 거죠. 저도 미소 때문에 오해를 받은 적이 있어요. 유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는데 하숙집 앞에서 도로 공사를 하는 분에게 매번 미소로 인사했더니 나중에 제 연락처를 물어 보시더라고요(웃음)."
일본 식당이나 호텔에서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 건 배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선 '손님은 왕'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선 '손님은 신(神)'이라고 해요. 때로 한국 사람들이 불친절하다고 느낀 적도 있지만 한국에 오래 살다 보니 일본의 접객 문화가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일본분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점은 있어 보여요. 일본인 친구한데 당일에 약속 장소를 바꾸려다 분위기가 싸해진 경험이 있어요.
"대부분 누구랑 밥을 먹으려면 일주일 이상 전에 약속을 잡지요. 시간과 장소도 미리 정하고요. 그런데 한국은 '번개'(웃음)가 많아요. 일본은 정치사회적으로도 변화를 싫어해요. 계획이 바뀌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죠."
제 친구가 히로시마에서 3개월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짐을 우체국에서 부쳤는데 하루 종일이 걸렸대요. 박스 안에 들어 있는 옷들의 구매 가격, 하다못해 치마의 경우 길이까지 적으라고 해서요.
"행정은 너무 문제가 많죠. 규칙대로, 매뉴얼대로 한다고는 하는데 그게 왜 필요한지 생각해야 되지 않나 싶어요. 하지만 다들 '뭔가를 바꾸려면 너무나 큰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성(姓) 제도와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온도차
저는 여성 입장에서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르는 문화를 젊은 일본 여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요."저도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라 '이나이 나야'가 됐죠. 하지만 여기자들은 그래도 대부분 결혼 전 이름을 그대로 써요. 저도 집필, 출연, 강연 등 외부 활동을 할 때는 원래 이름을 씁니다. 말씀하신 대로 일본 여성들은 결혼하면 성이 바뀌니까 면허증, 여권, 통장, 신용카드 등 명의를 다 바꿔야 해요. 대부분 창구에 직접 찾아가야 해서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며 생소한 절차를 밟지요.
일본에서는 혼인신고를 할 때 입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다른 사람 호적에 들어간다는 뜻이죠. 여기에 대해 별로 거부감이 없거나 오히려 그 자체를 결혼의 상징처럼 여겨서 행복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요즘은 많이 바뀌고 있어요. 여론조사를 하면 70%가 '개인이 선택하도록 하자'고 답합니다. 한국이 미투 운동을 통해 변하는 걸 직접 본 저로서는 한국 페미니즘 소설을 읽으며 용기를 얻은 적이 많아요."
슬슬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기자 일까지 그만두고 왔으니 한국이 좋아서 인생 행로까지 바꾼 셈인데.
"신문사에 있으면 쓰기 싫은 기사도 써야 하고, 관심없는 부서나 지역에 가서 일해야 하죠. 고민이 많았지만 제게 맞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저는 외가가 영화관을 해서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욘사마 붐이 일기 전부터 한국 영화를 좋아했어요.
문화부 기자를 하면서도 한국 영화감독과 배우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많이 썼는데 '기생충' 이전에는 한국 영화를 잘 모르는 일본분이 많았지요. '설국열차'가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하겠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봉준호가 누구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아마 봉 감독을 제일 먼저 제대로 인터뷰한 일본 기자는 제가 처음일 거예요. 운이 좋았던 건데, 그냥 제가 재미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이제는 많은 사람의 관심사로 증명돼 보람이 있어요."
선구안이 있었네요.
"신문사 선배들도 그걸 되게 많이 칭찬해 줘요. 그만둘 때는 한국 영화 공부해서 뭘로 먹고 살 거냐고 다들 걱정했는데 말이죠(웃음)."
지금 일본의 한류에 대한 관심은 '겨울 연가' 때와 어떻게 달라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희 세대랑 정말 다른 게 태어났을 때부터 한류 붐을 체험했죠. 저는 이 중에서 문학이 제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괜찮은 문학작품이 있어도 번역을 잘 해야 알릴 수 있잖아요. 한류 붐이 일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번역자가 거의 없었어요. 지금의 한류는 그냥 일시적인 붐이 아니에요."
요즘은 어떤 일을 하나요.
"한국의 영화감독, 배우들 인터뷰도 하고 한국에 대한 칼럼도 쓰고 있어요. 서울에서 작은 책방을 하나 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주변에 일본의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어 하는 분도 많아요. 작은 상영회 같은 것도 정기적으로 열고 싶어요."
두 강의 양쪽에 발을 딛고 선 '다리'
한일 관계는 정치 외교적으로 부침이 심했는데."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신문사 안에서도 한국 관련 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아요. 제가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데 10여 년 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었잖아요. 문화부에서 한일 간에 우호적인 내용을 담은 기획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안 좋아서 다 취소됐어요. 마음이 답답했어요."
너무 친한적 발언을 하다 SNS에서 일본 사람들한테 비난받을 때도 많다고 들었어요.
"피할 수 없더라고요. 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비난받는 것 같아서 '눈치보지 말고 하자' 이렇게 생각해요. 주변에서 저한테 '한국 사람 다 됐네' 하는 말을 자주 들어요. 한국어를 잘한다는 칭찬일 때도 있지만 '왜 이렇게 뻔뻔해졌어' 하는 의미일 때도 있어요(웃음). 꼭 나쁜 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제 의견, 제 희망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처음 한국에 유학 왔을 때 한국분들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상처받곤 했는데 지금은 그게 편해요. 오히려 일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조심스럽죠."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문화 사이에서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서로의 정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강의 양쪽에 발을 딛고 선 '다리'처럼 보였다. 흔들리지만 서로를 건너가게 해주는 다리 말이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을 향한 성실한 관찰과 애정을 갖고 연결자 구실을 하는 그와 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두 나라 사이의 오해를 조금씩 녹일 수 있음을 확인하는 대화였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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