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선수들 헌신에만 기댈 건가”…‘제2의 최가온’ 만들기 위해선

한국 스노보드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최가온), 은메달(김상겸), 동메달(유승은)을 각각 획득하면서 ‘황금 세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는 1960년 스쿼밸리 대회부터 올림픽 무대에 도전해 온 한국 설상 종목의 역대 최고 성적표이기도 하다.
‘역대급 쾌거’라는 수식어 뒤에는 냉정한 과제가 남아 있다. 메달의 환희가 한국 스노보드의 구조적 한계를 단번에 지워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훈련 인프라와 저변, 체계적 육성 시스템은 여전히 선진국과 격차가 있다는 평가다. 당장 인접국 일본만 보더라도 전용 훈련 시설과 기업 후원, 장기 육성 프로그램 등에서 한국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 회장을 지낸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은 분명 큰 힘이 됐다. 하지만 특정 기업의 후원에 의존하는 구조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세계무대에서 꾸준히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중장기 로드맵과 안정적인 재정 지원,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주성택 가천대 체육학과 교수는 27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스노보드 종목은 국제대회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훈련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실정”이라며 “국내에는 상설 훈련장이 거의 없고, 계절과 지역에 따라 훈련 접근성이 크게 제한된다. 이로 인해 선수들은 안정적인 훈련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현 상황을 짚었다.
이어 주 교수는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부족해 상당 부분을 민간 후원에 의존하고 있으며, 정부의 재정 지원 역시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선수 육성 환경 전반이 개인의 헌신과 희생에 기대고 있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반면 일본 등 주요 경쟁 국가는 국가 차원의 에어 매트 랜딩 시스템으로 안전한 상설 훈련 시설과 중장기 육성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번 대회를 통해 설상 종목의 열악한 훈련 환경을 인지했으며, 세밀한 개선을 통해 안전하고도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빙속의 부진은 이승훈, 김보름 등 오랜 시간 대표팀을 이끌어온 베테랑들의 은퇴 이후 세대교체가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전략적인 레이스 운영과 압도적인 지구력을 선보인 반면, 한국 선수들은 결정적인 순간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대표팀은 이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장거리 종목의 경쟁력을 재점검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그간 한국은 올림픽을 앞두고 단기성과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정 스타 선수에 의존하는 방식은 일시적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종목별 저변 확대와 세대교체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최소 8~1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선수 육성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미숙 한국스포츠과학원 스포츠정책연구실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대회 후 결과 공유 자리를 마련한 후, 동계 종목 ‘세부종목별’ 진단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며 “세부 종목에 대한 철저한 진단만이 앞으로의 4년 혹은 8년 동계올림픽에서의 성과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거둘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첫 번째 선수 발굴과 저변 확대 방안으로 ‘학교·클럽 연계 시스템’을 꼽았다. 초·중·고 단계에서 스키·스케이팅 클럽과 연계한 선수 발굴 체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지역 스포츠클럽 활성화’를 거론했다. 생활체육과 전문체육을 연결해 저변을 넓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이는 단순히 엘리트 선수 양성에 그치지 않고, 동계 스포츠 문화 자체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스포츠 과학의 도입과 인프라 개선도 필요하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이미 데이터 기반 훈련과 부상 예방 시스템을 일상화했다. 이에 발맞춰 한국도 체력·기술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스포츠 의학과 과학적 분석을 통한 체계적 관리로 ‘부상 예방 시스템’ 강화도 중요하다. 지역 거점별 상설 에어매트 랜딩 시스템 설치로 스키·스노보드 훈련 환경을 개선하는 ‘훈련 인프라 혁신’이 요구된다.
주 교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체육 관련 기관들의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들이 따로 움직여서는 온전한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유기적 협력 체계를 마련해 선수 발굴부터 훈련, 지원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야 한다. 단순한 행정적 조율을 넘어, 정책과 예산이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구조가 연결돼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정부에서 대한체육회와 종목단체에 국가대표 선수 훈련비와 선수촌 운영 예산을 지원함으로써, 우리 선수들이 경기력을 높이고 종목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가대표 훈련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성과를 바탕으로 지원 규모를 조정하는 방안을 비롯해, 종목별 성과 및 육성 의지와 예산 지원이 실질적으로 연동될 수 있도록 대한체육회 및 각 종목협회와 협력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제대회 참가와 해외 전지훈련 기회 확대, 종목별 지도자 확보 및 스포츠 과학 기반의 훈련 지원 등 경기력 향상에 필요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준영 기자 kjykj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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