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새집 짓자"…은마아파트 화재에 들끓는 민심 [돈앤톡]
아파트 노후화·화재 위험성
전문가 "재건축이 정답인가에 대해선 '의문'"
방독면 의무 비치 등 실효성 있는 대책 주문

"화재에 무방비인 구축 아파트들, 이제는 정말 빨리 재건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은마아파트에 거주하는 50대 B씨)
지난 24일 발생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화재 사고로 17세 여학생이 숨지는 참변이 발생했다. 소방 당국은 신고 접수 후 1시간18분 만에 진화를 완료했으나 인명 피해를 막지는 못했다. 특히 희생된 A양이 불과 일주일 전에 해당 아파트로 이사 온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노후 아파트의 화재 취약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낡은 건물에 열악한 주차장 때문에 학생이 희생된 것 아닌가" "새 건물이었다면 대처가 더 잘됐을 텐데 안타깝다" "재건축은 이제 생존권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노후 아파트 단지 정비와 함께 더욱더 신속하고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지목된 것은 화재 초기 진압의 핵심인 스프링클러의 부재였다. 1979년 준공된 은마아파트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던 시기에 지어졌다. 소방 관련법은 1990년 도입 이후 여러 차례 강화돼 2018년에야 6층 이상 전 층 설치가 의무화됐다.
다만 은마아파트와 같은 노후 단지는 소급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은마아파트를 비롯한 서울 내 노후 단지는 강화된 소방법의 소급 적용을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대다수의 구축 아파트 단지가 겪는 고질적인 주차난 역시 구조적 장애물로 작용했다. 4424가구의 대단지임에도 지하 주차장이 없는 은마아파트는 야간과 새벽 시간대 이중·삼중 주차가 일상화돼 있다. 이번 화재 당시에도 단지 내 협소한 진입로와 주차 차량으로 인해 소방차의 접근과 사다리차 전개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 양식의 진화와 아파트 노후화 사이의 괴리도 화재의 잠재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를테면 40여 년 전 설계된 전기 배선 용량은 오늘날 가전제품의 폭발적인 증가와 소비 전력량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시공업계 한 관계자는 "아파트 설비가 노후화된 상황에서 현대의 높아진 기계 설비 스펙을 따라가려면 적절한 유지보수가 필수적이지만, 구축 단지는 기존 프레임의 한계로 인해 근본적인 공사보다는 옛 설비에 보완·추가하는 방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며 "소방 점검을 통과하더라도 신축 아파트보다 누전이나 합선 가능성이 높고, 화재 시 불길을 차단하거나 연기를 빼내는 제연 설비 등도 최신 기준에 비하면 미흡한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설비는 현대화될수록 용량이 늘어나는데 기존 설비의 노후화와 유지보수 과정에서 놓치는 부분이 맞물리면, 신축 아파트에 비해 대형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번 화재 현장에서는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소리가 너무 작아 대피 안내를 받지 못했다는 입주민의 증언이 잇따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재건축 조기 추진'이 정답인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재건축은 권리관계가 복잡하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사안인 만큼, 당장 사고를 막을 시간적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화재 인명 피해의 주된 원인은 화염 그 자체보다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이다. 특히 일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질 경우 단 1~2분 내에도 치명상을 입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화재 초기에는 농도가 낮더라도 밀폐된 아파트 거실이나 복도에서는 불과 3~5분 만에 인체에 치명적인 수준까지 도달하게 된다. 결국 골든타임 내 대피를 결정짓는 것은 연기 차단 여부인 셈이다. 이는 신구축 아파트가 동일하게 노출되는 위험이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우선 "신축 아파트에서 스프링클러가 터져 사고를 막았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집 안에 있는 소화기 같은 이론적인 소방 인허가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스프링클러가 없는 노후 아파트가 여전히 많지만, 이들이 단기간에 재건축될 가능성은 작고, 신축 고층 아파트 역시 화재 시 계단에 연기가 들어차면 대피가 어렵긴 마찬가지"라며 "희생자 대부분이 집 안에서 연기를 흡입해 질식사하는 만큼, 이제는 국가적으로 세대 내 방독면 비치를 의무화하고 정부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현재 소방법상 의무인 소화기처럼, 생명과 직결된 실질적인 장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론적인 소방 점검과 인허가 규제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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