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으니 감형?… 윤석열 판결이 재소환한 '고령 감경' 논란

신은별 2026. 2. 2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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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내란 우두머리 혐의 무기징역 선고하며
"65세 비교적 고령" 유리한 양형 참작 사유 들어
과거 판결문·최근 양형 흐름과 배치 '특이 판단'
尹 기소 특검도 "고령 양형에 참작은 명백 잘못"
'연령 기준' 정하기도 애매... "노령, 고민 필요성"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가 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판결 선고 주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현재 65세의 비교적 고령입니다."

지난 19일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지귀연)는 '유리한 양형 참작 사유'를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초범이고 내란 계획 대부분이 실패한 점과 함께 '비교적 나이가 많다'는 점을 감경 사유로 언급한 것이다.

'65세 고령 감경 판결'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교적 고령인 65세' 대목에서 실소가 터졌다. 윤석열이 55세였다면 사형을 선고했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초범·고령 등 이유로 감형하는 게 국민 법감정에 부합하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다수의 형사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60대를 고령이라고 판단한 경우가 드물었고 최근 양형 흐름과도 결이 달랐다.

이번 판결은 양형 과정에서 고령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이냐에 대한 논란을 촉발했다. 그간 '고령 감형'이 법관의 지나친 권한 행사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던 만큼, 윤 전 대통령 판결을 계기로 양형 기준을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해 선고를 받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65세로 고령이라는 점'을 유리한 양형 참작 사유로 들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60대 고령 감경', 공개된 10년치 판결문엔 없었다

법원이 피고인의 형을 정할 때 연령을 고려하는 건 당연하게 여겨진다. 형법 제51조는 양형 시 참작해야 하는 조건 중 하나로 '범인의 연령'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령'이 법률상 감경 사유로 명시된 건 아니다. 다만 같은 법 제53조는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어 법관 재량에 따라 고령을 양형에 유리한 참작 사유로 활용할 수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고령이라고 꼭 감경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예 배제하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간 판결에 비춰볼 때 지귀연 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을 고령으로 판단해 양형에 참작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공개된 10년치 판결문 중 '고령'과 '유리한 정상' 문구가 동시에 포함된 판결문 29건을 분석한 결과, 60대를 고령이라며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한 판례는 한 건도 없었다. 판사가 '고령'이라며 피고인의 나이까지 적시한 일부 판결문에 따르면, 정상 참작된 고령의 범위는 만 70~80세였고, 평균 나이는 74.2세였다. 법원행정처가 내부 심의를 거쳐 결정한 판결문만 법제처를 통해 공개되는 만큼 전수 분석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법원에서 바라보는 고령의 범위가 70대 이상이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60대를 고령으로 적시한 케이스는 2009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당시 만 63세) 판결문이 마지막이었다. 지 부장판사가 "65세의 비교적 고령"(윤 전 대통령), "66세로 고령"(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라며 돌연 '60대 고령 판단'을 17년 만에 부활시킨 셈이다. 정지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은 "요즘 시대의 65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과거보다 젊은 나이라고 여겨지는데, 고령이라고 규정하니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피고인의 나이가 유리한 정상에 포함된 23건(피고인 연령이 정상 참작에 고려되지 않은 6건 제외)의 판결 가운데 21건(91.3%)의 혐의는 사기 등 '비강력범죄'였다. 전례가 없는 중범죄인 내란 우두머리 사건에 피고인의 연령을 참작한 것이 국민 상식과 괴리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법조인 출신인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내란죄는 워낙 심각한 죄이기 때문에 법정 최저형이 무기징역인데, 그런 범죄에 대해서 고령을 고려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명백한 양형 부당 사유이기에 항소심에서 재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양형 기준서 고령 삭제했는데..." 시대적 흐름 배치

최근 개정된 양형 기준에 비춰봐도 이번 판결은 이례적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3년부터 양형 기준을 별도로 정하는 범죄군에 대한 집행유예 판단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참작 사유 가운데 '피고인이 고령'이라는 문구를 일괄 삭제했다. 이는 "'어떤 범죄에서도 고령을 일률적인 감경 요소로 보지 말라'는 메시지나 다름없다"는 게 양형위원인 김혜경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얘기다. 김 교수는 "고령을 감경 사유로 두는 게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않기 때문에 양형 기준에서 고령을 제외한 것인데, 고령을 유리한 정상으로 두고 판결을 내리는 건 양형이 지향하는 흐름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양형위원회 외부의 시각도 비슷하다. 서울고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양형위원회는 상식적인 형사 재판을 위해 매년 양형 기준을 갱신하고 있는 만큼, 어떤 재판부든 위원회가 정한 양형 기준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귀연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하기 위해 고령이라는 억지 명분을 끌어다 썼다'는 비판까지 듣고 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범죄 혐의가 노화에 따른 신체 기능 저하 등과 연관된 것이라면 감형을 할 수 있겠지만 윤 전 대통령의 경우 고령과 내란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작위적인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을 기소한 조은석 내란·외환 특별검사팀도 최근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하면서 '고령 참작'을 비판했다. 특검팀은 25일 법원에 제출한 항소장에서 "형사재판에서 연령은 유기징역형을 선고할 경우 선고할 유기징역형과 피고인의 여명 연수를 비교해 실효적인 유기징역형을 산정하기 위해 고려되는 것"이라며 "단순히 범행 당시 피고인이 고령이었다는 사정은 유리한 요소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심이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에서 고려할 이유가 없는 연령을 유리한 양형사유로 참작한 건 명백한 잘못"이라고 했다.

정청래(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재판부에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체적 기준 마련 딜레마… "'고령 고민' 필요한 때"

고령을 양형 기준으로 삼을 경우 일정 부분 논란은 불가피하다. '몇 살부터 고령인지' 등과 같은 구체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재판관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기준도 없다. 대법원 관계자는 "고령이면 감형을 해주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그렇다면 몇 살부터 고령으로 봐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법관의 재량"이라고 말했다.

고령의 기준 또는 고령을 유리한 양형 참작 사유로 들기 위한 조건을 법으로 정해두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허일태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법관의 재량이 클수록 남용 가능성도 커진다"며 "들쑥날쑥한 판결이 이뤄지지 않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2023년 보고서(형법상 정상 참작 감경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를 통해 "입법자가 미리 정해 놓은 형벌의 범위에 현저히 못 미치는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어 피해자 측 또는 국민의 일반적 법감정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며 "법원의 양형 재량이 법률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상 참작 감경의 사유, 정도 및 방법 등을 형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청사 앞으로 한 남성이 지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12·3 비상계엄에 가담한 주요 피고인들의 항소심을 전담할 서울고등법원 내란재판부는 23일 가동을 시작했다. 강예진 기자

하지만 법제화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특정 연령을 고령으로 못 박아두거나 연령을 감경 요건으로 고려하기 위한 요건을 구체적으로 정하게 되면 오히려 개개인의 건강 상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다 오히려 합리적 판결과 멀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강동욱 동국대 법대 교수는 "양형조사관이 피고인의 개별 사정을 살펴보는 등 법관의 재량 남용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가 이미 갖춰져 있고, 대부분의 재판관들은 '고령→감형'으로 도식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별 법관의 해석 범위를 축소하기 위해 정상 참작 감경 요건을 법률로 정하기 위한 법안이 수차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지귀연 재판부를 거칠게 비판한 민주당에서도 현재 고령 감경 방지를 위한 입법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결국 논란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 대안은 재판부가 양형 사유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다. 강동욱 교수는 "판사들이 양형 사유를 짧게 쓰는 경향이 있는데,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지 않는 선에서 당사자들이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제대로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 판결이 특정 사건을 넘어 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 사법 체계가 연령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노인을 '힘없는 존재'로 보던 통념이 법적 판단에 잔존하는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서울고검 출신 법조계 인사)는 것이다. 정지웅 변호사는 "고령화로 인해 고령 범죄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사법부가 연령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 게 바람직할지를 세심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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