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돋보기] 부동산, 대마불사 시대는 끝났다 경량 부동산에 주목해야

‘대마불사(大馬不死)’ ‘대마(세력이 큰 돌의 집단)는 쉽게 죽지 않는다’는 뜻의 바둑 용어다. 이 말이 인공지능(AI) 시대에도 통용될까. 송길영 작가는 저서 ‘시대예보: 경량 문명의 탄생’에서 오히려 “거대하면 죽는다(대마필사)”라고 했다. 규모가 클수록 변화에 둔감하고, 둔감한 조직은 위기를 견디지 못하므로 작고 유연한 조직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은 어떨까. 부동산도 대마불사가 시장의 공식처럼 통했다. 규모의 경제, 랜드마크, 대형화 등은 과거 저금리·성장기에는 맞던 논리다. 그러나 지금 같은 저성장 국면에서 인구구조의 질적 변화(생산 가능 인구 감소, 고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AI·로봇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부동산도 산업 전반에 나타나는 경량화 트렌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겁고 느린 시스템에서 가볍고 빠른 구조로 변화를 고민해 봐야 한다.
“지리적 위치가 고정돼 있다고 용도도 고정돼야 할까. 오히려 움직이지 못하는 고립성으로 주변 시장이나 지역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시대 흐름과 시장 트렌드에 따라 가장 효용이 높은 공간으로 전환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묵직하고 경직된 투자보다는 가볍고 유연한 투자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대형 부동산의 역설
한때 부동산 시장에서 ‘대형’은 ‘안정’의 다른 이름이었다. 대규모 오피스, 대형 쇼핑몰, 랜드마크 빌딩은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공실 위험을 분산하고, 신용도 높은 앵커 테넌트(상권 활성화를 주도하는 우량 점포)를 유치하며, 장기 임대차 계약으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지금 시장 환경에서는 대마불사 공식이 오히려 역설로 작동한다. 이제 부동산은 클수록 유연하지 못하고, 매몰 비용 함정에 갇히는 구조가 됐다.
저성장과 인구구조 변화는 소비와 고용 위축을 불렀고, 이는 거대 공간을 지탱하던 앵커 테넌트 이탈로 이어졌다. 여기에 자동화·무인화 시스템으로 공간을 줄이고, 회전율을 높이는 전략으로 과거보다 대규모 공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대형 부동산이 직면한 진짜 위기는 표면에 드러난 가격 하락이나 공실률 그 자체보다 시대가 변해도 ‘바꿀 수 없다’라는 경직성이다.
즉, 대형 부동산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특정 용도로 과도하게 최적화돼 있고, 막대한 자본이 투입돼 있어 그만큼 구조변경이나 용도 전환에 엄청난 비용이 발생한다. 빠르게 바뀌는 공간 수요에 맞춰 공간을 쪼개고, 용도를 섞고, 실험적으로 운용하기 어려워 점점 시장과 엇박자를 내는 자산이 대형 부동산인 셈이다. 이미 투입한 비용이 많아 효율이 극도로 나쁜 것을 알면서도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게 되고, 이는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을 더 늦추게 한다.
가벼워야 살아남는다
앞으로 부동산 경쟁력은 ‘얼마나 높으냐’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얼마나 싸게, 얼마나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느냐’로 이동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특성의 경량 부동산을 뉴턴의 운동 제2 법칙(가속도의 법칙)의 공식인 ‘F=ma’을 적용해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F(force·외력)는 수급의 증감을 가져올 시장 변화(인구구조, 기술, 금융 환경, 소비 트렌드 등)다. m(mass·질량)은 부동산 규모나 이미 투입된 자본 비용을, a(acceleration·가속도)는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용도 전환의 유연성, 리스크 회피 능력 등)로 볼 수 있다.
규모가 크고, 용도가 고정된 대형 부동산은 시장에 변화(F)가 닥쳤을 때 방향을 틀기가 매우 어렵다. 이미 투입된 자본과 고정비(m)가 무거우므로 대응 속도(a)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반면, 규모가 작고 용도를 가볍게 가져가는 부동산은 이미 투입된 자본(m)이 가벼워 같은 외력(F)을 받아도 훨씬 빠르게 대응(a)하는 게 가능하다. 과거에는 질량(m)을 키워 힘(F)에 저항하는 ‘맷집’으로 버티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자기 무게를 줄여 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가속도(a)를 확보한 경량 부동산이 살아남는 시대가 되는 셈이다.
리테일(유통 시설) 부동산을 예로 들면,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는 소비 트렌드 변화로 매장을 리뉴얼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돼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반면, 팝업스토어(Pop-up store·일정 기간 개설 임시 매장)는 텅 빈 낡은 공장이나 소규모 건물을 리뉴얼해 콘텐츠만 교체함으로써 시장 트렌드에 즉각 대응하고 있다.
오피스(빌딩) 부동산도 대형 사무실을 짓고 대기업을 유치하는 데 집중해 왔으나 재택근무, AI 확산, 경기 침체라는 외력에 의해 주거용이나 숙박용으로 용도를 바꾸려니 엄청난 규제와 비용이 뒤따른다. 그 결과 공실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반해 최근 1인 가구 증가와 월세화 흐름 속에 리모델링이 쉬운 중소형 빌딩이나 오피스텔은 코리빙(Co-Living·공유 생활)이나 임대 주택으로 전환해 부족한 도심지 주거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정책도 방향을 틀고 있다
이제는 부동산 투자 시 입지와 더불어 부동산 공간 전환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 공간 전환은 적은 비용을 들이는 단순 업종 변경일 수도 있지만, 건물 구조를 변경하거나 공간을 분할할 수도 있다. 수익률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현실적으로 공간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물리적·법적 타당성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다시 말해, 공간을 시장 수요에 맞게 전환하고 싶더라도 물리적·기술적으로 변경이 쉬워야 하고, 법적으로 제약 요소가 없어야 한다. 최근 정부의 정책적 움직임도 이를 지지하며, 규제를 완화하고 관련 산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용도지역제 유연화’와 ‘건축물 탄력적 용도 전환 지원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건축물 구조나 안전 중심 체계에서 벗어나 실제 건축물이 활용되는 방식을 반영한 새로운 건축물 용도 체계를 마련하고, 복합 용도나 용도 전환을 인정하는 폭을 넓힌다는 방침이다.
또한, 신축 단계부터 용도 전환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주거·상업 하이브리드형 건축물’ 추진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2026년 ‘모듈러(건축물의 주요 구조물과 내·외장재를 70~80% 제작한 뒤, 현장에서 블록처럼 조립하는 방식) 건축 활성화 지원에 관한 특별법(가칭)’ 제정도 준비하고 있다. 향후 모듈러로 지어지는 소규모 건축물의 경우 시장과 지역 변화에 맞는 건축물 용도로 유닛만 교체하거나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손쉽게 물리적인 공간 변화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동산(不動産)’, 지리적 위치가 고정돼 있다고 용도도 고정돼야 할까. 오히려 움직이지 못하는 고립성으로 주변 시장이나 지역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시대 흐름과 시장 트렌드에 따라 가장 효용이 높은 공간으로 전환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묵직하고 경직된 투자보다 가볍고 유연한 투자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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