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로 1만㎞ 걸어 南으로…벼락처럼 올지 모를 통일 준비”
굶주림에 석탄 훔치다 왼손·다리 절단
‘꽃제비’ 가난 가족들과 목숨 건 탈북
비례 국회의원 거쳐 함북지사 중책맡아
이북5도委, 탈북민 제2의 고향 같은 곳
인적 정보망 통해 현지 소식·정보 수집
유사시 北재건·행정망 구축 대비 주력

“언젠가 통일이 돼 고향에 돌아가면 아버지 묘를 찾아 ‘함경북도에서 3대째 비참하게 살았던 당신의 아들을 대한민국은 함경북도 지사로 키워주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성호 이북5도위원회 함경북도 지사는 지난 9일 헤럴드경제와 만나 “다른 탈북민들도 우리 사회 일원으로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 나의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 지사는 21대 국회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의원 시절 한국 의원 최초로 국회 대표단의 ‘대중국 의회 간 연합체(Inter-Parliamentary Alliance on China)’ 가입을 이끌어내고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 세미나에 초청돼 한국 의원으로 유일하게 참석하는 등 의원 외교를 활발히 펼친 바 있다.
1982년생인 지 지사는 함경북도 회령 탄광촌의 꽃제비(거지)였다. 16살이던 1996년 3월 화물열차에 올라타 식량과 맞바꿀 석탄을 훔치다 떨어져 열차 바퀴가 그의 왼쪽 손과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 마취제도, 항생제도 없이 절단 수술을 받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성치 않은 몸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다시 먹을 것을 구하러 길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장남인 그는 굶주리는 식구들이 눈에 밟혀 집에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할머니는 며칠을 내리 굶다 결국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준 목발에 간신히 의지해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서 라오스, 태국까지 1만㎞를 걸어 지난 2006년 7월 한국에 도착했다. 정작 아버지는 자식을 뒤따라 탈북하다가 북한 당국에 붙잡혔고 고문 끝에 눈을 감았다. 그는 한국에서 얻은 두 번째 삶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얻은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18년 1월 국정연설에서 지 지사를 소개하며 “지성호의 이야기는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열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기립박수가 터지자 객석에 앉아 있던 그는 울먹이며 목발을 치켜들었다. 그의 탈북 여정을 함께했으며 아버지의 유품이기도 한 목발이었다.
함경북도지사 지명 후 지 지사는 오두산통일전망대를 찾아 탈북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을 위한 기림제를 지냈다. 그는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는데 수천㎞를 돌아오다 체포돼 죽음을 맞이한 이들, 압록강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 지금도 목숨을 건 탈북의 길에 서 있을 이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미어진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1월 국정연설 도중 소개한 지성호 지사. 그는 북한에서 크게 다쳐 왼쪽 손과 무릎 아래를 잃었고 한국에 와서 의족과 의수를 얻었다. [AFP=연합]](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7/ned/20260227111837705xvbl.jpg)
명절이면 사무치는 그리움…‘제2의 고향’ 이북5도委
함경북도는 북한에서도 가장 북단의 지역이다. 중국 국경이 가까워서 탈북민이 많다. 지 지사에 따르면 국내 정착 탈북민의 60% 이상이 함경북도 출신이다. 어느덧 100세를 바라보는 1세대 실향민들부터 북한의 2030 MZ세대를 일컫는 ‘장마당 세대’ 탈북 청년들까지 이북5도위원회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지 지사는 “이북도민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나왔다는 특수한 공통분모가 있어 세대를 뛰어넘는 유대감이 있다”며 “북한에 가지 않고 만날 수 있는 고향 사람은 서로밖에 없다”고 했다. 떨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낯선 곳에 홀로 놓인 외로움을 겪은 이들에게 이북5도위원회는 또 다른 고향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 사무친다. 실향민 대부분 가족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 지 지사는 “실향민 어른들은 ‘더 늦기 전에 편지 한 통이라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지 지사는 최근 경기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다녀왔다. 북녘 가까이 묻힌 실향민들의 묘역이 있다. 그는“실향민들이 어릴 적 나고 자란 그 땅을 밟을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했다.
77년째 이북 지방단체장 두고 ‘먼저 온 통일’ 실천
지 지사는 “이북5도위원회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헌법에 적힌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헌법 제3조는 한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명시한다. 제4조는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지향한다고 규정한다. 헌법에 따라 이북의 황해도·평안남도·평안북도·함경남도·함경북도 등 5도를 비롯한 미수복 강원·경기는 우리 행정 구역이다. 1949년 2월 이북5도지사 임명을 시작으로 같은 해 5월 설립돼 77년째 명맥을 이어온 이북5도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한 도지사 외 명예 시장과 군수, 읍·면·동장도 위촉한다.
이북5도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의문도 늘 제기됐다. 실질적인 행정권은 없는 껍데기뿐 아니냔 지적이다. 지 지사는 “이북5도위원회가 상징적인 위상만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국민 눈높이에서 실질적인 통일 준비 기관으로서 더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북5도위원회는 말초 단위의 북한 ‘밑바닥 정보’를 접한다. 지 지사는 “나도 한국에 온 지 이제 20년이 돼가는데 오늘의 함경북도를 가장 잘 아는 건 갓 탈북한 탈북민들”이라며 “그들에게서 ‘어디에 무슨 공장을 짓는다더니 아직 이더라’ 같은 동네 소식을 자연스럽게 듣는다”고 했다. 그는 “중앙 정부의 초점이 ‘김정은’이나 ‘북핵’ 같은 키워드에 맞춰져 있다면 이북5도위원회는 각 행정구역 골목을 구석구석 살피는 셈”이라고 했다.
지 지사는 이북5도위원회의 자체 데이터를 축적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그는 “각 도가 연구·조사할 인적, 제도적 뒷받침이 사실 미비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탈북민 중심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쌓고 북한을 경험한 사람들을 자원화하는 것이 국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당장 내일 통일되더라도 뛰어들 수 있도록 대비”
지 지사는 “유사시 북한 재건과 이북 지역에 대한 행정이 최대한 공백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평시부터 대비 체제를 갖추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이북5도위원회”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통일이 당장 내일 벼락처럼 찾아오더라도 바로 북한으로 달려가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이북5도위원회 등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 의지는 북한 정세가 급변할 시 외부 세력이 파고들 틈을 막을 명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 지사는 ‘굶고 쓰레기를 주워 먹고 아프고 다친 북한 어린이’였던 자신의 한국 정착기가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내 고향 함경북도 회령에는 아직도 배를 곯는 꽃제비 아이들이 많다”며 “꽃제비가 없는 세상이 와야 할 텐데 그들이 계속 양성되고 있다는 것이 미안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는 여전히 평범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한반도 구성원 모두가 자유를 누리는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힘껏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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