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취미를 전전해도 결국 나는 ‘게임’ [플랫][퇴근 후, 만나요]

플랫팀 기자 2026. 2. 2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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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는 온전히 나를 위한 회복의 시간입니다. 일상에 지쳐 쉬는 방법을 잊은 당신에게, 경향신문 여성 기자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의 일상을 공유하는 [퇴근 후, 만나요]를 연재합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이 영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성공한 3040 여성의 취미라면 뭔가 ‘갓생’에 어울리는 이미지여야 하는 것 아닐까. 근 20년간 나는 나만의 아름다운 취미를 갖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킥복싱도 해보고, 기타와 피아노도 배워보고, 유료 독서모임에도 참여해봤다. 모두 재밌었지만 결국 나는 한 자리로 돌아왔다. 게임.

이것은 갓생이라는 말과는 도무지 화합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취미이므로, 누군가 취미를 물어보면 ‘달리기’라고 가짜 대답을 내놓곤 한다.

코에이 삼국지3, 세가 골든액스3

어렸을 때부터 나는 게임이 좋았다. 나때는 콘솔 게임이 널리 보급된 시대는 아니었으므로 주로 컴퓨터 게임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니던 한자학원의 컴퓨터는 늘 한두 살 많은 오빠들의 차지였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삼국지나 황금도끼 같은 고전 게임을 하곤 했다. 게임에 열중한 사이 누군가 내 책가방에 내 이름으로 유치한 언어유희 낙서를 해놓았고, 집에 와서 그걸 발견하고 분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예컨대 이름이 김주희라면 ‘김주둥’ 같은 식의 낙서였다. 유치할수록 더 잘 긁히고,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게임이라면 모바일·패드·콘솔·PC를 가리지 않고 기회가 닿는 대로 즐기는 편이지만, 한 10년 전부터는 하나의 게임에 빠져 있다. 스스로를 재활원에 가두려는 중독자처럼 깔았다 지웠다를 열 번쯤 반복했지만, 그 게임은 지금도 바탕화면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결국 이 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이유는, 마치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해롱이에게 다시 약을 하자고 유혹하는 이처럼 나를 끊임없이 부르는 혈육이 있기 때문이다.

‘가능?’

주로 주말 저녁, 여느 때처럼 세 살 많은 언니에게서 짧은 카톡이 온다. 확인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왜 확인 안 해’ ‘오늘 일찍 잘 각이야?’ 같은 재촉이 이어진다. ‘11시 이후 가능할 듯’이라고 답하면 ‘ㅇㅋ’ ‘늦으면 1분에 꿀밤 한 대씩’이라는 답이 곧바로 돌아온다. 첫째들은 DNA에 폭력적인 성향이 새겨져있을 것이다. 서둘러 집안일을 마치고 이르면 오후 10시, 늦으면 11시쯤 책상 앞에 앉는다.

게임메이트 언니와의 카카오톡.

내가 빠져 있는 게임은 공포 게임인데, ‘얼음땡’ 같은 술래잡기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4명의 생존자가 살인마에게 들키지 않고 미션을 모두 수행해야 탈출할 수 있다. 살인마 눈에 띄어 두 대를 얻어맞으면 기절해서 갈고리에 걸린다. 다른 생존자가 얼음땡에서 ‘땡’을 하듯 나를 구출해줘야 다시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나는 언니와 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고 같이 모여서 미션을 수행한다. 갈고리에 걸린 상대방을 구하기 위해 살인마의 눈을 피해 달려가고, 때로는 서로를 위해 죽는다. 손발이 잘 맞아 미션을 모두 끝내고 둘 다 살아남아서 탈출하는 날은 기분 좋게 잠에 든다.

“우리 나중에 환갑이 돼서도 이 지경으로 살고 있을까?”

한참 게임을 하다가 우리는 종종 서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예순이 넘어서도 취미가 게임이라고 말하기는 부끄러울 것 같지만,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오래오래 즐겁게 게임하고 싶다.

갓생바라기.

중견 기자. 인류애가 느껴질 땐 눈물이 차오르는 ENFJ.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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