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에도 소비는 ‘미지근’···한은 “혜택 고소득층 집중, 파급경로 약해져”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개선되고 국내 증시도 유례 없는 호황에 들어섰지만, 경기 개선의 효과가 실질적인 가계 소비로 퍼져나가는 힘은 과거보다 약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은 27일 공개한 ‘과거 회복기에 비춰본 현 소비 국면 판단과 전망’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2000년대 이후 민간소비 회복기를 ‘위기 후 급반등형’과 ‘점진적 개선형’ 두 가지로 구분했다. 위기 후 급반등형은 외부의 경제 충격으로 크게 위축됐던 수요가 소비진작 정책 등과 맞물려 단기간에 강하게 튀어오르는 형태다. 회복 속도가 빠르지만 지속성이 제한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나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직후가 대표적 사례다. 점진적 개선형은 대규모 충격 등으로 상당 기간 부진을 이어가던 소비가 거시경제가 개선되면서 점진적으로 회복하는 과정을 말한다.
최근 흐름을 보면, 지난해 상반기 외부 충격으로 크게 위축됐던 소비가 하반기 들어 소비심리 개선과 정부 부양책에 힘입어 빠르게 반등했다. 여기에 거시경제 차원에서 회복을 지속시킬 만한 여건도 형성되고 있다는 게 한은 판단이다.
다만 실제 가계 소득과 소비로 이어지는 경로는 예전보다 약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우선 산업 간 불균형이 심해졌다. 최근 경기 개선을 주도하는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부문은 자본 집약도와 생산 과정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 전·후방 산업 간 연관 효과가 작다.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낮다.
반면 생산·고용유발 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비IT 부문은 중국과의 경쟁 심화 등으로 구조적 부진을 지속하고 있다. 전자·석유화학·철강 등 고용 집약적인 산업들이 대표적 사례다. 한은은 “반도체 중심의 성장은 산업구조상 대기업 및 고소득층에 그 혜택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최근 가계 마이크로 데이터를 활용해 소득 분위별 한계소비성향(MPC)을 추정한 결과, 고소득층(소득 5분위, 상위 20%) 가구의 MPC는 약 12%로 전체 평균(약 18%)의 약 3분의 2 수준에 그쳤다. 이는 가계소득 총량 증가가 일부 고소득층에 집중될 경우 소비 파급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계소비성향은 새로 증가한 소득 중에서 소비에 쓰인 비율을 말한다.
자산가격 상승도 소비를 힘있게 이끌지 못하고 있다. 국내 가계의 자산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의 경우 자산 가치가 오르면 부채 확대를 동반한다. 이는 원리금 상환 부담을 가중시켜 자산가격 상승이 소비로 이어지는 ‘자산 효과’를 제약한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은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강세를 이어온 주식 자산의 경우에도 자산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증시가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고, 주가 상승의 영향이 고소득층에 집중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계의 주식·채권·펀드자산 보유액은 전 소득 계층에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특히 고소득층의 증가폭이 두드러진다. 주식·채권·펀드자산의 MPC를 소득분위별로 추정해 보면 고소득층의 MPC가 약 0.8%로 전체 평균을 소폭 밑도는데 이를 감안할 때 주가 상승 영향이 고소득층에 집중된 점은 경제 전체의 자산 효과를 낮추는 요인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은은 “소비 파급경로가 과거 대비 약화된 점을 감안할 때 향후 증가세는 과거 대비해서는 비교적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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