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하드코트 넘어 다시 나고야 AG 금빛 스매싱… 순천에서 시작되는 한국 정구의 새로운 도전
- 아이치·나고야 코트 향한 첫 관문. 남자 10명, 여자 10명 선발
- 최강 일본 안방 이점까지. 전위 2명 등 변칙 전술로 돌파 특명
- 체력 멘탈 팀워크. 신구 조화, 신진 돌풍 기대감

한국 소프트테니스(정구)는 아시안게임에서 효자종목으로 유명합니다.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이명구-유영동 조가 남자 복식 정상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 8개 대회에서 전체 금메달 46개 가운데 26개를 수집했습니다. 금메달 확률이 절반도 넘는 56.2%에 이릅니다. 특히 '안방'에서 열린 2002년 부산과 2014년 인천에서는 7개 전 종목 석권이라는 금자탑도 쌓았습니다.
올해 9월이면 일본에서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열립니다. 한국 정구의 금빛 행진을 책임질 주역을 선발하는 2026 정구 국가대표 선발전이 27일부터 3월 7일까지 전남 순천시(시장 노관규) 팔마 실내 소프트테니스장에서 열립니다.
단식과 복식으로 나눠 치러지는 이번 선발전을 통해 남녀단식 1, 2위와 남녀 복식 1, 2, 3위 조 등 16명(남자 8명, 여자 8명)이 태극마크 확정을 짓게 됩니다. 또 남녀단식 3위와 남녀 복식 4위에 오른 선수 6명 중 4명을 선발해 총 남자 10명, 여자 10명이 아시안게임 도전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 가운데 자체 평가 과정 등을 거쳐 아시안게임 코트를 밟을 최종엔트리 10명(남자 5명, 여자 5명)을 결정합니다.


남녀단식, 혼합복식, 남녀단체전 등 5개 종목의 챔피언을 가리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한국팀에는 불리한 하드코트에서 열립니다. 게다가 홈코트 이점을 누리는 일본 대표팀은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듣습니다. 여러모로 험난한 승부가 예상되기에 하드코트에서 열리는 이번 순천 선발전이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아시안게임에서 최상의 기량을 펼칠 옥석을 제대로 가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자대표팀 고복성 감독은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전력을 다해야 하는 대회이다. 최근 일본과의 승률이 높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대표팀 구성이 새롭게 되어야 메달의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고 감독은 또 "특히 단식 선수 선발을 비중 있게 봐야 하며, 복식은 어떤 전위선수가 발탁되느냐가 중요하다"라고 전했습니다.
대표선발전에 출전할 정도라면 누구나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지만 그 가운데 주목되는 선수로는 국가대표 경험이 풍부한 농협 임진아와 옥천군청 이수진이 손꼽힙니다.
아시안게임에서 혼자서 금메달 5개를 수확한 유영동 NH농협은행 감독은 "우리 팀에서는 황정미와 임진아에게 기대하고 있다. 황정미의 패기와 임진아의 노련미가 어우러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지아와 이정운도 다크호스로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혜경, 이민선 등 간판스타가 줄줄이 은퇴한 NH농협은행(은행장 강태영)은 어린 선수들이 선발전 초반 긴장감 극복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유영동 감독은 "창원, 순천에서 동계 훈련을 그 어느 때보다 착실하게 소화했다. 선수들을 믿고 지켜보겠다"라고 희망을 밝혔습니다.
옥천군청(군수 황규철) 주정홍 감독은 이수진의 컨디션이 좋은 편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조경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아이엠뱅크에서는 단식 김민주와 복식 김한설이 태극마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내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안성시청에서는 김연화와 김유진이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김연화와 김유진은 전남 완도와 순천에서 강도 높은 동계 훈련을 소화하며 체력과 기술을 끌어올렸습니다.
안성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을 이끌었던 안성시청 곽필근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는 단식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 같다. 전반적으로 정공법보다는 변칙적인 전술이 필요해 보인다. 복식에서는 서브 이후 두 명이 모두 전위에서 공격하는 패턴도 집중적으로 훈련해야 한다"라고 조언했습니다.

남자 실업 강호 수원시청은 군 복무 중인 김태민까지 출전합니다. 지난해 육군에서 지뢰탐색을 하다가 부산 전국체전에 나서 금메달까지 딴 김태민은 이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대표선발전에 대비한 운동을 시작한 뒤 베테랑 김범준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최근 팀워크가 살았다는 평가입니다.
일본 전문가인 수원시청 임교성 감독은 "올해 아시안게임은 남녀 모두 메달 전선이 어려워 보인다. 여자는 단식이 그나마 해볼 만하다. 혼합복식은 대만이 강하다. 다른 종목에서는 일본의 강세가 확실하다"라며 "대표 10명이 확정되면 철저한 개인 분석으로 장단점에 초점을 맞춰 훈련 효과를 높여야 한다. 상대 팀 전력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작업도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간판 우에마츠 토시키는 남자 단식과 혼합복식, 남자 단체전에서 3관왕 후보로 꼽히고 있습니다.

김용국 남자 대표팀 감독은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체력과 멘탈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만 충족된다면 무난히 선발될 것이라 본다. 올 9월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2개 이상의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종목 특성에 따른 대표선발 방식의 자율성을 일부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정인선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 회장(연세아이미스템의원 원장)은 "자국에서 아시안게임을 치르는 일본의 독주가 염려된다. 아시안게임에서 최상의 기량을 펼치기 위해 일부 선수를 경기력 향상위원회 추천으로 선발하겠다는 방침을 대한체육회에 건의했으나 무산됐다. 일시적인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하는 선수를 구제할 방법이 없게 돼 안타깝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공정성 시비를 막기 위해 무조건 대표선발전 결과에 따른 선발만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원 수성중 시절 정구 선수로 뛰었던 정 회장은 또 "정구는 전위와 후위가 나뉘어져서 하는 운동이다. 후위의 실력에 따라 전위의 성적이 많이 좌우된다. 선발전에서 후위를 누구와 짝이 되느냐에 따라 전위의 성적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도 추천선발이 최소한 1명이라도 필요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정구는 늘 조용히, 그러나 가장 찬란하게 아시안게임 무대를 물들여 왔습니다. 스포트라이트는 크지 않았지만, 코트 위에서 흘린 땀과 눈물은 언제나 금빛 결실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7개월 뒤, 일본 하드코트 위에 다시 태극기가 펄럭일 순간을 준비합니다. 불리한 조건도, 홈팀의 벽도 두렵지 않습니다. 순천에서 시작된 이 치열한 경쟁은 단순한 선발전이 아니라, 또 한 번 역사를 쓰기 위한 약속의 자리입니다.
누군가는 긴장 속에 도전하고, 누군가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라켓을 잡습니다. 그들의 한 포인트, 한 스윙, 한 걸음이 모여 다시 한번 금빛 파도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거센 바람이 불수록 태극마크는 더 단단해집니다. 한국 정구의 새로운 도전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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