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의 행동” 경고…9차 당대회서 드러난 北 핵전략 진화 [박수찬의 軍]
“임의의 행동을 개시할 수 있다.”
북한이 지난 26일 노동당 제9차 대회 직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던진 이 한 문장은 사실상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열어둔 선언에 가깝다.
핵무기 사용 조건을 모호하게 만들고, 전술핵과 인공지능(AI), 위성공격 능력까지 결합한 새로운 전략을 공식화했다. 과시가 아닌 실전용 핵전략으로의 전환이다.

‘확전의 주도권’을 확보, 김정은 체제의 생존을 지켜내겠다는 계산이다. 이 카드를 내밀고자 평양은 10년간 꾸준히 힘을 키워왔다.
◆10년째 내세우는 선제 핵공격
핵무기 운용개념은 크게 응징억제와 거부억제로 구분된다. 응징억제는 공격을 받으면 훨씬 강력한 반격을 하겠다고 위협해 적군의 결심을 저지하는 것이고, 거부억제는 적군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김정일 시절 북한의 핵전략은 응징억제였다. 한·미·일을 겨냥한 스커드·노동·대포동 미사일과 은하 3호 로켓을 만들고, 핵실험을 감행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수량의 핵무기를 지닌 미국 앞에선 큰 효과가 없었다. ‘더 많은 핵무기를 가진 쪽이 확전을 결정한다’는 핵이론에 따르면, 핵무기 사용을 통한 전장 주도권은 미국에 있다.

시작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첫 당대회였던 2016년 7차 당대회였다. 이때 북한은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주권은 그 범위가 애매하고 주관적이다. 이같은 특성을 이용해 핵무기 사용 조건을 모호하게 설정, 자의적인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후 북한은 핵능력 강화에 나섰다. 2016년 당시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조차 보유하지 못했지만, 2024년 10월 고체연료 ICBM 화성-19형 발사로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했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있었다. 유사시 북한이 수도권에 전략핵무기 공격을 가하면, 평양은 미국 확장억제의 대규모 반격에 직면한다. 체제 존립이 위태롭다.
하지만 저위력 전술핵으로 한국군 시설이나 전시 미군 증원 통로를 타격하면, 한·미 연합군은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보복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냉전 시절 등장한 제한핵전쟁 교리다. 대규모 보복 대신 군사적 표적만 핵타격을 하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선 전쟁이 터지더라도 치명적인 패배는 피할 수 있고, 김정은 체제도 지킬 수 있다.

핵개발 국가들은 초기에는 고위력 전략핵무기와 중장거리 미사일에 집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10㏏ 정도의 전술핵 개발에 나선다. 응징억제에서 거부억제 또는 제한핵전쟁 교리로 발전하는 셈이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핵무기의 소형화·다종화’를 강조했다. 이후 2023년 3월 전술핵탄두인 화산-31형을 선보였다.
화산-31형이 공개됐을 때, 관련 사진에는 600㎜ 초대형방사포 핵탄두, 화성포-11ㅅ형 핵탄두, 화살-2형 핵탄두 등의 문구가 쓰인 것이 식별된 바 있다. 초대형방사포와 단거리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9차 당대회에선 ‘각이한 핵무기들의 군사적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보충적인 타격수단들과 운용지원체계를 갱신할 것’이라는 언급이 포함됐다.

결국 북한은 조악한 핵무기와 조잡한 장거리 미사일로 도쿄와 워싱턴을 인질로 삼는 김정일 시절 전략에서 벗어나 핵무기를 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을 10여년간 날카롭게 다듬어온 셈이다.
냉전 종식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지던, 먼지 쌓인 핵개념까지 샅샅이 찾아낸 결과다. 핵보유국을 향한 집요한 노력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강해지는 대목이다.

북한은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재래식 전력 증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해군력 강화와 더불어 인공지능무인공격종합체들, 위성공격무기, 전자전, 정찰위성 등이 포함됐다.
이같은 전력은 국가의 군사력을 구성하는 2대 요소 중 하나인 전쟁수행능력과 직결되는 요소다.
핵보유국은 핵무기로 구성된 억제력과 첨단 재래식 전력을 갖춘 전쟁수행능력을 함께 육성해서 군사력을 유지한다.
핵무기 의존도가 높아지면 유사시 전쟁수행이 어려워진다. 러시아가 대표적 사례다.
러시아는 막강한 핵전력을 보유했으나, 비핵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하는 전쟁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러시아는 소모전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이 핵·재래식 통합(CNI)이다.
핵 억제력 관련 개념 중에서 최근 주목받는 것으로서, 한·미도 미국 확장억제와 한국 재래식 전력을 결합한 CNI를 구성하고 있다. 북한도 ‘북한판 CNI’를 통해 핵전쟁과 재래식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추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선 새로운 비밀병기 개발이 거론됬다. 인공지능무인공격종합체, 위성공격 특수자산, 전자전 무기, 정찰위성 등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무인기에 탑재하면, 표적을 자동 식별하고 위협을 평가할 수 있다. 비행경로 최적화가 가능해 조종사의 부담이 감소한다. 북한도 이같은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유사시 적 지휘부를 마비시키는 전자전 체계 개발도 천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효과로 보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군은 전장에서 매우 치열한 전자전을 벌이고 있다. 관련 소프트웨어를 수시로 업데이트해야할 정도로 강도높은 교전이 진행중이다.
북한도 파병 대가로 전자전 장비와 기술, 경험을 러시아에서 습득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지난해 하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2025년 세계 위협 평가’ 보고서에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과 물자를 제공한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SA-22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과 전자전 장비 등을 지원받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다.
적국의 위성을 공격하는 무기도 등장했다. 이와 관련해 미 DIA는 같은 보고서에서 “북한 탄도미사일과 우주발사체(SLV)는 분쟁 시 미국과 동맹국 위성을 겨냥할 기초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SLV, 위성, 훈련 등 우주 프로그램 지원을 받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국군이 425 사업을 통해 정찰위성을 운용하는 것을 의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또 600㎜ 초대형방사포와 신형 240㎜ 방사포, 전술미사일을 증강배치해 집중공격의 밀도와 지속성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이 구축하는 장사정포요격체계를 돌파, 유사시 한·미 연합군에 대한 타격효과를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장사정포요격체계의 교전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방사포탄이 쏟아진다면, 지상 피해는 불가피하다.

북한은 만리경-1호보다 우수한 위성도 개발중이다. 국방정보본부는 지난해 말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존 위성 대비 해상도가 더 높은 정찰위성 확보를 위해 러시아의 기술지원 아래 추가 발사를 준비하는 동향이 보인다”고 보고한 바 있다.

다른 길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국면에서 이같은 질문에 답이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반전의 모멘텀이 없는 정부가 맞닥뜨린 2026년 초의 현실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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