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공장서 포탄 찍는 독일, 무기 수출 빗장 푼 일본…시험대 오른 K방산

안옥희 2026. 2. 27.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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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독일 라인메탈 카셀 공장. 사진=DPA·연합뉴스

글로벌 방산 시장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80년간 ‘평화 헌법’과 ‘역사적 과오’에 묶여 있던 일본과 독일이 동시에 빗장을 풀고 방산 대국으로의 복귀를 선언하면서다.

일본 다카이치 내각은 개헌을 통해 살상 무기 수출의 길을 열고 있고 독일은 자동차 공장을 장갑차 생산 기지로 개조하며 ‘전시 경제’ 체제로 급격히 전환했다.

가성비와 신속 납기라는 ‘코리안 프리미엄’의 유효기한이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K방산은 이제 단순 제조사를 넘어 ‘글로벌 안보 파트너’로서의 생존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진짜 시험대에 올랐다.

 국방 예산 무제한 시대…車 공장서 장갑차 찍어내는 독일

유럽 경제의 엔진 독일이 ‘전시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아우토반을 호령하던 자동차 부품 대신 포탄과 장갑차가 컨베이어벨트를 채우기 시작했다.

2022년 선언된 ‘시대전환(Zeitenwende)’이 4년 차를 맞으며 독일은 매년 GDP 2% 이상의 국방비를 투입해 유럽 내 압도적 재래식 군사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국가 전략을 현실화하고 있다.

독일 방산의 상징 라인메탈은 내연기관 쇠퇴로 위기를 맞은 자동차 부품 공장들을 탄약 및 장갑차 생산 시설로 전격 전환했다. 2025년 헌법 개정으로 국방비 부채 제동장치를 무력화한 독일은 2029년 GDP 대비 3.5% 달성이라는 ‘무제한 국방 예산 시대’를 열었다.

헝가리에는 155mm 포탄 수직 계열화 허브와 AI 기반 장갑차 공장을 구축, ‘적기 생산’에서 ‘만약의 대비’로 패러다임을 바꿨다. 인적 측면에서도 징병제 부활 카드를 꺼내 들며 2035년 병력 26만 명 확보를 목표로 잡았다.

독일 알렌의 정찰대대에서 열린 언론 공개 행사에서 신병들이 실사격 훈련에 참여한 모습.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독일의 설계 능력과 한국의 양산 관리를 결합한 ‘한·독 방산 동맹’이 대안”이라며 한국 제조 공정 기술 도입을 촉구했다. 이는 K방산이 유럽 생태계의 ‘설계자’로 참여할 기회다.

다만 독일의 물량 공세가 당장 위협적이지는 않다. 수십 년간의 탈군사화로 중소 협력사 생태계가 붕괴해 숙련공 확보에 수년이 걸릴 전망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스마트 팩토리와 탄탄한 공급망을 유지해왔다.

진짜 위협은 독일의 공급망 자립화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표준을 무기로 한 ‘안방 사수’다. 라인메탈이 공급망 자립화에 성공하며 ‘초스피드 납기’ 격차를 줄이기 시작했고 나토 군수 표준을 주도하는 독일이 안방 사수에 나설 경우 동유럽 시장 수주전은 더욱 험난해질 전망이다.

특히 K2 전차와 K9 자주포 초기 모델이 독일산 엔진·변속기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 약점이었으나 최근 엔진·변속기 국산화가 막바지에 이르며 독자 수출 길을 열고 있다.

전문가들은 독일의 시스템 설계 역량을 K방산이 흡수해야 할 ‘교과서’로 꼽는다. 김홍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는 “독일은 육상 무기체계에서 여전히 최상위 포식자이며 특히 하드웨어를 하나로 묶는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역량은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독일의 시스템 우위와 우리의 제조 역량을 결합하는 ‘전략적 협업’을 통해 나토 기준에 부합하는 체계를 완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생산 병목을 겪는 독일에 한국의 ‘제조 역량’을 제공하고 우리는 ‘유럽형 표준 소프트웨어’를 이식받는 전략적 협업이 K방산의 다음 스텝이 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10월 28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 있는 미 해군 기지에 정박 중인 미 항공모함 USS 조지 워싱턴호에서 미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옆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평화주의 버리고 ‘전쟁 가능 국가’로…80년 금기 깬 일본

다카이치 내각은 평화헌법 9조 개정을 추진하며 80년 만에 ‘강한 일본’의 복귀를 선언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을 필두로 대량 양산 체제에 진입한 일본은 트럼프 행정부의 전폭적 지지 아래 ‘동아시아의 병기창’을 자처하며 K방산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다.

가장 파격적인 행보는 인텔리전스 역량의 강화와 살상 무기 수출의 본격화다. 다카이치 내각은 미국 CIA를 모델로 한 ‘국가정보국’ 신설과 함께 1980년대 무산됐던 ‘스파이 방지법’ 제정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정보가 없는 것은 눈을 감고 걷는 것과 같다”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신념 아래 일본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수준의 정보 공유 능력을 갖춘 인텔리전스 대국을 꿈꾼다.

여기에 전쟁 중인 국가나 대만까지 무기 수출 대상에 포함하는 예외 조항을 승인하며 안보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중국이 “일본의 개입은 침략”이라며 경제 보복과 군사적 위협으로 맞서면서 동북아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J-방산’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그간 자위대 전용 수요에 갇혀 ‘성능은 좋지만 비싼 무기’의 대명사였던 일본 방산은 이제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을 필두로 대량 양산 체제에 진입했다.

이미 미쓰비시가 생산한 패트리엇(PAC-3) 미사일을 미국에 역수출하며 물꼬를 텄고 영국·이탈리아와 공동 개발 중인 6세대 전투기(GCAP)의 제3국 수출도 공식화했다. 특히 호주 해군 호위함 사업에서 한국, 독일과 정면 대결하며 과거의 실패를 딛고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을 결합한 패키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점은 K방산에 위협이다.

일본은 미국의 부족한 재고를 채우는 공급망 파트너를 넘어 필리핀에 방공 레이더를 수출하는 등 동남아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급격히 확대 중이다. K방산 입장에서 일본은 가성비와 신속 납기라는 기존의 강점만으로는 방어하기 어려운, 막대한 자금력과 원천 기술을 보유한 ‘거물급’ 라이벌이다.

‘강한 일본’의 복귀는 K방산에 제조 역량 그 이상의 과제를 안겼다. 미·일 동맹의 밀착 속에서 기술 자립도를 증명하는 동시에 일본의 자금력과 원천 기술에 맞설 차별화된 수주 전략이 절실해진 시점이다.

폴란드 병사가 브라니에보 훈련장에서 K2 전차를 기동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핵 고삐 풀린 시대, ‘순진한 고객’ 폴란드의 반란

지난 2월 5일 미국·러시아 간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이 발효 15년 만에 공식 종료됐다. 사찰과 데이터 공유가 중단된 ‘핵 무법 시대’의 도래는 전 세계적인 안보 불확실성을 증폭시켰고 각국은 핵 억지력의 공백을 메울 압도적인 재래식 화력 확충에 사활을 걸기 시작했다.

글로벌 방산 시장이 철저한 ‘공급자 우위’로 재편되는 가운데,K방산의 최대 고객인 폴란드는 가장 먼저 ‘구매 공식’의 변화를 선언하며 실리 챙기기에 나섰다.

GDP 대비 국방비 비중을 4.8%까지 끌어올린 폴란드는 더 이상 단순 수입국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콘라트 고워타 폴란드 국유자산부 차관은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미국 무기를 사며 안보 비용을 지불하던 과거의 우리는 ‘순진한 고객’이었다”며 “이제는 단순히 조립 라인을 유치하는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기술이전과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자국 국영 방산그룹 PGZ를 중심으로 유럽 내 공동생산 허브를 구축해 자국 방산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선전포고다. 김홍유 교수는 이를 “완제품 수입에서 공동생산 및 기술 내재화로 넘어가는 2단계 협력 구조로의 전환”이라고 분석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존 힐리 영국 국방장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 미하일로 페도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이 2월 12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완제품 수출 넘어 ‘방산 컨트롤타워’ 구축이 생존 열쇠

문제는 유럽의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 기조와 권역별 블록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나토라는 그들만의 리그가 공고해지면서 한국이 나토 표준을 따르더라도 제도·인증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 사례처럼 현지 투자와 산업 기여를 전제로 한 ‘투자형 절충교역’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김 교수는 “유럽 블록을 전제로 한 공급망 전략 없이 완제품 수출 모델만 고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K방산의 승패는 무기 성능을 넘어 국가 차원의 정책 일관성과 현지 생태계 편입 능력에 달렸다. 김 교수는 “방위사업청 산하에 유럽(체계), 동남아(단품), 제3세계(맞춤형) 등 권역별로 특화된 ‘방산 태스크포스(TF)’ 컨트롤타워를 신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싱가포르처럼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국방과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의 향방이나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국가 차원의 방산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 K방산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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