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자폐인 아들이 지른 불…법원 “부모가 4억 원 배상하라”

'내 아이, 언제까지 책임져야 할까.' 부모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입니다.
성인 자녀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책임을 부모에게 물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만약 자녀에게 장애가 있다면 어떨까요?
최근 법원에서 "성인 발달장애인 자녀가 저지른 범죄로 인한 피해를 부모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20대 자폐인 아들의 방화 사건 이후 화재 보험사로부터 소송을 당한 김상현 씨는 4억 원을 배상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 아파트 쓰레기장에 불 지른 25살 자폐인… 부모에게 날아든 소장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23년 10월 21일 새벽 1시, 김상현 씨의 아들이 서울의 한 아파트 지하 2층 분리수거장에 있는 종이상자에 불을 지르며 시작됐습니다.

분리수거장이 전부 타고 건물 외벽과 주차장에도 그을음이 남았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연기를 마셔 다쳤습니다.
이 일로 김 씨의 아들은 구속 기소돼 1년간 수감 생활을 하다, 재판 과정에서 석방됐습니다.
법원은 김 씨 아들이 '정도가 심한 자폐성 장애인'으로, 심신 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판결문에는 성인 자폐성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부모의 책임으로만 맡겨둘 수 없다며, 재범 방지를 위해 국가와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이 명시됐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김 씨 부부는 이 일로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거액의 민사 소송에 휘말렸습니다.
화재 보험사 측에서 2024년 9월, 부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라며 '구상금 청구' 소송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폐인 아들 관리를 똑바로 못해 불이 났으니, 보험사에서 지급한 보험금을 부모가 대신 내라고 한 겁니다. 소송 규모만 14억 원이 넘었습니다.
김 씨는 당시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래서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동반 자살을 하는구나 싶다"며 막막함을 토로했습니다.
[연관 기사] 쓰레기장에 불 지른 20대 자폐인…“책임져라” 부모 월급 가압류 (2024.11.26 뉴스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15730
■ 법원 "발달장애인 부모, 자녀 범죄 막았어야"… 4억 원 배상 판결
지난 13일, 소송 제기 1년 5개월 만에 1심 판단이 나왔습니다.
결과는 김 씨의 패소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부부가 공동으로 보험사에게 4억 3천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던 ①김 씨 부부의 법상 '보호의무자' 해당 여부와 ②감독 의무 위반 여부에 대해 모두 보험사 측 손을 들어준 겁니다. 판결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쟁점①부모는 성인 자폐인 자녀의 보호의무자인가

보험사가 소송을 건 근거는 정신건강복지법상 '보호의무자' 조항입니다. 자폐인 자녀의 보호의무자로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관리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반면 김 씨 측은 자폐성 장애인, 즉 발달장애인은 정신질환자와 구분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보호의무자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발달장애인은 정신건강복지법상 정신질환자에 해당한다"며 "김 씨 부부는 아들의 보호의무자가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상 발달장애인과 정신질환자의 정의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고,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에서 발간한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에 수록된 정신질환자의 입원 현황에 발달장애인도 함께 집계돼 있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쟁점②보호의무자로서 감독 의무를 위반했는가
재판부는 김 씨 부부가 아들의 범죄 위험성을 알고도 대비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방화 사건 나흘 전에도 아들이 아파트 앞에서 쓰레기에 불을 붙여 관리소장에게 주의받은 적이 있고, 비슷한 시기 칼을 들고 길거리를 배회하다 경찰에 체포됐던 적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사 과정에서 처음에는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데 동의했다가, 다시 퇴원시킨 점도 문제 삼았습니다.
쟁점③손해 배상 책임의 제한
다만, 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을 전부 물어줄 필요는 없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보험사가 손해를 본 금액의 30%까지만, 배상 책임을 제한했습니다.
감독 의무가 있는 건 맞지만, 24시간 내내 아들의 위험한 행동을 제지하기는 어려웠을 테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은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도 있다는 점을 참작했습니다.

그렇게 산출된 최종 배상액은 약 4억 3천만 원입니다.
■ 김 씨 "자폐아들 영원히 가둬두란 뜻"… 장애계도 '현대판 연좌제' 반발
김 씨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했습니다.
"발달장애인과 정신질환자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럼 태어날 때부터 어디 병원에 입원을 시켜놓으라는 얘긴가요? 발달장애는 입원한다고 치료가 되는 질환이 아니잖아요. 영원히 어디 가둬 두라는 것도 아니고…."
- 김상현 씨
김 씨는 "우리 때문에 나쁜 판례가 만들어져서 안 그래도 열악한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삶이 더욱더 힘겨워질까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장애계에도 큰 파장이 예상됩니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는 양극성 정동장애가 있는 20대 정신질환자의 아파트 방화 사건에서 부모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경우가 있었는데, 발달장애인 부모 역시 '보호의무자'로서 책임이 인정된다면 향후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추승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는 "2026년 대한민국에 다시 돌아온 연좌제인 셈"이라며 "부모로서 양육 책무를 다하려 최선을 다하던 중 벌어진 일인데 모든 걸 부모 책임으로 돌리는 건 부당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씨 측은 보호의무자 제도 자체가 민법의 3대 원칙 중 하나인 '자기 책임의 원칙'을 지나치게 확장한 것이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가해 행위에 대해서만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데, 자녀에 대한 관리 소홀을 이유로 배상 책임을 지는 건 위헌이라는 취지입니다.
"지금 판례대로면 기본적으로 부모 책임이라는 전제하에 책임 비율만 조정하는 거잖아요.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가 말뿐인 구호가 아니려면, 이런 일이 있을 때 가족들에게만 책임을 지우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 최정규 변호사/김 씨 측 대리인
김 씨와 보험사 모두 항소하면서 이번 사건은 2심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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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민 기자 (js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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