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긴 저항부터 무력한 항복까지 전쟁에 휘말린 약소국의 선택은? [.txt]
에티오피아, 전후 당당한 주도국으로
나치 협력 동유럽은 소련 승전 뒤 공산화

대개의 역사는, 특히 전쟁은 승자의 기록이다. 패전국은 전쟁의 책임을 떠안고, 전쟁과 얽힌 주변 약소국들은 온전한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역시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얽혀 있음에도 미국과 영국, 소련 등 연합국의 기록만이 오직 정사(正史)로 이해되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전쟁사 연구가 권성욱의 `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는 통념으로만 이해했던 제2차 세계대전의, 특히 약소국들이 처했던 적나라한 현실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약소국들은 “무조건 강대국에 매달리거나 시대의 풍파에 억지로 휘말려 연합군이 구원해 줄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약소국들은 약소국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던 대응을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는 “약소국들이 전쟁의 한복판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 아울러 “그들의 군대가 어떻게 싸웠으며 그 결과와 함께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로마 제국의 정당한 상속자”를 자처한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1935년 10월 아프리카 유일의 독립 국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한다. 한때 영화를 누렸지만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치하의 에티오피아는 구식 무기 일색에 군대 자질도 최악이었다. 50만 대군 중 초보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병사는 4분의 1에 불과했다. 그들은 “19세기 무기를 사용하는 15세기 군대”였는데, 그마저도 외침이 아닌 “내부 반란의 진압에나 적합”한 군대였다. 그럼에도 에티오피아군은 “처음 겪는 현대전”에 만만치 않게 저항했다. 현지 지형에 익숙한 그들은 기습과 근접전투로 이탈리아에 대항했다.
에티오피아군의 끈질긴 반격에 무솔리니가 꺼내 든 건 1925년 제네바 의정서가 금지한 ‘독가스’였다. 황제는 영국에서 망명 정부를 세웠고, 군대는 내륙 산악지대에서 저항을 이어갔다. 그 결과 1944년 1월 이탈리아의 지배는 끝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탈리아를 패퇴시킨 영국이 에티오피아를 동맹국이 아닌 적성국의 식민지라며 탐욕을 드러냈다. 영국은 1942년 1월 미국의 압박을 받고서야 물러났다. 영국과 수단에서 망명 정부를 이끈 황제는 귀환했고, 유럽의 식민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아프리카를 이끄는 당당한 주도국” 역할을 감당했다.


유럽 전역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이었음에도 핀란드를 제외하고는 유럽의 약소국들은 지리멸렬했다. 최근 그린란드를 두고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덴마크는 “무책임하리만큼 무방비 상태”에서 항복했다. 개전 당시 인구는 384만명, 병력은 1만4500만명에 불과했다. 무기도 형편없어서 경전차 1대와 연습용 장갑차 몇대가 전부였다. 더 큰 문제는 덴마크 정부였다. 독일 침공 며칠 전에 정보를 입수했지만 전쟁 임박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군사적 노력은 물론 외교적 노력조차 없었다. 독일 공군의 무력시위에 덴마크 정부는 개전 전부터 주눅이 든 상태였다. 1940년 4월9일 새벽 4시50분 첫 충돌이 났고, 오전 8시43분 덴마크 정부는 항복에 동의했다. 조건은 하나였다. 노르웨이 침공을 위한 길을 독일에 내주는 것이었다.
1929년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등이 연합해 탄생한 왕국 유고슬라비아는 독일과 연합국 사이를 오가다가 혹독한 희생을 치른다. 당시 실권자였던 파블레 대공은 1939년 6월 베를린을 방문, 히틀러에게 서방의 독일 봉쇄망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편으로는 프랑스, 영국과 비밀리에 접촉하면서 발칸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연합군 편에 서겠다고 했다. 사실 히틀러가 유고슬라비아를 탐낸 이유는 강고한 군대 때문이었다. 히틀러는 헝가리, 루마니아를 앞세워 소련 침공을 시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두샨 시모비치 총참모장의 쿠데타로 몇년간의 노력이 허사가 되자 히틀러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1941년 4월, 개전 며칠 만에 쿠데타 주요 세력인 유고슬라비아 공군이 무너졌다. 남부 전선 제3군이 이탈리아령 알바니아로 진격했고, 수뇌부가 남부 산악 지대에서 마지막 항전에 나섰지만, 거기까지였다. 전쟁 시작 열이틀 만인 4월17일, 유고슬라비아는 ‘무조건’ 항복 문서에 조인했다.

루마니아는 히틀러의 동방 원정 파트너라는 다소 극적인 선택을 했다. 소련에 빼앗긴 영토와 우크라이나까지 얹어주겠다는 히틀러의 미끼가 통한 탓이다. 반유대주의와 반공주의에 철저했던 실권자 안토네스쿠는 정권 유지를 위해 직접 총사령관을 맡아 원정군을 이끌었다. 하지만 소련군에 막히면서 독일군의 불패 신화가 꺾였고, 추축국(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탈리아·일본을 중심으로 연합국에 대항한 나라들) 사이에 패배주의가 만연했다. 추축은 붕괴됐고, 이는 독일과 루마니아의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1944년 9월에는 핀란드와 불가리아도 독일을 버렸다. 루마니아는 소련 수중에 들어갔고, 공산화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히틀러가 스스로의 야욕에 매달리는 동안 소련은 파죽지세로 유럽을 휩쓸었다. 루마니아를 비롯한 동유럽 여러 나라의 공산화는 결국 히틀러의 동방 원정이 원인인 셈이다.

지은이는 이들 나라 외에도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알바니아, 불가리아 등 세계 대전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은 나라들의 속사정을 세밀하게 살핀다. 타의에 의해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나라들을 살핌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큰 그림을 보여준다. 독자들에게는 970쪽의 분량이 다소 버거울 수 있지만, 당대 유럽과 각 나라들의 상황과 대응 방식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낸 지은이의 노력과 공력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따르면, 전쟁은 “우리의 의지를 구현하기 위해 적을 강요하는 폭력 행동”이다. 결국 중요한 물음은 ‘우리’로 귀결된다. 한사코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세계에서 우리란 무엇이며, 누구일까. 하물며 숱한 전쟁을 겪은, 한때는 약소국이었던 우리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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