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간 근무·초봉 5000만원… 청년들, 버스 운전대 잡는다

윤상진 기자 2026. 2. 27.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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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버스기사 3년새 37% 늘어
한때 ‘기피 직업’으로 여겨졌던 버스 기사에 도전하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3일 ‘MZ 버스 기사’ 서기원(29)씨가 인천 소래포구역 버스환승센터에서 자신이 모는 시내버스 운전석에 앉아 있는 모습. /남강호 기자

지난 13일 오후 1시 인천 소래포구역에서 출발한 인천 20번 시내버스 안. 스피커에선 요즘 인기 아이돌 그룹 ‘프로미스나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정류장들을 지나면서 중년 승객이 점점 많아지자,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와 주니퍼의 ‘하늘 끝에서 흘린 눈물’ 등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인기곡으로 바뀌었다. 운전대를 잡은 ‘MZ 버스 기사’ 서기원(29)씨가 승객들 연령대에 맞춰 준비한 플레이리스트다.

서씨는 대학 중퇴 후 2022년부터 시내버스를 몰고 있다. 그는 “처음엔 ‘나이 많은 분들이 하는 일 아닐까’란 생각도 했지만, 요즘엔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최근 들어 버스 기사 처우가 좋아졌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변 지인들로부터 “버스 기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고 한다. 서씨만 해도 월급이 세후 기준으로 약 430만원 정도다.

한때 ‘기피 직업’으로 여겨졌던 버스 기사에 도전하는 2030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30 세대 버스 기사는 2022년 7559명에서 2025년 1만389명으로 3년 사이 37% 늘었다. 공단은 예비 버스 기사들을 상대로 매월 버스 안전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데, 지난달 수강 정원(화성센터) 30명 중 17명(57%)이 2030세대였다. 권지원 한국교통안전공단 교수는 “10년 전엔 교육생 대부분이 40·50대였고, 2030세대는 한 반에 10% 정도였다”며 “요즘은 젊은 층이 많아져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철원

2030세대 버스 기사가 늘어난 것은 젊은 세대의 취업난이 심각해졌을 뿐 아니라 버스 기사 임금이나 근무 여건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지역과 버스 회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시내버스 기사 초봉은 대체로 5000만원대라고 한다.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국내 공기업 신입 사원 평균 임금(4180만원·2024년 기준)보다도 높은 것이다. 일부 고연차 기사 가운데는 각종 수당을 포함해 연봉이 7000만원 이상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처우가 좋아진 것은 ‘버스 준공영제’의 영향이 크다. 버스 준공영제는 운행은 민간 버스 회사가 맡되 노선과 배차·요금 체계 등은 지자체가 관리하고, 수입이 운영비에 못 미칠 경우 부족분을 재정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이로 인해 버스 회사 운영이 안정되면서 임금과 근무 여건 개선이 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준공영제는 2004년 서울에서 처음 시작된 뒤 국내 버스 노선이 가장 많은 경기도를 비롯해 현재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에 도입된 상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좋아진 것 역시 2030세대가 버스 기사에 도전하는 이유로 꼽힌다. 과거 버스 기사는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고 다음 날 쉬는 ‘격일제’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준공영제 도입과 함께 ‘2교대제’로 바뀐 곳이 늘어났다고 한다. 일반 사무직처럼 하루 9시간 안팎 근무를 하는 것이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주 5일 운행에 주당 근무 시간은 40~50시간 수준인 곳이 많다. 세종시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4년 차 기사 탁원웅(29)씨는 “현재 주 40시간 정도 근무하는데, 다른 현장직에 비해 몸은 덜 힘들고 임금은 높은 편이라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MZ세대 버스기사 서기원 씨가 13일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역 버스환승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2.13 /남강호 기자

직장 상사·동료와 부딪히지 않고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다는 특성도 장점으로 꼽힌다. 노선 안내나 인사 같은 기본적인 응대 외엔 승객과 대화할 일도 많지 않다. 경기 성남시에서 3년째 버스를 운전하는 천재민(32)씨는 2년간 바리스타로 일하다가 버스 기사로 전직했다. 그는 “카페에서는 수많은 ‘진상 손님’을 상대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버스는 사람한테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적다”며 “운전이 적성에 맞다면 괜찮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청년 취업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버스 기사 취업 장벽이 낮아진 점도 2030세대 유입이 늘어나는 배경이다. 코로나19 시기 버스 운행이 축소되면서 일부 기사가 배달·택배업 등으로 빠져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가 끝나자 버스 기사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마을버스 등에서 1년 이상 경력을 쌓은 뒤 시내버스로 옮기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엔 수개월 경력만 있어도 시내버스 기사로 채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새로 시작하는 청년층에는 상대적으로 진입하기 쉬운 환경이 된 것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 근무’ 탓에 또래 친구들과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첫차나 막차 운행을 맡게 되면 생활 패턴도 완전히 달라지고, 운전직이라는 특성상 술을 마시는 데에도 제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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