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해룡, 확증편향·증거조작”… 6개월 헛심 끝 수사 종결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해 온 서울동부지검 검경 합동수사단(합수단)은 26일 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의혹을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다고 밝혔다. 합수단은 이날 백 경정이 진행했던 수사를 겨냥해 ‘증거 조작’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다는 뜻)’ 같은 표현을 쓰면서 “마약 밀수범의 허위 진술에 의존한 수사로 야기된 실체 없는 의혹”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선 “경찰 경정 1명이 제기한 실체 불명의 의혹을 확인하느라 반년간 세금과 국가 공권력이 낭비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합수단은 이날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세관 마약 밀수 연루, 경찰·관세청 수사 외압,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개입, 검찰 사건 은폐 등 백 경정이 제기해왔던 모든 의혹에 실체가 없다고 보고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과 세관 직원 등 14명을 불송치했다고 밝혔다.
백 경정이 제기한 이런 의혹은 2년 넘게 정국을 흔들었다. 백 경정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있던 2023년 마약 밀수 사건을 수사하다가 말레이시아인 운반책 3명에게서 인천공항 세관 공무원들이 마약 밀수 과정에서 도움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후 그는 세관 공무원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다가 윤석열 정부의 외압을 받았고, 이후 서울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으로 좌천당했다고 주장해 왔다.

작년 6월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뒤 검찰은 대검찰청이 지휘하는 검경 합동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백 경정과 여권 일각에서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면서 합수팀은 친여 성향으로 꼽혀온 임은정 동부지검장 산하로 넘어갔다. 이 대통령은 이후 지난해 10월 임 지검장에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 수사하라”며 백 경정을 수사팀에 합류시키라고 지시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때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특검과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백 경정이 합류하면서 규모도 합동수사단으로 격상됐다.
하지만 합수단은 이날 피의자들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범행 당시 마약 운반책들을 안내했다고 지목된 세관 직원들은 당일 연가를 내거나 조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합수단 수사 과정에서 말레이시아인 운반책들은 “사실은 세관 직원의 도움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기존 진술을 뒤집었다.(본지 11월 5일 자 A8면)
윤석열 정부 당시 대통령실의 외압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수단은 밝혔다. 합수단은 피의자 주거지와 경찰청·인천세관 등 30곳을 압수수색해 휴대전화 46대 등을 포렌식 분석한 결과 경찰 고위직과 대통령실 관계자 간 연락 내역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이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도 실체가 없다고 합수단은 결론 내렸다. 백 경정은 의혹을 제기할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를 해체하는 수준의 인사가 있었고,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찰이 줄줄이 기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합수단 수사 결과, 언론 브리핑 이전인 2023년 9월 검찰의 하반기 정기 인사로 조직 개편이 이미 끝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신청한 영장 24건 중 청구되지 않은 영장은 2건밖에 없었고, 검찰이 반려한 영장도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합수단은 판단했다.
합수단은 오히려 백 경정의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확인돼 경찰청에 백 경정을 징계하라며 관련 혐의 사실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2023년 수사 당시 백 경정은 농림축산검역본부 근무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제 검역 과정에서 신체 검색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 놓고도 수사지휘서 등 수사 서류에 “농림축산검역본부 일제 검역에서 신체 검색을 실시한다”며 정반대로 기재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합수단은 백 경정 수사팀이 찍은 인천공항 현장 검증 영상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 말레이시아인 마약 운반책들이 말레이시아어로 여러 차례 허위 진술을 담합·종용하는 장면도 확인했다. 합수단은 “이 영상은 (운반책들)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임에도 사건 기록에 첨부되지 않았고 번역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합수단은 “백 경정은 수사 초동 단계에서 명백히 확인된 반대 증거들을 배척하고, 세관 직원이 연루되었다는 정해진 결론대로 수사를 진행했다”며 “증거 조작, 정해진 결론에 반하는 진술과 증거를 배척하는 소위 ‘답정너’ 방식의 위법한 수사”라고 했다. 합수단은 “수사 종사자가 수사 원칙을 위반하고 확증 편향에 빠져 마약 밀수범들의 허위 진술에 의존한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고 무분별한 의혹 제기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사안”이라고 했다.
백 경정은 합수단 파견이 종료된 지난달 14일 화곡지구대장으로 복귀하면서 약 5000쪽 분량의 수사 기록을 유출해 서울경찰청이 감찰을 진행 중이다. 수사 기밀 유출은 최대 해임·파면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간 백 경정의 의혹 제기로 2년간 수사를 받아왔던 세관 직원들은 본지에 “백 경정에 대한 법적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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