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벨벳로프 경제’의 진전, 사회통합의 새로운 위협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26. 2. 26.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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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면부지 일행과 친해진
아프리카 여행의 복병은
귀국편 좌석 등급이었다
지불한 만큼 누리지만
사회적 유대를 훼손한다
보완할 시스템 마련을
대한항공이 B777-300ER을 개조해 처음으로 도입한 프리미엄석의 모습. 일반석과 프레스티지석(비즈니스석)의 중간격으로 일반석 대비 1.5배 넓은 면적을 제공한다. /대한항공

오래 꿈꾸어온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왔다. ‘어린 왕자’와 ‘동물의 왕국’이 심어준 로망에 소설가 정유정의 ‘영원한 천국’ 속 사막 여행 정경이 불을 질렀다. 17일간 세렝게티, 빅토리아 폭포, 나미브 사막, 케이프타운 일원을 돌았다.

현실은 꿈과 달랐다. 전문성도 장비도 없이 마음만 들뜬 뜨내기 여행자에게 야생의 동물들은 쉽게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로밍 서비스는 연결이 필요할 때마다 ‘연결 신호 없음’ 신호를 보내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잘 보일까 싶어 탄 열기구는 돈과 시간 낭비였다. 저가 보급폰의 사진 화질이 그 마침표를 찍었다. “나무 위에서 자고 있는 표범이야.” “이 검댕이가?”

기대 안 한 것들이 허탈함을 달랬다. 거대한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그 안의 생태계는 경이로웠다. 습지가 사막화해 형성된 데드블레이의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이란…. 밤이면 머리 위로 은하수가 흘렀고, 장엄한 빛 내림이 대초원과 사막의 아침을 열었다.

하지만 여행의 완성은 함께 다니는 일행들이었다. 생면부지였던 이들이 함께 털털거리는 차를 타고, 함께 감동하고 투덜거리며 가까워졌다. 모래알 같았던 개인들이 서로 배려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원팀으로 거듭났다. 막판 복병을 만나기 전까지는.

긴 여행을 통해 유대감이 충만해진 일행들은 귀국 항공편에서 비즈니스와 일반석(이코노미)으로 좌석 등급이 나뉘자 당혹감에 휩싸였다. 비즈니스 칸에 앉은 이들도, 그 공간을 거쳐 일반석 칸으로 가는 이들도 눈을 피했다. 일반석 등급에 속한 이들도 서로 민망했다. 친밀감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어색함이 가득한 감정의 기복 앞에 필자 역시 망연할 뿐이었다. 그 불편한 심정은 돌아오는 내내 가시지 않았고, 지금도 아프리카 여행의 추억을 억누르는 인지 부조화 요인으로 남아 있다.

사회적 유대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흔히 정치 성향의 차이를 꼽는다. 이번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격의가 없어지자 드러나는 정치적 속내는 긴장을 조성했다. “장동혁 대표, 정말 잘하지 않아요?” “….” “한덕수가 무슨 잘못을 했죠?” “….” 경제적 지위와 연결된 거주지 노출도 아슬아슬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반가워요. 우린 강남에서 왔는데.” “우린 강남은 아니고….” 매너와 소통 능력도 중요했다. 튀는 언행은 눈총을 샀고 이를 반복하는 사람은 공적이 되었다.

그러나 막판 좌석 등급 구분의 불편한 감정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벨벳로프(velvet rope) 경제’로 지칭되는 이런 서비스 등급 구분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지불한 만큼 편익을 누리는 것이 시장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다. 필자는 지금껏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이코노미를 이용해 왔다. 가격이 3~5배에 달하는 비즈니스는 능력 밖인 데다가, 경제적 여건이나 상황적 필요에 따른 개인의 선택이라 굳이 서로를 의식하며 껄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일체감이 형성된 상황에서 이러한 등급 구분은 더 이상 개인의 선택으로만 남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적 유대를 일거에 황폐화하는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이를 통해 필자는 한국 사회의 뉴노멀로 자리 잡은 벨벳로프 경제가 종래의 계급·계층 내지 정치 진영 못지않게 사회 통합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시장 기반의 사회는 차별을 기반으로 발전한다. 우등 버스 위의 프리미엄 버스, VIP 고객 위의 VVIP 고객 식으로, 시장은 기본적인 의식주는 물론 의료, 교육, 건강, 돌봄, 여가, 이동 등 삶의 요소들을 한층 세밀한 등급으로 가를 것이다. 문제는 이 추세가 시장의 진전만큼 공동체를 위축시키고, 후자가 복원되는 소중한 계기에 양자를 충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위의 에피소드는 이러한 충돌이 지닌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그 일 이후 한동안 필자에게 아프리카 여행은 떠올리기도 말하기도 싫은 기억이 되었다.

벨벳로프에 맞서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 사회 통합의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 “등급 철폐!” 류의 현실성을 결여한 이념적 구호나 “당신도 비즈니스 타든지!”처럼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편 가르기식 접근은 둘 다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보여주기식 ‘사회 통합 위원회’ 같은 기구가 답을 줄 리도 만무하다.

차별화된 등급 서비스가 크고 작은 공동체적 연대를 훼손하지 않도록 보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지만 문제 제기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글에 소개한 것 같은 사례들을 조사하고 그 트라우마를 분석하는 게 과제를 풀어가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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