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의 무게여 안녕] 걱정만 하지 말고 그냥, 철없는 아이처럼 그냥

장미란 용인대 교수·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026. 2. 26.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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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요? 이걸요? 왜요?” 묻지 못한 딸
불편한 감정 숨기고 잘 참고 싶던 아이
역도가 싫었지만 ‘그냥’ 들고 또 들었다
의젓한 아이가 이젠 철없는 어른 됐지만
그 태도로 한계 넘어서는 경험을 얻었다
피할 수 없다면 득실 따지지 말고, 그냥
/일러스트=양진경

어느 날 직원들과 대화하며 깔깔깔 웃은 적이 있다. 요즘 흔히 MZ세대들이 하는 말 중에 ‘3요’가 있다고 했다. ‘제가요? 이걸요? 왜요?’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 말이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때로 내 마음이 건조해 웃고 싶을 땐 “아! 그 MZ들이 한다는 말 그거 뭐였죠?”라고 일부러 물어보고 시원하게 웃는다. 내가 만약 역도 해 보라고 권했던 부모님께 저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제가요? 이걸요? 왜요?”

나는 어려서부터 의젓한 아이였다.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어쩜 미란이는 저렇게 어른스러워, 생각이 깊어, 동생들을 잘 챙겨’ 등의 칭찬들이었다. 내 기준에서 ‘의젓한 아이’란 하고 싶지 않아도 부모님이 좋아하실 것 같은 일이면 묻지 않고 따르며 어려움이 있어도 잘 참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불편한 감정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언제나 의젓한 그런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나 선생님 말씀에 “왜요?”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해야 하는 일들이 주어지면 득실과 이해를 따지지 않고 ‘그래, 해 보고 이야기해야지, 해 보지도 않고 안 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부모님이 역도를 시키셨을 때도, 선생님이 공부하라고 하셨을 때도 그냥 했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처음 역도를 시키셨을 때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우리 엄마는 친엄마가 아닌가?’ ‘다른 집 딸들은 무용을 배우고, 악기를 배우는데 우리 엄마는 웬 역도?’ 하며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의젓한 딸이고 싶어 그냥 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실컷 놀고 싶었지만 선생님들은 나에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내게만 들렸던 ‘띠로리의 멜로디(절망할 때 들리는 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렇게 나는 때마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그냥 했다.

장미란(당시 25세)이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에서 인상 140㎏을 번쩍 든 모습. 장미란은 합계 326㎏(인상 140㎏, 용상 186㎏)을 들어 올려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어른들은 늘 부모님,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하기 싫은 것만 하라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가 않다. 공부하라고, 운동하라고, 골고루 먹으라고 등등…. 생각해 보면 다 필요하고 유익한 말들인데 왜 이렇게 듣고 싶지 않은 걸까? 오히려 반대로 하고 싶은 ‘청개구리 띠’를 두르고 태어난 것처럼 행동한다.

나는 그간 해 온 많은 선택 가운데 혼자 결정한 선택이 후회스러운 때가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이후로 나는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꼭 묻고 상의한다. 중요한 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친구에게 어떤 선물을 해주면 좋을지까지 엄마와 상의한다.

내가 아무리 좋은 경험을 많이 해 보았다 하더라도 어른들이 걸어온 수많은 경험의 시간을 통한 지혜는 따라갈 수 없기에 나는 다 물어본다. 때로는 하루 일정이 여러 개 있을 때 이동 동선까지도 엄마에게 물어본다. 그럼 동생들은 옆에서 놀리듯 이야기한다. “언니~ 왜? 엄마한테 이거도 물어보지…?” “뭐?” “엄마~ 내가 지금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지금 가는 게 나을까, 아니면 좀 참았다 가는 게 나을까?” 라고 놀린다.

그래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지혜가 필요해서 묻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쌓인 이야기들은 어느새 대화를 더 풍성하고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나눌수록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 시간이 내 마음을 얼마나 따뜻하고 든든하게 채워 주는지 모른다.

어려서 ‘의젓한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철없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운동하면서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려워서 못 하겠어요” 같은 투정을 종종 부린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입 밖으로 내는 어려움이 내 안에 쌓여 있던 무거움을 좀 가볍게 해준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내뱉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해소된다.

문체부 차관 시절의 장미란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계속 의젓한 아이로 살고 싶었지만 너무 무거워서 포기했다. 이제는 조금 가벼워 보이더라도, 철없는 아이처럼 살고 싶다. 부모님께 사랑받는 것이 좋다. 선생님에게 지혜를 얻는 것도 좋다. “제 걱정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이 좋다. 그 마음들이 나를 든든하게 해주고 자신감 있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얻은 사랑 덕분에 힘든 일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과 태도가 이전보다 유연하고 능숙해졌다.

집에서, 학교 또는 직장에서,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득실을 따지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냥 해 보자.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기대를 해 보자. 도무지 어려울 땐 어른들에게 묻고 도움을 요청해 보자. 그래도 안 될 땐 내려놨다가 한숨 쉬고 다시 들어 올려 보자. 그래도 해결 안 되면 그냥 또 견뎌 보자.

그 시간 안에 겪는 모든 행동과 감정들이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해 줄 것이다. 나 이런 경험을 했고 이런 걸 배웠다고 자랑도 해 보자. 걱정만 하지 말고 그냥, 철없는 아이처럼 그냥, 그냥 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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