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노후 은마아파트 화재"⋯구축 몰린 노원구는? [현장]
노원구 연평균 화재 162건 달해⋯사유재산에 대한 국가 개입도 난제
[아이뉴스24 김민지 기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화재 사고로 노후 공동주택의 화재 안전망에 대한 경종이 울렸다.
소방과 건축 관련법상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소급 적용되지 않는 탓에, 1990년대 이전 지어진 수백만 채의 노후 아파트가 사실상 소방 공백 상태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에서 노후 아파트 밀집도가 가장 높은 노원구 상계동 일대를 찾아 현장의 실태와 의견을 들어보니, 주민들은 불안한 가운데서도 비용과 건축구조 등의 문제로 인해 스프링클러 설치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1987년 준공된 5층짜리 노후 아파트다. 현재 재건축이 진행 중이며, 한화 건설부문이 시공사로 선정돼 최고 35층, 5개 동, 총 996가구 규모의 단지로 탈바꿈되고 있다. 2026.02.26 [사진=김민지 기자]](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6/inews24/20260226212144230xwxn.jpg)
서울소방재난본부와 통계청 자료를 종합하면, 노원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준공 30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특히 상계·중계·하계동의 대단지들은 대부분 1992년 개정 소방법 시행령에 따른 '16층 이상 건축물에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이전에 조성되어 화재 초기 진압에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지난 24일 화재로 10대 학생의 안타까운 사망사고를 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데다, 화재 당시 이중 주차 등으로 소방차 진입이 늦어지며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아파트 단지 내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작성한 '겨울철 화재 예방' 공고가 붙어 있다. 2026.02.26 [사진=김민지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6/inews24/20260226212145515qsem.jpg)
상계주공 7단지와 보람아파트 등은 최고 15층에 달하는 고층 건물임에도 세대 내 스프링클러가 없는 경우가 많다. 1988년 준공 당시 소방법은 16층 이상 건물에만 설치를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노원역 인근 공인중개사 A씨는 "복도식 구조인 경우가 많아 이런 구축 단지들은 연기에 취약해 불이 나면 더 위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단지는 화재 시 연기가 수직·수평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연돌 효과(Stack Effect)'를 일으킬 수 있으며, 야간 이중 주차 문제는 유사시 소방차 진입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다. 노원소방서 관계자는 "주거밀집도가 높은 30년 이상 된 아파트는 화재 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며 "현장에서는 진입 동선 확인 및 대피 훈련을 지속하고 있으나, 내부 소방 설비 부재는 대응 능력의 근본적 취약점"이라고 설명했다.
재건축 앞둔 아파트 "유지에 초점, 관리소도 고역"⋯법안은 어떻게?
현장 관리 주체들 역시 소방 보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재건축을 통한 근본적 해결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호소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계주공단지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38년 된 단지라 스프링클러가 없고, 현재 재건축 이주를 앞두고 있어 별도의 소방 시설 확충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여기에 장기수선충당금의 한계와 노후 배관의 하중 문제 등 물리적 요인까지 겹치며 관리 주체의 고민도 깊다.
또 이 관계자는 "노후 단지 특성상 배관을 새로 깔 공간 확보조차 쉽지 않은 데다, 막대한 공사비를 주민 분담금으로 충당하기엔 현실적인 저항이 크지 않을까 싶다"며 현장의 고충을 토로했다.
노후 단지의 화재는 발생 빈도보다 그 '원인'과 '확산 속도'에서 더 큰 위험성을 드러낸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NFDS) 분석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준공 30년을 넘긴 노후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화재 중 전기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신축 단지 대비 약 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배선의 절연 성능이 떨어지는 '절연 열화'나 노후 차단기 오작동 등이 주요 원인이라는 게 관리소의 얘기다.
특히 노원구의 경우 최근 5년(2020~2024년)간 연평균 162건의 주거시설 화재가 발생했으며, 이 중 대다수가 스프링클러가 없는 구축 아파트에 집중돼 있어 초기 진압에 난항을 겪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반복되는 노후 단지의 화재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7월 국민의힘 김미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이 대표 발의한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전국 노후 아파트에 소급 적용할 경우 약 43조원(추정치)의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일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아파트 단지 내 복도에서 바라본 가구들 사이 낡은 벽돌 디자인 위로 소화전이 달려있다. 2026.02.26 [사진=김민지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6/inews24/20260226212146810zgsn.jpg)
"국가 지원인가, 사유재산 보강인가" 국민적 합의 필요성 제기
전문가들은 노후 아파트 소방 보강 문제가 단순히 예산을 넘어 사회적 합의의 영역에 있다고 분석한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스프링클러가 화재 진압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자명하지만, 설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은마아파트처럼 자산 가치가 큰 사유 재산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고민이 많겠지만, 과연 국가가 예산을 들여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주는 것이 좋을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법리적 타당성과 예산의 효율성을 따져봐야 하는 꽤 어려운 문제"라고 분석했다.
결국 재건축을 통한 교체 전까지 발생할 '안전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가구별 간이 소화 기구 보급이나 화재 감지기 강화 등 저비용·고효율의 대체 방안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스프링클러는 화재 확산을 초기에 억제해 대형 참사를 막는 핵심 설비로, 해외 연구에 따르면 설치 시 화재 규모를 약 90% 내외까지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설비의 보급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유지 관리'라고 했다.
함 교수는 "미국의 경우 무상 지원을 받을 때 유지관리법이나 대응 요령 등을 이수해야만 한다"며 "단순히 기기를 보급하는 데 그치면 정작 화재 시 작동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독형 화재감지기 설치 지원 등 기존 사업들도 실질적인 관리 체계와 병행돼야 정책적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노후 아파트 화재 문제는 단순히 설비의 부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건축 전까지 이어지는 '안전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라는 사회적 과제로 이어진다. 결국 국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고, 비용 부담과 지원 주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향후 노후 공동주택 화재 예방의 핵심 관건이 될 전망이다.
![노원구 상계주공6단지 아파트 단지 내부 모습. [사진=김민지 기자]](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6/inews24/20260226212148385hcj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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