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판경제학] 2. 남동산단-점심 풍경이 전하는 오늘
장사의 귀재 연희씨 이야기
한 때 7개 운영…인근서 업체 직원 식사
이제 90인분 뿐…갈수록 줄어 '근심'
마지막 점심 순철씨 이야기
공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수년째 식사
더이상 못 버텨…공장 불 끄는 날 눈앞
고기 못 먹는 자호르씨 이야기
점심시간, 제육볶음 등 고기 요리 향연
무슬림 금기로 불가…참치캔으로 대체
길 위에 헤매는 믹스 커피
식판 10분 내 비우고 길어야 20분 소요
식후 커피 한잔·담배 한개비로 재충전


남동산단에는 '삼인칭 밥 짓는 사람 시점'이 있다.
산단이 자리한 고잔동 연희씨(69·가명)의 구내식당에는 매일 점심 100명이 먹을 양의 밥과 국, 반찬이 차려진다.
"나이가 들어 깍두기도 잘 못 씹겠네."
"오, 김칫국. 어제 술 많이 마셨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 식판에 음식을 퍼 담으면, 도란도란 이야기가 오간다. 연희씨는 중간중간 반찬을 채우고 값을 계산하면서도 그런 장면을 흘낏 살핀다.
"밀린 월급이 언제 들어오느냐"는 푸념, "새로 뽑은 직원이 며칠 못 버티고 나갔다"는 한숨, "갑자기 공장을 접게 됐다"는 통보까지.
연희씨가 30년 넘게 운영 중인 식당 곳곳에는 이런저런 얘기들이 켜켜이 쌓여 가고 있다. 좋은 시절에는 좋은 얘기들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장면 넷. '장사의 귀재'에게 듣는 산단 오늘-연희씨 이야기
"처음 보는 얼굴인데 계속 정수씨랑 떠들길래 누구지 하고 유심히 봤네."
밥 먹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던 기자 역시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식당에서는 아는 사람들이 와 대개 조용히 먹고, 조용히 일어난다. 인터뷰하겠다고 고군분투하는 그 낯선 흐름을 연희씨는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자주 보이던 나이 지긋한 직원 몇몇이 지난달부터 더 이상 밥 먹으러 오지 않더라고. 나중에 들었는데, 회사가 정년 넘은 직원들 계약을 연장해 주지 않았대. 이렇게 가차 없이 아웃이야" 연희씨가 요즘 '손님들 얼굴 관찰하기'에 더 신경을 쓰는 이유 중 하나다.
연희씨 가게에는 총 7개 장부가 있다. 근처 회사 7곳 직원들 밥 먹는 숫자를 헤아리는 용도다. 날이 갈수록 거기에 적는 이름들이 줄고 있어서 연희씨도 걱정이다.
"얼마 전만 해도 점심에 150인분 정도 준비하다가 이젠 90명 정도로 줄였다. 공장들이 일감이 없으니까 야근도 안 한다. 저녁 장사도 접을까 하다가 열댓명 손님 때문에 안 할 수가 없어서 연다"고 전했다.
얘기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연희씨는 예전부터 이 동네서 유명한 '장사의 귀재'였다. 잘 나갈 때는 남동산단에서만 식당을 7곳 돌렸다.
가게마다 직원이 7~8명이었다. 제조업의 시간이 지나가며 남동산단도 각박해졌고 그의 사업도 7곳에서 1곳으로 몸집이 줄었다. 이제는 직원 한 명과 둘이서 '구내식당'을 이어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엄청 좋았었지. 공장 사람들이 밝고, 활기차고 그랬어. 사장님들도 돈 많이 벌었지. 근데 지금은 사장님부터 힘들어. 옛날이랑 달라."

▲장면 다섯. '사장님'의 마지막 점심-순철씨 이야기
"공장이랑 가까워서"라는 이유로 수년째 장부를 대고 먹고 있다는 고잔동 한 기사식당에서 만난 순철씨는 심드렁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말에도 길게 자란 눈썹을 치켜올릴 뿐 좋다 혹은 싫다 반응도 없었다. 완전한 무시였다. 인터뷰를 꺼낸 쪽에서 기가 죽어 식판 위 콩나물무침만 뒤적이고 있을 때쯤, 순철씨와 함께 밥을 먹던 남성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대뜸 "사촌동생"이라고 했다. 앞서 나간 남자를 가리키는 말 같았다. 그의 식판은 아직 절반도 비워지지 않았다. 덕분에 잠깐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순철씨는 전라도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친 뒤 상경했다. 서울에서 기술을 배워 김포 개별공장 단지에서 금형업을 시작했고, 90년대 부평구를 거쳐 2000년대 초반 남동산단에 자리를 잡았다. 공장 잘 나갈 땐 직원이 10명도 넘었다. 지금은 공장을 잘게 쪼갠 임대 공간에서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산단 임대료 오르고 인건비는 더 무섭게 오르고 우리 버는 돈은 그대로니까 규모를 줄이지 않고 버틸 수 없었다. 다들 그랬다."
순철씨는 40년 가까이 '사장님'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이제는 그 명함을 내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환갑을 넘기며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고, 칠순에 가까워지자 병이 찾아왔다. "뭐, 위암이야. 담배 많이 펴서 와이프한테 혼났는데 정작 위가 안 좋다더라고."
공장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왔다. 빚은 4억원까지 불어 있었다. IMF와 외환위기, 코로나19를 거치며 은행 대출은 캐피털로 옮겨갔고, 거래처 대금은 제때 들어오지 않았다.
"사촌동생이 마지막 직원이야. 걔 노후연금 받을 때까진 버티려고 했는데…."
순철씨는 결국 부동산을 처분할 생각이라고 했다. 부동산이 집인지 땅인지 이런 자세한 사정은 묻지 못했다.
순철 사장님이 오랫동안 정을 붙이고 먹었던 이 식당은 전라도 손맛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래서 "동향이라 입맛에 맞으셨겠다" 아는 체를 좀 했더니, "전라도 떠난 게 50년도 더 됐다. 이제 여기서 몇 번 먹을 일이 안 남았다. 그러게. 나중엔 그리우려나."
▲장면 여섯. '제육 양념이 묻지 않는 식판'-자호르씨 이야기
산단 식당에서 이름깨나 날리려면 제육볶음을 대충 해선 안 된다. 돼지고기 숭덩숭덩 넣은 김치찌개, 바싹하게 튀긴 돈가스, 삼겹살을 더해 내놓는 '오삼'까지. 이곳 점심은 말 그대로 돼지고기의 향연이다.
남동산단 2공구의 한 식당. 대부분 식판이 제육 양념으로 붉게 물들어갈 때, 한 식판만 색이 달랐다. 우즈베키스탄 국적 자호르(가명)씨의 반찬 칸에는 통조림 참치가 올라가 있었다. 이날 메뉴에는 없던 것이다.
"처음엔 뭐가 돼지고기인지 몰라 힘들었어요. 지금은 사장님이 제육이나 돈가스 나오는 날엔 이렇게 챙겨줘요."
이슬람 율법상 돼지고기는 금기다. 우즈베키스탄 인구 대다수가 무슬림이고, 자호르씨 역시 그렇다. 현지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강사로 일했지만 돈을 모으기 어려워 한국행을 택했다. 지금은 남동산단 한 공장에서 일한다. 월급은 300여만원. 절반은 생활비로 쓰고, 절반은 고향에 있는 아내와 아들에게 보낸다.
고향엔 비밀이지만. 그는 삼겹살 회식 자리에 앉아본 적도 있다. "우리끼리 따로 모여 먹는 것도 벽 같아요. 여기서 같이 먹으려고 해요. 참치 맛있잖아요."
▲장면 일곱. 길 위를 헤매는 믹스커피와 담배
남동산단 점심값은 현금가 6000원, 어떤 집은 6500원이다. 식판은 대개 10분 안에 비워진다. 길어야 20분이다. 더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산단 기사식당에서는 밥을 오래 씹지 않는다. 말도 길게 하지 않는다. 다 먹으면 식판을 밀어 넣고 일어난다. 그게 이곳 점심의 암묵적인 룰이다.
식당 문을 나서면 거의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전봇대 아래, 공장 입구, 골목 모퉁이마다 몇 명씩 서 있다. 손에는 믹스커피 한 잔, 다른 손엔 담배 한 개비. 겨울에도 작업복 외투를 여미고 서서 종이컵 커피를 마신다.
보통 회사원들 점심시간은 1시간. 그렇다면 식당 밖에선 40분 정도 여유를 부릴 수 있다. 공장 사람들은 사방이 다른 공장이라 그냥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다 공장으로 돌아갔다. 과거 아파트형공장으로 불렸던 지식산업센터가 주변에 있으면 편의점이나 작은 카페라도 기대할 텐데 그렇지 못한 구역이 허다하다.
여의도의 세 배가 넘는 9.57㎢ 산업단지 안에서, 중심 상권은 멀고 편의점도 드물다. 사람들은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식판에 담긴 음식을 밀어 넣고, 믹스커피를 들고,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다시 기계 앞으로 돌아간다. 기계 소리가 다시 커진다.
/김원진·정혜리·홍준기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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