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사는 노년의 집] <하> “한지붕 아래 사는 노년에 만난 가족” 부산 도란도란하우스 가보니
안창커뮤니티센터 3~4층에 둥지
1층 카페·빨래방 '마을 사랑방' 역할
보건소서 두 달에 한 번씩 검진도 나와
최근 고령자복지주택인 서울 도봉구 '해심당'을 다녀온 영남일보 취재진은 한국의 동남쪽 끝 부산으로 재차 향했다. 부산 부산진구에 있는 고령자복지주택 '도란도란하우스'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그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노인 안전지대다" "각자 한발씩 양보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라며 한결같이 만족감을 표했다. 다양한 이유로 홀로 살던 어르신들이 거실과 부엌을 공유하고 각자의 방을 쓰는 이곳은 여느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란도란하우스 노인들이 느끼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그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직접 담아봤다.
◆관리 인력 상주…어르신 밀착케어




지난 10일 방문한 도란도란하우스는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모토로 2023년 문을 열었다. 2019년 마을정비사업 일환으로 조성된 안창커뮤니티센터 3~4층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지상 4층 규모로 1층은 카페와 빨래방, 2층은 프로그램실, 3층은 사무실, 4층은 주거시설(총 8호실)로 구성됐다. 도란도란하우스에는 부산진구에 주소지를 둔 일상생활이 가능한 65세 이상 어르신 누구나 입주할 수 있다. 2년 단위 재계약을 통해 계속 거주할 수 있으며, 현재는 어르신 8명이 거주 중(만실)이다.
이날 둘러본 도란도란하우스의 가장 큰 특징은 인근 마을 주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유 공간의 존재 여부였다.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1층 카페가 마을 사랑방 역할을 도맡은 것. 이날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도 마을 어르신 4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2층 프로그램실은 체조·노래·그림 수업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입주 어르신뿐 아니라 부산 진구 거주 어르신들 모두 수업 참여가 가능했다.
도란도란하우스를 관리하는 직원들이 같은 건물 3층에 상주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이곳 어르신들은 개인물품 훼손 및 고장 등의 자잘한 민원부터 몸이 아프거나 누군가 끼니를 거르는 상황까지 직원들에게 직접 전달한다. 박은지 도란도란하우스 관리팀장은 "이곳 어르신들은 고령이다 보니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관리 인력이 옆에 상주함으로써 긴급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크다"고 말했다.
◆함께 살며 서로 안부 챙기는 공동체

도란도란하우스에 모여 사는 어르신들은 서로를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고 있었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함께 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 잠드는 일상 속에서 새로 생긴 가족을 챙기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권경해(여·73) 어르신은 3년 전 이곳에 입주했다. 여주에서 살던 권 어르신은 남편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뒤 친언니가 있는 부산에 정착했다. 권 어르신은 "한동안 언니와 함께 살다 우연히 도란도란하우스 입주 공고를 보고 들어오게 됐다"며 "각자 오랜 세월 다른 삶을 살다 함께 지내다 보니 처음엔 약간의 충돌도 있었지만 서로 양보하며 살다 보니 유익한 점이 훨씬 많다"고 했다. 이어 "서로 건강을 걱정하고 늦게 돌아오면 전화도 하게 된다. 이렇게 부대끼며 살다 보면 피가 안 섞여도 가족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조원숙(여·81) 어르신은 도란도란하우스에 입주한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까지 딸이 있던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다가 집안 사정을 이유로 떨어져 살게 됐다. 지역 복지관 소개로 도란도란하우스에 입주한 조 어르신은 "책상, 옷장, 냉장고, 침대 등 웬만한 옵션이 갖춰져 있어 밥그릇만 들고 오면 된다는 말이 기억난다"며 "여기 와서는 친구들과 체조도 하고 노래도 함께 부르니 재미있다"고 말했다. 또 "두 달에 한 번씩 치매안심센터와 인근 보건소 관계자들이 찾아와 건강도 살펴준다. 정말 고맙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취재진과 인터뷰를 이어가던 권경해·조원숙 어르신은 서로를 알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마침 부산 일대에 눈발이 흩날리자 권·조 어르신은 "외출한 이들의 귀갓길이 걱정된다"며 걱정을 내비쳤다. 곧장 박 팀장에 이를 전달했고, 외출한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돌려 귀가 시간과 이동 불편 여부를 확인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나이 들었을 때 비슷한 연배끼리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이런 선택지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라며 "도란도란하우스 같은 곳이 전국에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담 없는 수준의 임대료 측정 중요"
서울과 부산 사례를 토대로 고령자복지주택 상황을 지역별로 분석해 보니, 제도적 실효성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어르신들이 부담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임대료 규모였다.
서울 도봉구 '해심당'의 경우 원룸 기준(전용면적 32㎡) 보증금 800만원, 월세 40만원 수준이다. 인근 시세의 약 45% 수준으로, 차상위계층 입주자는 월 34만원의 주거급여를 지원받아 실제 부담액은 약 7만원에 그친다.
부산 부산진구 '도란도란하우스'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3만~18만원 수준이다. 차상위계층의 경우 주거급여를 통해 월세 부담이 사실상 없다.
내달 대구 남구에 문을 여는 어르신 '일자리+주거' 통합 모델 '이룸채'의 임대료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15만원으로 책정된 상태다. 입주자는 2년 단위 연장을 통해 최대 4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이 기간 납부한 월 임대료는 별도 적립됐다가 퇴거 시 자립축하금으로 반환된다.
대구 남구청 측은 "퇴소 이후 월세 전액을 자립축하금으로 돌려주는 게 '이룸채'의 차별화된 방식이다. 시니어 일자리로의 진입 또한 기대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고령자 일자리와 주거 지원을 결합한 대구 최초 복지 정책인 만큼, 내달 입주자 모집을 앞두고 타 구·군 주민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 "지역사회와 연계한 설계 중요"

영남일보 취재진은 도란도란하우스 사례를 토대로 대구에 접목할 만한 고령자복지주택 조건에 대해 강상훈 교수(사회복지학과)에 조언을 구했다. 강 교수는 가장 전략적으로 참고해야 할 요소로 주거 공간 안에서 '돌봄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도록 설계한 점을 꼽았다.
그는 "도란도란하우스는 입주자 간 내부 결속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 주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시설 내 고립'을 막고 마을 관계망을 주택 안으로 끌어들였다"며 "고독사 위험은 개인 단위가 아니라 행정동 단위로 분포·군집하는 구조적 특성이 있는 만큼 고령자복지주택을 설계할 때는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중요하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거와 커뮤니티 기능을 동시에 구축하는 방안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구형 고령자복지주택 모델의 경우 상주 관리 인력을 기본으로 하되 '주간 상주+야간 응급 연계+주민활동가 방문'을 결합한 '다층 연계 안전망' 방식으로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강 교수는 고령자복지주택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원스톱' 통합 행정 창구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돌봄은 복지 부서, 주택은 주거 부서가 각각 담당하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돌봄 대상자 발굴·모니터링, 돌봄 보금자리 운영 등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추진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고령자복지주택은 복지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주거와 돌봄, 지역사회 자원을 한곳에 연결할 경우 지역 돌봄의 실효성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윤화기자 truehwa@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