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 전 이 땅에 울렸던 만세 소리 이제는 안내문 속에 ‘가물’

우제성 기자 2026. 2. 2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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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전 찾은 인천의 독립운동 현장들은 평온했다.

인천의 만세운동은 학교를 비우고, 공원에서 만나고 장날에 모여 거리로 나서는 선택을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결단이 모여 만들어졌다.

학교 안에는 '3·1 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나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3·1만세운동 당시 장날을 이용해 수백 명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벌어진 곳으로, 인천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대대적인 3·1운동이 전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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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인천 독립운동 현장의 오늘
자유공원 내부에 조성된 '한성임시정부 수립 13도 대표자회의 집결지' 표지석.
"여기가 만세운동 했던 곳인가요?"

평일 오전 찾은 인천의 독립운동 현장들은 평온했다. 장터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공원은 산책객으로 채워졌으며, 학교 인근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세기 전 만세가 울려 퍼졌던 공간이라는 사실은 안내문을 읽지 않으면 쉽게 떠올리기 어려웠다.

인천의 만세운동은 학교를 비우고, 공원에서 만나고 장날에 모여 거리로 나서는 선택을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결단이 모여 만들어졌다. 만세의 흔적은 기념비와 표지석, 안내문 등 물리적 형태로 남았지만, 그 의미는 시민들의 기억 속에 온전히 남아 있지 않다.

오전 9시 30분 중구 자유공원은 여유로웠다. 한결 풀린 날씨에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공원을 채웠고, 벤치마다 잠시 쉬어가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한때 이곳을 가득 메웠던 만세운동의 함성은 잊힌 듯했다.

맥아더 장군상 인근에는 '한성임시정부 수립 13도 대표자회의 집결지'라고 적힌 표지석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알아보는 시민은 드물었다. 시민들은 표지석 앞을 스치듯 지나갈 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중구에 오래 거주했다는 이모(57) 씨는 "개항장 역사나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자유공원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건 처음 알았다"며 "임시정부라고 하면 막연히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결의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동구 창영초등학교 내 세워진 '3·1 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
같은 시각 동구 창영초등학교 인근에서 만난 시민들은 기억과 잊힘이 공존했다. 1919년 3월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 학생들은 서울에서 3·1운동 소식을 듣고 동맹휴학을 결정했다. 거리로 나온 학생들은 시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운동을 이어갔다.

학교 안에는 '3·1 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나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이진호(11) 군은 "창영초가 독립운동과 관련된 곳이라는 걸 몰랐다"며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거리로 나갔다는 게 신기하다. 3·1운동을 서울에서만 한 줄 알았는데, 인천에서도 이렇게 크게 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금창동에 거주하는 김혁필(82) 씨는 "창영초는 인천 최초의 보통학교이기도 하고, 독립운동의 시작점 중 하나였다"며 "어른들도 쉽지 않았던 시절에 학생들이 동맹휴학까지 했다는 건 정말 큰 결단이었다. 인천 독립운동의 불씨였다"고 기억했다.

계양구 황어장터 3·1 만세운동 기념관 입구.
계양구 황어장터 역시 인천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현장이다. 3·1만세운동 당시 장날을 이용해 수백 명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벌어진 곳으로, 인천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대대적인 3·1운동이 전개됐다. 현재 이곳에는 '황어장터 3·1 만세운동 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이날 오전 찾은 황어장터 3·1 만세운동 기념관은 당시의 함성이 무색할 만큼 정적만이 감돌았다. 기념관 관계자는 "주말이나 방학 기간에는 가족 단위나 학생 단체 방문이 있지만, 평일에는 하루 4~5명에서 많아야 10명 정도"라고 전했다.

장기동에 거주하는 A(73) 씨는 "이곳이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자리이고, 예전에는 큰 장이 서던 광장이어서 시위하기 좋았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며 "해마다 추모 행사와 만세 퍼포먼스는 진행되지만, 만세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나 순국한 이들이 누구였는지까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제성·김민지·정병훈 기자 kmj@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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