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따지면 혁신 되겠습니까...우둔한 인재들이 세상 바꿉니다”
적당함에 익숙해진 연구 문화
韓선수들, 골대 주변에만 몰려
과학은 월드컵·올림픽과 달라
최고가 아닌 최초가 되는 게임
![김성근 포스텍 총장이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혁신적인 연구개발(R&D)의 조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첨단 물리화학 분야 세계적 석학인 그는 2023년부터 포스텍 총장을 맡아 ‘우둔한 인재’를 키우는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포스텍]](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6/mk/20260226192101730qjac.jpg)
국내최고 수재들이 모이는 포스텍의 인재상이 ‘우둔한 사람’이란다. 올해로 설립 40주년을 맞은 포스텍은 ‘우둔한 사람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약삭 빠르게 눈앞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아니라, 우직하게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연구자를 키운다는 의미다. 김성근 포스텍 총장은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모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연구개발(R&D)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길”이라고 했다.
김 총장은 특히 사회 전반적인 문화를 강조하면서, 정부와 연구자의 마음가짐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가 도전적인 R&D를 강조하고 있는데,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문화가 자리잡혀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 도전적인 연구가 부족한 이유는 뭘까. 김 총장은 “우리는 새로운 과학을 선도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과를 먹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사과를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동안 한국은 패스트폴로어로 선진국과 격차를 좁히느라, 혁신·도전 연구는 슬로건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정권이 도전적인 연구를 강조했지만, 매번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은 이유다.
김 총장은 “우리가 스스로 ‘빠른 추격자’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추격도 아니고 추종에 가깝다”고 했다. 남들이 한 연구를 반복하고, 성능을 조금 개선하는 수준의 결과를 내놓은 게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김 총장은 “여전히 정량 수치가 높아야 우수한 과학자라고 착각한다. 과학은 올림픽과 달라서 최고가 아닌 최초를 높게 평가하기에 연구자들도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김 총장은 국내 R&D 생태계를 ‘골대 주변에만 선수가 몰려 있는 축구장’으로 비유했다. 뛰어난 축구선수는 빈 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이 좋아야 하지만, 국내 연구자들은 ‘공만 쫓아 골대를 서성이는 선수’ 같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끊임없이 결과를 요구하는 시스템에서 우리도 익숙한 질문만 던지는 데 익숙해졌다”고 했다.
이런 모습은 모험과 위험을 회피하고 가성비를 따지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서 비롯됐다는 게 김 총장의 진단이다. 의대 열풍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김 총장은 “한국이 의대에 열광하는 건 하방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그만큼 사회가 위험 부담에 취약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성장 가능성보다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이 최초를 꿈꿀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돈보다 성장 가능성 열어줘야
![김성근 포스텍 총장은 “의대 열풍은 한국이 얼마나 가성비를 따지는 사회인 지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세계최초와 혁신을 이루려면 실패를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포스텍]](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6/mk/20260226192103119rpbl.jpg)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 어떻게 보면 우둔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김 총장의 추구하는 인재상이다. 문화를 바꾸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명확한 방법도 없지만 김 총장은 포스텍에서 다양한 최초의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 최초 연구정착금 10억 원 지원, 신입생 200분 면접, 학생당 1000만 원의 바우처 지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구성원들이 새로운 걸 시도하게끔 격려하고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다.
김 총장은 “연구는 결국 개인의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며 “연구자가 자신의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일 시간과 호흡을 보장하고 싶었다”고 했다. 연구자에게 자율성과 실패를 감당할 여유를 주지 않으면 안전한 주제, 빠른 결과가 나올 연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스텍을 제외한 국내 대학들은 연구정착금이 많아야 2~3억 원 수준이고, 수천만 원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학생 한 명당 1000만 원씩 주어지는 ‘패스파인더 바우처’도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라는 취지다. 포스텍 학생들은 입학과 함께 1000만 원을 받는데, 연구, 창업, 해외 학술행사 참석 등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일부 학생들은 지난해 노벨상 학술 포럼해 다녀와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연을 직접 듣기도 했다.
이러한 실험의 핵심은 실패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다. 김 총장은 “퍼스트무버를 키우려면 거창한 제도보다 실패를 가볍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실패가 무섭지 않아야 남들이 이미 검증해놓은 길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답을 모른 채 길을 떠나는 게 과학의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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