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세평] 감정조절에 실패하면 행복전문가도 우울해진다

정갑수 2026. 2. 26. 18: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정갑수 수필가·인천 시민교수

행복을 연구하고 감정을 가르치는 사람은 언제나 평온할 것이라는 믿음은 착각이다. 감정은 지식에 복종하지 않는다. 감정 조절에 실패하면 '행복 전문가'조차 우울의 문턱을 넘는다. 성과와 행복의 세계는 이 불편한 진실을 자주 외면해 왔다.

성과는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감정 관리의 산물이다. 불안과 분노, 좌절은 판단을 흐리고 행동을 멈추게 한다.

감정 조절이란 감정을 제거하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 행동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이 힘이 무너지면 사소한 실패도 존재 전체의 부정으로 확대되고, 성과는 급격히 붕괴된다.

이 지점에서 자기효능감이 핵심 역할을 한다. 자기효능감은 막연한 자존감이 아니라 "나는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실행 중심의 믿음이다. 자기효능감이 높을수록 사람은 실패 앞에서도 행동을 지속하지만, 약해질수록 감정은 과장되고 과장된 감정은 다시 자기효능감을 잠식한다. 감정 조절 실패와 자기효능감 붕괴는 성과 저하로 이어지는 구조적 연쇄다.

이 역설은 여러 사례에서 반복된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먼은 스스로 만성적 우울 성향을 고백하며, 행복을 연구했지만 늘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행동경제학의 거장 대니얼 카너먼 역시 감정과 판단의 오류를 연구했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의 고통을 읽지 못한 한계를 인정했다. 인지치료의 창시자 에런 벡은 우울증 치료의 표준을 만들었지만 평생 우울 성향과 싸웠고, "치료법을 안다고 우울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을 웃게 했던 로빈 윌리엄스는 자신의 감정을 조율하지 못해 비극적 선택을 했고, 몰입 이론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성과의 몰입이 관계의 감정을 자동으로 회복시키지 못함을 보여준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지가 아니라 과신이다. "나는 안다", "나는 전문가다"라는 믿음은 감정 신호를 무시하게 만든다. 감정은 억누를수록 내부에서 썩고, 결국 한꺼번에 폭발한다. 진정한 감정 조절 능력은 "나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는 약점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안전장치다.

문제는 개인을 넘어 사회에 있다. 우리는 성과를 요구하면서 감정은 개인 책임으로 밀어낸다. 감정을 드러내면 약하다고 평가하고, 흔들리면 탈락시킨다. 그 결과 감정은 숨겨지고, 숨겨진 감정은 병이 된다. 우울증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감정 조절을 사적 영역으로 방치한 사회의 실패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미래의 성과 경쟁은 더욱 감정적일 것이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동기부여 구호가 아니다. 감정을 정직하게 인식하고, 자기효능감을 현실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다. 잘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 중요한 것은, 흔들려도 다시 조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마음은 방치하면 고장 난다. 그리고 고장 난 마음으로는 어떤 성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성과와 행복은 비로소 지속 가능해진다.

/정갑수 수필가·인천 시민교수

Copyright © 인천일보 All rights reserved -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