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안 보고 “80%까지 대출”…셀프 평가로 담보가치 부풀리기도 [규제 사각지대 농지대출]

심우일 기자 2026. 2. 26. 17:5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구멍 뚫린 금융권 대출심사
전국 농지 실거래가 ㎡당 4.7만원
1년새 14% 떨어져…거래량도 급감
제주 농축협 등 연체율은 6배 뛰어
대부업 등 포함땐 대출 90조 넘어
與, 농지활용 실태 전수조사 요구
담보대출 현황 등도 함께 파악해야
26일 경기 평택시 대반리의 한 농지. 남소정 견습기자


26일 A 대부 업체에 ‘농지담보대출 상담을 받고 싶다’고 문의하자 “일단 담보 잡으시려는 주소지를 말씀해주시면 대출 최대 한도를 바로 검토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A사는 “일반적으로 토지는 공시지가 대비 70% 정도 대출이 나온다”면서도 “지역과 위치에 따라 80%까지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기존에 받은 대출이 있는데도 소득과 관계없이 농지담보대출이 가능한가’라고 묻자 “상관없다”는 즉답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농지마저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농지 활용 실태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농지담보대출에 대한 현황 파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제도권에서의 농지담보대출은 농업협동조합이 주로 취급하고 있다. 지역 단위 농협과 NH농협은행의 비중이 높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NH농협은행과 전국 단위 농협의 2021~2025년 농지담보대출 잔액은 82조~84조 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저축은행이나 다른 상호금융 및 대부 업권까지 합치면 전체 농지담보대출은 90조 원대를 넘길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농지를 보유하는 이들 중 대출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쓰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는 개인 자격이 아닌 사업자 등록을 통해 지역 농협에서 대출을 신청했다는 후기와 조언이 많다. 이 경우 담보인정비율(LTV) 규제도 우회할 수 있다. 현재 수도권·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는 LTV 한도는 40%다. 오피스텔이나 비수도권 주택의 경우도 70%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 토지에 대해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LTV가 80%까지 나온다고 영업하는 일이 꽤 있다”고 말했다.

최근 농지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 부실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된다. 실제로 농지은행·농지연금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평균 농지 실거래가는 ㎡당 4만 7664원을 기록했다. 1년 전(5만 5519원)에 비해 14.1% 하락했다. 4년 전인 2021년 12월과 비교하면 약 40% 감소했다. 지난해 전체 농지 거래량은 14만 9320건으로 5년 전인 2020년(25만 7045건)에 비해 41.9% 줄었다. 지방 부동산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2021년 농지법 개정으로 농지 취득·보유 요건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농지담보대출 비중이 높은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건전성 지표가 악화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지난해 12월에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제주 지역 농·축협의 순고정이하여신비율은 2020년 말 0.49%에서 지난해 6월 말 2.97%로 급증했다. 신용협동조합의 경우에는 같은 기간 2.34%에서 8.28%로 4배가량 뛰었다.

제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농업 비중이 높아 농지담보대출 부실 영향이 큰 곳으로 꼽힌다. 제주 지역에서 주택 외 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37.1%로 전국(17.5%)의 두 배 수준이다. 한은 제주본부는 “농지 담보는 유동성이 낮고 회수에 시간이 오래 걸려 연체 발생 시 담보 가치 하락과 회수 지연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 리스크 구조를 지닌다”며 “정기적 담보 재평가와 농지 담보 여신 심사 강화 및 건전성 점검 체계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

업계에서는 농지담보대출이 용도에 맞게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취급 업체들이 가치 산정을 정확히 하고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업자 용도로 나가는 것은 개인사업자 등록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과 동일한 규제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 특히 자체 감정평가를 토대로 담보 가치를 산정하는 대부 업체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대부 업체들이 제대로 담보 가치를 매기는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농지 활용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한 상태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이 대통령의 농지 투기 행위 근절 방침과 관련해 “농사를 짓겠다고 취득한 농지를 방치하거나 투기나 재산 증식에 이용하는 행위는 더는 묵인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예외 규정을 통해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는 만큼 실태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도 농지담보대출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상속을 통해 농지를 보유하게 되는 사례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4년 토지 상속세를 신고한 인원은 1만 560명으로 2020년(6578명)과 비교하면 60.5%나 늘었다.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