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육탄방어’ 조희대 대법원…양승태 사법농단 문건 ‘계획’ 따랐나

김남일 기자 2026. 2. 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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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소원 도입을 위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당내 문제로 자중지란에 빠진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는 텅 빈 본회의장이 보여주듯 의지도 전략도 없는 상황이다. 어차피 통과될 것이라는 무기력이 더해졌다. 본회의 상정 24시간 뒤인 27일 오후 본회의 처리가 예정돼 있다. 38년 만에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정치적 기관’ ‘재판소원=소송지옥’ 프레임을 들고 여론전에 나선 조희대 대법원은 25일 전국법원장회의를 다시 열어 맞불을 놓았지만, 사법신뢰 하락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최후의 육탄방어에 가까웠다.

대법원은 재판소원 도입을 저지하는 최종 방어선으로 ‘국민 피해 참호전’에 들어갔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명명한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 가운데 재판소원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법원장들은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재판 확정의 지연으로 인한 국민 피해” “반복되는 재판으로 인한 고통” “법적 불안정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도 지난 23일 재판소원 등을 겨냥해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갈 수 있는 문제다. 공론화를 통해 각계각층의 전문가 의견과 국민 의견을 폭넓게 듣고 충분한 토론을 거쳐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점을 국민들과 국회에 거듭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12일에도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문제”라며, ‘국민 피해’를 최전선에 내세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작성된 ‘2014년 사법부 주변 환경의 현황과 전망’ 대외비 문건 내용 갈무리

‘국민 피해’ 갑자기 등장…양승태 대외비 문건엔 ‘최고법원 위상’ 유지

조 대법원장 발언이 선전포고였다면, 지난 18일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이 만들어 언론에 배포한 ‘재판소원 참고자료’는 무력시위였다.

“헌법재판소는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인 재판기관이다” “재판소원은 4심제의 희망고문이자 소송지옥의 굴레” “국민적 관심을 받지도 못했는데 대법원의 2025년 5월1일 공직선거법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에 대한 즉각적 반향으로 발의”.

사법부 문건에서 으레 찾아볼 수 있는 형식적 균형이나 유보적 표현은 없었다. 재판소원 도입의 헌법적 문제와 장·단점을 차분히 설명하는 대신, 전례 없이 감정적이고 비법률적 용어를 동원해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를 폭격했다. 특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유죄 파기환송을 재판소원 추진 배경으로 언급한 것은 여당과의 전면전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40년 가까이 헌법학계에서 도입 필요성이 논의됐던 ‘오래된 미래’를 여당의 정치 보복 성격으로만 확 찌그러트린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이 대선 직전 국민을 향해 던졌던 ‘정치적 판결’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대법원의 이런 대응 방식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과정에서 만들어진 재판소원 저지 방식과 논리를 상당 부분 재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대법원은 헌재에 최고법원 위상을 뺏기지 않기 위한 각종 대응·홍보 논리를 개발하고, 정치권과 언론계에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는 ‘대통령 하야 정국이 사법부에 미칠 영향’, ‘개헌 정국과 사법부의 대응 방안’, ‘통진당 행정소송 검토보고’, ‘사법부 주변 환경의 영향과 전망’ 등 양승태 대법원이 작성했던 대외비 문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대법원은 재판소원 도입 이슈와 관련해 “대부분의 의원들은 법원·헌재 관련 쟁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백지상태”라고 규정하고, 이들에게 “법원에 유리한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단계별 대응 전략을 수립했다. ‘위기 단계’에는 “헌재를 정치적 사법기관으로 위상을 절하”시킨다는 계획도 짰다. 이를 위한 정보수집은 헌재에 파견한 판사에게 맡겼다.

여당·야당 맞춤형 설득 논리를 따로 준비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인선에 정치적 영향력이 더 좌우되기 쉬운 구조이며, 재판소원이 인정될 경우 보수정권이 헌재를 장악하게 되면 재판소원이 사법부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논리로 설득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조희대 대법원의 재판소원 저지 전략의 뼈대도 동일하다. 법원행정처가 만든 참고자료는 “헌법재판소는 태생적으로 또한 제도적으로 정치적인 재판기관”이라며, 그 이유로 “헌법재판관 9명 중 3인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3인은 국회가 선출한다. 그 결과 임명권자를 비롯한 정치적 다수세력의 정치적 성향이 간접적으로 반영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헌재는 정치권력에 취약한 기관으로, 그에 반해 대법원은 대법원장·국회·대통령의 상호 견제를 통해 정치적 중립이 보장된 기관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한국 헌재는 독일 모델을 따라 만들어졌다. 양승태 대법원은 헌재와 법원을 분리한 독일식 상하분리형 모델의 단점을, 반대로 사법심사와 헌법재판 기능이 합쳐진 미국식 통합형 모델의 장점을 “명쾌하게 설명할 논리 개발”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헌법학계의 독일·헌재 중심의 촘촘한 네트워크로부터 자유로운 정치학과 교수들을 발굴”한다는 계획을 짰다. “미국 연방대법원을 중심으로 한 미국식 사법제도에 친숙”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최근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지만 우리 헌법은 독일과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법원행정처도 참고자료에서 “독일에서도 재판소원은 초상고심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독일에서 재판소원 인용률은 0%대”라며 재판소원 제도의 단점만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조희대 대법원이 ‘국민 피해’를 최전선에 내세우고 있지만, 불과 10년 전인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소원 저지 대외비 문건에 ‘국민 피해’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최고 사법기관은 대법원이라는 명제를 강조”하기 위한 “대법원 이미지의 정교한 포지셔닝” 계획이 빼곡하다. “헌재와의 관계에서 최고 사법기관으로서의 헌법적 위상 유지→재판소원 도입 등 법원 재판에 대한 영향력 확대 시도 저지”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1심에서 전부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최근 항소심 재판에서는 일부 혐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됐다. 헌재와의 최고법원 위상 경쟁 과정에서 행한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형법 일부 개정 법률안 수정안이 상정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무제한토론을 신청한 가운데 조배숙 의원이 첫 토론자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소원 날벼락? 은밀한 계획만 세우고 공적 논의는 부재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존 제도와 전혀 다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 소송 법규 정비가 필요하다. 시스템도 서로 연계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헌법재판소법 개정만으로는 즉시 시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국 법원장들도 “폭넓은 논의와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 날벼락’을 말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 직후부터 재판소원 도입을 요구해 온 헌법학계와 헌재는 물론, 이를 저지하려는 대법원 역시 내부적으로 ‘4심제’라는 벙커를 깊게 파는 등 방어 논리를 개발해 왔다.

1988년 헌법재판소법 제정 당시 공권력에 의한 국민 기본권 침해가 있을 때 헌법소원을 통해 구제받을 길을 열어놓았지만, 유독 ‘법원의 재판’이라는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막았다. ‘재판소원=4심제’를 주장한 대법원이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 조사국장으로 헌법재판소법 제정에 참여했던 이강국 전 헌재소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38년 전 재판소원을 반대했던 제 의견이 잘못됐다고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대법관에 이어 헌재소장을 맡았던 이 전 소장은 “재판소원의 도입 문제는 하루아침에 나온 논쟁이 아니다. 법원이 지나치게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전국 법원장들은 “충분한 공론화와 제도 개편의 부작용에 대한 숙의가 없었다”고 반발한다. 정치권 등을 겨냥한 은밀한 재판소원 저지 계획을 세우는 대신, 공개 연구와 토론을 통해 건설적 대안을 고민하는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우선이다.

국내외 사법정책과 제도를 연구·소개하는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에서는 재판소원의 장단점, 헌법적 정합성 등을 연구한 결과물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재판소원 도입을 위한 ‘진지전’을 수십년째 벌인 헌법재판소 산하 헌법재판연구원은 세계헌법재판 조사연구를 통해 재판소원 사례와 그 장점 등을 지속해서 소개하고 있다. 헌법재판연구원은 26일에도 “법원의 민사판결이 의사표명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제기된 독일의 헌법소원 판례(뤼트 판결)를 소개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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