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코리아 패싱’ 선언한 金… ‘피스메이커’ 고수하는 李
이재명 정부 대북 기조에 "기만극" 비판
李 "적대 감정 순식간에 없앨 수 없어"
"남 탓할 문제 아냐… 지속적 노력할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일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명기된 우리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하며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북미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 한국을 향해서는 관계 전면 차단과 위협적인 언사를 전하며 '통미봉남'(通美封南, 미국과 대화하고 남한과의 대화는 봉한다)을 공식화했다. 김 위원장이 사실상 '코리아패싱'을 선언한 가운데 '피스메이커'(Peacemaker)를 자처한 이재명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대화의 손짓을 멈추지 않았다. 북미 간 대화 재개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피스메이커(평화 중재자)'를 자처해온 이재명 대통령의 구상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26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0~21일 열린 노동당 제9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국가핵무력을 더욱 확대 강화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철저히 행사하는 것은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의지"라고 강조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최강경 자세를 변함없는 대미정책 기조로 확고히 견지할 것"이라면서도 대화 가능성을 열어놨다. 김 위원장은 "조미(북미) 관계의 전망성은 미국 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며 "평화적 공존이든 영원한 대결이든 우리는 모든 것에 준비되어 있으며 그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에 공을 넘겼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다시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가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대화의 여지를 남기며 4월 전후 북미 대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번 발언이 향후 미북 간 직접 접촉의 명분을 쌓는 신호탄이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반면 김 위원장은 한국을 향해서는 강도 높은 적대 발언을 쏟아냈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이) 조선반도에 존재하여온 비정상적인 관계에 역사적 종지부를 찍고 한국과의 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간 관계로 정립하는 최종적인 중대 결단"을 강조하며 "불변한 원칙적 입장을 천명했다"고 중앙통신은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으며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며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다시 밝혔다. 이재명 정부의 유화 기조에 대해서도 "서투른 기만극"이라고 규정했다. 한국의 군사적 움직임이 이어질 경우 "임의의 행동을 개시할 수 있다"며 '완전 붕괴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그는 "겉으로는 기만적인 화해와 평화를 제창하면서 '조선반도 비핵화'의 간판 밑에 우리의 무장해제를 획책하는 위해로운 존재를 같은 민족이라는 타성에 포로되여 절대 불가능한 화해와 통일을 이유로 계속 상대하는 것은 더 이상 존속시키지 말아야 할 착오적인 관행"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의 도발에 이 대통령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의 가치를 강조하며 대북 유화정책 기조를 가져가겠다는 메시지를 재차 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결과 전쟁을 향해 질주하던 과거를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평화와 안정이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전 정권을 시사하며 "(이전 정부에서) 전쟁을 감수하는 대결적인 정책이 펼쳐졌고, 이로 인해 생긴 적대 감정과 대결 의식을 순식간에 없앨 수는 없는 일"이라며 "그에 상응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적대 감정 해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북 확성기 철거, 대북 전단 살포 중단, 9·19 군사합의 복원 의지 등 일련의 유화 조치를 내놓으며 신뢰 회복을 시도해 왔다. 이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밝힌 '엔드(END·교류·관계정상화·비핵화) 구상' 역시 단계적 긴장 완화를 통한 구조적 평화 정착을 목표로 한다.
다만 북한이 계속해서 대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지속적인 화해 제스쳐가 남북 대화의 단초가 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은 2023년 말부터 '적대적 두 국가론'을 명확히 밝혔고, 이후 계속 그 노선을 강화해왔다"며 "이번 발언은 그중에서도 위협 수위가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한국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북한의 전략 노선이 바뀌지 않는 한 당분간 유의미한 남북 대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향후 북미 회담이 성사된다면 일부 공간이 생길 수는 있다"면서도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공조를 유지하며 간접적으로 입장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엔드 구상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적용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안소현 기자 ashrigh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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