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F] 3·1절에 부르는 아름다운 이름

송천석 에디미디 출판사 대표 2026. 2. 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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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천석 에디미디 출판사 대표

제107주년 3·1절을 앞두고 마음속에 아름다운 이름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지난 1월, 프랑스의 한 행사장에서 '장 자크 홍 푸안' 씨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자신을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명예영사라고 소개했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기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여느 기품 있는 프랑스 노신사와 다를 바 없었다.

한국과 프랑스 간 국제 교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한국인 아버지에 대한 사연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 한켠이 먹먹해졌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에 대해 듣고, 더 알고 싶어 자료를 찾아보았다. '홍재하'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름 뒤에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관통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1892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홍재하 지사의 삶은 독립운동과 나라 사랑으로 점철돼 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에 발각되자 체포를 피해 만주와 러시아를 거쳐 프랑스에 이르게 되었다. 프랑스 여성과 결혼한 그는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해야했다. '프랑스한인회'의 전신 격인 '재법한국민회' 결성에 참여했으며, 회장을 역임했다. 재임 중이던 1920년에는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복구 현장에서 노동으로 묵묵히 땀 흘려 번 돈을 고국의 독립 자금으로 송금했고, 자녀들이 장성해 벌어온 수입까지 아낌없이 내놓았다. 해방을 맞았지만,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시대적 비극은 끝내 그의 귀국길을 막았다. 그는 196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 파리 근교에 묻혔다.

홍재하 지사가 전쟁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염원하던 시기, 프랑스 사회에서는 과거사에 대한 냉혹한 평가가 이어졌다. 세계적 자동차 회사의 설립자인 루이 르노는 기업을 지키기 위해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사망했다. 그는 무덤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는 치욕을 겪었고 그의 회사는 국유화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필리프 페탱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괴뢰 정부인 '비시 프랑스'의 수반으로 활동한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영국으로 피신해 망명 정부인 '자유 프랑스'를 이끌었던 샤를 드골은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프랑스는 철저하게 반민족 행위에 대해 심판했다.

다행히 홍 지사의 차남인 장 자크 홍 푸안 씨와 한인 지인들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한국 정부는 2019년 홍재하 지사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고, 2022년 마침내 그의 유해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국의 품,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돌아왔다. 늦었지만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역사적 의무를 다한 것이다.

3·1절이 단순한 국경일 행사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홍재하 지사처럼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쳤으나 아직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그들을 찾아내고 기록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식의 삶까지 기꺼이 내놓았던 그들의 나라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이 자유를 누리고 있다.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더 많은 '홍재하'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 줄 때 비로소 '대한독립만세'가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