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문화강국’ 꿈 이뤄져 기뻐…효창공원, 꼭 국립공원 되길”

이성희 기자 2026. 2. 2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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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손녀’ 김미 백범김구기념관 관장 인터뷰

백범 탄생 150주년, 유네스코는 ‘세계 기념해’로
문화의 힘 통한 ‘평화 비전’, 일류 보편 가치로 인정
독립투사들 얼 깃든 효창공원 “상징성 되살려야”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이 23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전시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며 밝혔던 꿈은 후대를 예견한 듯 이뤄지고 있다. 영화 <기생충>이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한강 작가, 방탄소년단(BTS) 등 ‘K 문화’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을 때마다 “백범 선생 보고 계시죠”라는 반응이 회자될 정도다. 군사적 강국이나 경제적 부국이 아닌 ‘문화강국’을 꿈꿨다는 점에서 백범의 선견지명은 놀랍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미 백범김구기념관 관장(69)은 지난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국가와 수준 높은 문화가 대한민국의 캐치프레이즈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백범의 손녀로, 2021년부터 기념관을 이끌고 있다. 눈매가 백범을 닮았다.

“나라를 빼앗겨봤기 때문에 무력으로 강해져서 남을 침략하는 건 싫으셨던 거예요. 그게 얼마나 아프고 힘든 건지 아셨던 거죠. 부강한 것도 먹고 살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하신 거고. 문화는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화를 주니까요. 요즘은 세계 어딜 가도 현지인이 한국말을 제법 하고 K팝도 따라 부르잖아요. 할아버지의 꿈이 실현되는 것 같아요.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백범, 세계적 인물로 자리매김”

올해는 백범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로, 유네스코(UNESCO)는 ‘세계 기념해’로 공식 지정했다. 유네스코는 인류 평화와 공동번영에 기여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기념해를 지정하는데, 한국인이 기념 인물로 선정된 것은 다산 정약용(2012년, 탄생 250주년)과 김대건 신부(2021년, 탄생 200주년)에 이은 세 번째다.

김 관장은 “할아버지가 강조하신 문화의 힘을 통한 평화 비전이 국경과 시대를 넘어 인류가 함께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은 것”이라며 “백범이 우리나라만의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세계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기념해 지정은 국가적 경사지만, 기념관 주변은 조용했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역에서 기념관까지 가파르게 이어진 도로에도 축하 현수막 등은 없었다. 기념관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팻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념관은 관람객이 <백범일지> 책장을 직접 넘기며 한글이나 영문으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디지털 북키오스크를 제작·설치하고 지난해 4월 인공지능(AI) 활용에 중점을 둬 재개관했으나 연간 방문객은 15만명 수준에 불과하다. 김 관장은 “셔틀버스 운영 등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고 유네스코 기념해 지정을 맞아 여러 행사도 기획하고 싶지만, 정부 예산이 부족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념관이 있는 효창공원도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백범은 물론 이봉창·백정기·윤봉길 의사 등 독립운동가 7명의 유해가 묻혀 있으며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 가묘도 있지만, 도로표지판은 효창운동장만을 가리키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은 지난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정부에서는 꼭 효창공원의 국립공원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김 관장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효창공원 국립공원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효창공원을 오는 2030년까지 국립효창독립공원으로 준공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효창공원을)가끔 가보는데 너무 음침하다”며 “국립공원화하는 방안을 연구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김 관장은 “이 대통령이 효창공원을 국립공원으로 조성해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방향을 제시한 것은 효창운동장 설립의 역사적 배경과 그로 인해 훼손된 공간의 상징성을 정확히 이해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기념관에 따르면, 효창공원은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묘지다. 백범이 해방 이후 이봉창·백정기·윤봉길 의사 유해를 일본과 중국에서 모셔왔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3명도 안장했다. 그러나 백범이 1949년 서거하고 1년 후 6·25전쟁이 발발, 국군 전사자를 안치하기 위해 국립서울현충원(서울 동작구)을 만들면서 효창공원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으면서 국립공원화도 추진됐다 무산되기를 반복했다.

“효창공원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3·1운동 정신을 계승한 임시정부 법통을 상징하는 현충 공간이에요. 독립투사들의 혼과 얼이 깃든 곳이죠. 국립공원화는 대한민국이 어떤 역사를 기억하고 그 정신을 후손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결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 관장을 비롯한 기념관 관계자들은 효창운동장의 완전 철거를 주장한다. 효창운동장은 애초 이승만 정권이 독립운동 상징성을 지우기 위해 세운 시설물로, 기념관은 물론 독립투사 묘역 전망을 가린다.

“애국가 4절은 두 번씩 부르던 할아버지”

김 관장은 인터뷰 내내 백범의 저서를 들춰보며 이야기했다. 책에는 수많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으며, 곳곳에 줄을 친 구절들도 눈에 띄었다.

“할아버지는 애국가를 부르시면 4절을 꼭 두 번씩 부르셨대요.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라 사랑이 넘치셨던 것 같아요.”

김 관장은 빙그레 김호연 회장의 부인이다. 이들 부부는 사재를 출연해 1993년 김구재단을 설립했으며 독립운동가 후손 장학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빙그레는 지난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AI를 활용해 광복 당시 함성을 구현하는 등 ‘독립운동 정신 계승’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김 관장의 아버지인 김신 장군은 백범의 차남으로, 아버지를 도와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 후 공군참모총장 등을 지냈다. 기념관에는 백범의 어머니(곽낙원)와 아들(김인·김신), 며느리(안미생 지사) 등 백범과 독립운동을 함께했던 가족들의 동상도 전시돼 있다. 김 관장에게는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큰아버지, 큰어머니, 아버지다.

김 관장은 3·1절을 앞두고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아버지가 자주 썼다는 고사성어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라)을 꺼냈다.

“누군가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고 대한민국을 이어갈 수 있는 거잖아요. 뿌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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