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출할 땐 ‘후루룩~’…가는 면발, 든든한 맛[이우석의 푸드로지]
중국서 시작해 동서양으로 전파
19세기 이후부터 ‘식도락’ 발전
중국은 수타·우육면, 일본은 소바
베트남 쌀국수·태국 팟타이 유명
대표 서양국수 이탈리아 ‘파스타’
獨엔 올챙이국수 닮은 향토음식

신통방통하다. 올림픽 중계 TV 속에 펼쳐진 알프스 설원이 아직 눈가에 선하지만 분명히 봄은 한반도에 발을 디뎠다. 이런 날의 점심 한 끼로 역시 국수 한 그릇만큼 만만한 게 없다. 메뉴를 고를 때나 먹을 때 딱히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따끈한 국물까지 있다면 그 또한 공허함을 채워 주니 더욱 좋다.
세상에 수많은 음식이 존재하지만 먹을 때 식감이야 국수만 한 것이 또 있을까.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 끄트머리를 집어넣고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려 쪼록 빨아들이면 바로 목구멍까지 타고 넘어간다. 공기와 섞이며 밀려드는 국수 가락이 씹기도 전에 포만감을 준다. 젓가락만 있으면 되니 편하고 딱히 많은 가짓수의 반찬도 필요 없다. 후딱 먹고 빨리 포만을 느낀다. 국수란 그런 음식이다.
국수의 기원에 대해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 여러 원조설이 있지만, 국숫발 화석 등 ‘물증’으로 보면 중국 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방에서 오래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국수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서양으로 전파되며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발달했다. 제분과 반죽이 필수 과정인 밀 문화권에서 비롯했지만, 전래된 곳마다 자생적으로 국수가 생겨났다. 빵 굽기와 밥 짓기에 비해 간편하기도 하거니와 그리 값비싼 재료가 드는 것도 아니었던 까닭에 각각 환경적 특성에 따라 입에 맞는 국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신대륙을 중심으로 밀의 대량 재배가 이뤄진 19세기 이후 국수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된다.
‘푸드로지’는 활동량이 늘어나는 봄날을 맞아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식도락 아이템으로 각 문화권 대표 국수들을 소개한다. 우선 우리 국수부터 살펴보자. 국수는 12세기 초 고려도경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이는 송나라 사신 서긍이 당시 고려인들의 생활 습관을 기록한 대목으로, 이미 국수를 널리 먹고 있었으니 그 이전에 생활 속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헌에서처럼 밀이 귀해 수입에 의존한 탓에 귀한 음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특별한 날에 챙겨 먹는 음식이었다. 기다란 생김새에 착안해 장수의 염원을 담았다. 생일과 회갑, 혼례 등 좋은 날에 국수를 차렸다. 그래서 ‘잔치국수’, 장명면(長命麵) 등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국수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 문화와 풍토를 따져 보자면 단연 메밀국수(냉면)가 맞지만 즐겨 먹는 것은 역시 칼국수다. 밀가루가 대량으로 유입되고 난 후 칼국숫집이 많이 생겼다. 식칼 한 자루와 홍두깨만 있으면 차릴 수 있었던 메뉴였다. 해물, 조개, 김치, 닭, 사골, 고추장 등 육수도 여럿이고 면발도 집마다 특색 있다.

‘면의 대륙’이라 부를 수 있는 중국에는 수백 수천 가지의 면 요리가 있다. 당장 우리나라 화교 중국음식점에서 파는 면도 대충 예닐곱 가지는 된다. 중국에서는 산시(陝西)성과 간쑤(甘肅)성의 면이 특히 유명하다. 소고기를 쓰고 수타면을 말아서 내는 라몐(拉面)은 중앙아시아와의 통로인 간쑤성 란저우(蘭州)시가 유명하다. 종교적(이슬람) 이유로 돼지고기를 쓰지 않으니 소고기와 무를 넣고 끓여 낸 우육면 계열. 간쑤성의 우육면이 쓰촨(四川)성의 매운맛과 만나 쓰촨식 뉴러우몐(牛肉面)이 됐다. 1949년 쓰촨성에 있던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건너가면서 뉴러우몐은 대만을 대표하는 면 요리로 꼽힌다. 홍콩은 좀 다르다. 에그누들로 불리는 얇고 쫄깃한 계란면을 쓰고 완탕(云呑)을 넣은 완탕면이 대표적이다. 홍콩 식당가에선 대부분 메뉴로 판매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일본에도 굉장히 많은 종류의 국수 요리가 있어 딱히 무엇 하나를 대표로 꼽기가 어렵다. 일본 역시 전통적으로 메밀을 많이 먹었던 터라 소바(蕎麥)를 자국의 대표 국수로 내세우고 있다. 소바는 원래 메밀을 뜻하지만 이젠 ‘국수’를 뜻하는 말로 전용되고 있다.

라멘을 주카소바(中華蕎麥), 볶음국수를 야키소바(やき蕎麥) 등으로 쓰는 것처럼 말이다. 베트남 하면 쌀국수(Pho)다. 퍼는 중국 광둥(廣東)에서 전래된 뉴러우펀(牛肉粉)이 정착했다는 설과 19세기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라는 두 가지 기원설이 있다. 소고기 육수가 기본이라는 점에서 프랑스 수프 요리 포토푀(Pot au Feu)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힘을 얻고 있다. 미식 국가를 표방하는 태국은 볶음국수 팟타이(Pad Thai)가 유명하다. 이름에 국명(Thai)이 들어가니 진정한 태국 ‘대표 국수’다. 원래는 ‘꿔이띠아오 팟’으로 이름에 타이가 들어가지 않았다. 1930년대 태국 정부가 민족주의 운동을 펼치면서 팟타이(태국식 볶음)라고 부르며 대표 요리로 내세웠던 것이 지금 팟타이 이름의 유래다.

싱가포르를 비롯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선 락사(laksa)가 즐겨 먹는 대표 국수다. 이름은 낯설지만 익숙한 맛. 닭고기나 해물 카레 베이스에 코코넛밀크, 향신료 등을 넣은 묵직한 국물에 두꺼운 면을 말아 먹는 요리다.이젠 동양을 떠나 서양으로 국수 여행을 떠난다. 뭐니 뭐니 해도 이탈리아다. 같은 밀 문화권 내에서도 유독 국수(파스타)가 발달한 지역이 이탈리아다. 이탈리아 북부에선 반죽에 달걀을 넣은 생면 탈리아텔레 같은 것을 먹었고, 남부에선 주로 건조 파스타 스파게티를 먹었다. 이런 식탁의 동질성이 결국 1861년 이탈리아 반도 통일 당시 남북이 다른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독일에는 남부 슈바벤 지역에 슈파츨레(Spatzle)라는 국수가 있다. 한국의 올챙이국수처럼 짧고 뭉툭한 모양이다. 연질 밀가루 반죽을 구멍 뚫린 판에 대고 팔팔 끓는 물에 직접 짜 넣어서 만드는 제면법도 비슷하다. 역사도 유사하다. 강원도처럼 척박한 땅에 살던 이들이 배를 채우기 위해 만든 구황식품이다. 그나마 감자가 들어오면서 양이 불어나고 맛도 풍성해져 지금은 향토 음식으로 인기가 높다.

남미 대륙의 페루에도 독자적 국수 문화가 있다. 역사가 그리 오래된 건 아니다. 페루의 타야린(Tallarin)은 중국계 이민자로부터 전래했다. 19세기 후반 페루에 일하러 온 중국인들이 스파게티 면을 활용해 볶음면을 만든 것이 타야린이다. 중국의 차오몐(炒麵)을 빼닮았다.
곡물 가루를 반죽해 가늘게 뽑아낸 국수.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하지만 국수 한 그릇 안에는 그 나라 민족의 역사, 문화가 녹아 있다. 가느다란 면발 한 가닥에는 그만큼 긴 이야기가 서렸다. 이를 이로 입술로 읽어 낸다. 봄날의 간편한 미식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칼국수= 광천식당. 대전에서 매콤한 두루치기로 입소문 난 칼국수 맛집. 강렬한 두루치기의 매운맛을 씻어 내는 멸치 국물 칼국수가 있다. 식탁에 가져오는 순간부터 멸치 향이 코를 찌른다. 이 국물에 씹는 맛이 뛰어난 면을 말아 준다. 두루치기에도 쓰는 면발이 입술에 닿을 때 바로 탱글탱글한 느낌이 전해진다. 값도 저렴해 많은 대전 시민들이 찾는 곳. 대전 중구 대종로505번길 29.
◇메밀국수= 유림면. 서소문과 덕수궁 사이에서 60년 넘도록 국수를 팔아 온 노포. 무려 60년이라 적힌 간판이 낡아 버렸다. 봉평산 메밀로 뽑아낸 메밀국수가 제맛이다. 일본식 판메밀로도 즐길 수 있고 뜨끈한 국물이 당길 때는 구수한 온메밀국수를 주문하면 된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139-1.
◇팟타이= 반쿤콴. 종각 일대뿐 아니라 멀리서도 태국 요리를 찾아오는 집. 새우를 넣고 얇은 면과 함께 볶아 낸 팟타이꿍이 맛있다. 살짝 달지만 고수와 피시소스를 끼얹어 먹으면 한결 풍미가 좋아진다. 뿌님팟퐁커리(소프트셸크랩카레), 텃만꿍(새우고로케), 똠양꿍 등 요리도 다양하다. 서울 종로구 종로10길 20 3층.
◇파스타= 키친485. 이탈리아 북부식 생면(生麵) 파스타를 파는 집이다. 홍익대 인근에서 생면 파스타 집이라면 바로 이 집이다. 통새우가 듬뿍 든 크림소스에 브로콜리를 곁들인 프리마베라 파스타는 넓적한 파파르델레 생면으로 완성된다. 반죽에 고추를 넣어 느끼한 맛을 잡은 국숫발은 생면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공정이다. 서울 마포구 양화로6길 67.
◇볶음면= 차이나타운. 서울 홍제동에서 대만식 음식을 파는 곳이다. 직접 만든 수제 만두와 딤섬, 그리고 다양한 요리를 낸다. 식사 메뉴 중에 해물볶음면이 있다. 다양한 해물을 채소와 함께 볶아 내는데 기름만 쓰는 것이 아니라 국물을 자작하게 볶아 내 전반적으로 풍미가 좋다. 육수로 볶아 내서 그런지 면발도 한결 부드럽다.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40안길 11.
◇우육면= 로우샹로우. 양다리 구이와 양꼬치를 파는 집인데 여러 요리도 함께 낸다. 식사 메뉴 중엔 마라 우육면도 맛있다. 그리 타격감이 세지 않은 마라 양념에 부들부들한 면을 넣었다. 고소한 소고기 국물에 살짝 곁들인 마라 향이 국물 맛을 지배한다. 넓적한 면에 찰싹 붙은 양념이 씹어 삼킬 때까지 풍미를 책임진다. 서울 마포구 양화로6길 50.
◇라멘= 모꼬지. 일본식 라멘을 파는데 다양한 종류가 있다. 닭고기와 멸치 육수를 기본으로 바지락을 넣은 바지락 소유라멘, 여기다 얼큰한 맛을 더한 것, 기본적으로 멸치(니보시) 육수를 섞어 소금만 넣고 깔끔하게 끓여 낸 시오라멘, 고기와 달걀노른자를 비벼 먹는 마제소바 등이 있다. 면발도 좋고 육수도 시원하다. 서울 중구 무교로 17-27 대원빌딩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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