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 배기량과 마력, 그 지독한 편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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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량이 주는 억울함과 지독한 편견은 숫자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배기량이 그렇고 마력도 그렇다.
마력이라는 단위부터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마력은 길이나 무게처럼 "이 수치가 곧 성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지표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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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원표 한 줄로 차를 재단하는 습관에 관해
-우리는 왜 아직도 배기량과 마력에 집착하나
배기량이 주는 억울함과 지독한 편견은 숫자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자동차를 볼 때 너무 쉽게 하나의 수치에 기대어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가.

잘 생각해보자. 배기량이 그렇고 마력도 그렇다. 제원표 맨 위에 적힌 숫자 하나가 차의 성격을 설명해줄 것 처럼 행동하지만 그 숫자들은 사실 생각보다 훨씬 불완전하다. 마력이라는 단위부터가 그렇다. 마력은 미터법처럼 정형화된 절대 단위가 아니다. 증기기관의 시대에 말 한 마리가 끌 수 있는 힘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산업사의 산물일 뿐이다.
측정 기준도 하나가 아니다. PS, HP, DIN, SAE 등 표기 방식에 따라 수치가 달라지고 같은 엔지닝라도 어느 규격을 쓰느냐에 따라 숫자가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마력은 길이나 무게처럼 "이 수치가 곧 성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지표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배기량도 정확히 같은 결을 가진다. 일단 미터법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배기량이 작으면 힘이 없을 것 같고 느릴 것 같다는 인식이다. 자연흡기 엔진만이 존재했던 시대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지금은 다운사이징을 넘어선 전동화의 시대다.
실제 주행에서 체감 성능을 결정하는 것은 최고출력의 크기보다 그 힘이 언제 어떻게 쓰이느냐다. 최고 출력은 대개 높은 회전수에서 나온다. 일상 주행에서 그 회전수를 매번 쓰는 운전자는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제원표에서 자랑하는 마력 수치는 평소엔 잘 꺼내 쓰지도 않는 힘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1.3ℓ 3기통 엔진을 얹은 푸조 308 스마트 하이브리드가 체감상 경쾌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차는 ‘높은 마력’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가벼운 차체, 즉각 반응하는 토크, 전동화 보조로 빈 구간을 메운다. 숫자로만 보면 마력은 크지 않지만 운전자가 가장 자주 쓰는 영역에서는 힘이 잘 살아 있는 이유다.
308과 아반떼를 무게당 출력으로만 깔끔하게 비교해보자. 그러면 사람들이 기대한 그림과 다른 결론이 나온다. 푸조 308은 최고출력 143마력, 공차중량 1,455㎏이다. 그리고 아반떼 1.6은 최고출력 123마력, 공차중량 1,270㎏이다. 무게당 출력비를 계산하면 308은 약 10.17㎏/마력, 아반떼 1.6은 약 10.33㎏/마력이다.
무게당 출력비가 보여주는 데이터는 분명하다. 배기량만 보면 아반떼가 더 ‘정상적인’ 조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차를 밀어내는 효율에선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이 논리는 대형 SUV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많은 사람들은 폭스바겐 아틀라스가 4기통 엔진을 쓴다는 걸 두고 "이 차급에 4기통?"이라 반응한다. 잘 달리기는 하냐며 의구심을 표한다.
실은 ‘성능’이 아니라 ‘체면’을 묻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배기량이 크면 마음이 놓이고 작으면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감정의 문제다. 하지만 이 감정의 법정은 증거를 꼼꼼히 보지 않는다. 정작 메르세데스-벤츠 GLE나 볼보 XC90, 아우디 Q7에 2.0ℓ 4기통 엔진이 쓰인다는 사실을 많은 이가 모르기 때문이다.
박홍준 기자 hj.park@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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