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조원 삼킨 ‘달러 스테이블코인’…‘아날로그’ 일본 보다 뒤쳐진 한국

안갑성 기자(ksahn@mk.co.kr) 2026. 2. 2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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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테이블코인 3000억달러 유통량 99%가 ‘달러’
美, 국채 소화 창구로 활용…신흥국 자본 유출 우려
亞 국가들 속속 제도화…日·싱가포르 앞서고 홍콩도 추격
韓, 발행 주체 놓고 이견에 입법 지연…“속도가 생명”

◆ 주저앉는 비트코인 ◆

급증하는 미국 신규 국채 발행 규모(왼쪽)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미 국채 보유량 추정치. 테더와 서클 등 주요 발행사는 세계적 수준의 미 국채를 보유하며 달러 패권을 뒷받침하고 있다. [자료=타이거리서치]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올해 2월 기준 약 3000억달러(약 400조원) 규모로 급성장하며 거대한 금융 인프라로 자리 잡은 가운데 동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한국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속도가 싱가포르, 일본, 홍콩 등 다른 선도 지역에 비해 크게 뒤쳐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타이거리서치는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통화 패권 경쟁”이라고 진단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결제 혁신을 넘어 준비금을 미국 단기국채에 쌓도록 설계된 구조를 통해 미 국채 수요와 달러 패권을 동시에 떠받치는 정책 도구로 기능한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38조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 부채를 감당하기 위해, 발행사들이 준비금을 미국 국채로 보유하도록 의무화하는 ‘지니어스법(GENIUS Act)’까지 제정했다.

반면 아시아 주요국들은 자국민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수록 자본이 미국으로 유출될 것을 우려하며 방어선 구축과 동시에 ‘자국통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돌입했다.

달러가 아닌 ‘자국통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딜레마도 뚜렷하다. 원화·엔화·홍콩달러 등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도 블록체인 위에 올라서는 순간 탈중앙화 거래소(DEX)에서 USDT(테더), USDC(서클)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즉시 환전되는 경로가 열리기 때문에 제도 설계가 허술하면 오히려 자금 유출 속도만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 싱가포르·일본 선두, 홍콩 추격
아시아 5개국의 스테이블코인 법안 및 발행 진행 현황. [자료=타이거리서치]
싱가포르·일본·홍콩 등 아시아 선도 지역은 “산업의 흐름을 법으로 막는 것은 어렵다”는 뼈아픈 현실 인식 아래, 달러 코인 차단보다는 자국 화폐의 매력도를 높이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가장 기민하게 움직인 곳은 일본과 싱가포르다. 일본은 2023년 6월 자금결제법을 시행하며 아시아 최초로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했다. 철저히 ‘은행 전속 모델’을 채택해 발행 자격을 은행, 신탁회사, 자금이체업자 등 기존 금융감독의 테두리 안에 있는 기관으로 한정했다.

그 결과 스타트업이 발행한 ‘JPYC’가 이미 시장에 출시되어 유통 중이며, 메가뱅크 3사 역시 스테이블코인 시장 진입을 준비하며 기존 금융 시스템과 블록체인의 융합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구조. 발행과 유통 권한을 분리한 이중 규제 체계를 도입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자료=타이거리서치]
반면 싱가포르는 ‘글로벌 규제 허브’ 전략을 폈다. 인구 600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국 통화(SGD)뿐만 아니라 미국 달러(USD) 등 G10 통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까지 전면 개방했다.

2023년 8월 단일통화 스테이블코인(SCS) 프레임워크를 확정했으며, StraitsX, 팍소스(Paxos) 등 6~8곳의 로컬 및 글로벌 핵심 사업자들이 이미 주요 결제기관(MPI) 라이선스를 취득해 발행과 운영에 돌입한 상태다.

홍콩은 2025년 8월 스테이블코인 전용 법률(Stablecoins Ordinance)을 독립적으로 시행하며 추격의 고삐를 당겼다. 참조 통화에 제한을 두지 않는 개방적 틀을 마련해 달러, 유로, 홍콩달러 등 모든 통화의 수용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아직 정식 인가가 난 곳은 없지만 현재 36개사가 라이선스 심사를 받고 있으며 중국 본토에서 진입이 막힌 징둥(JD.com) 등 대형 기술기업들에게 합법적인 우회 통로를 제공하는 샌드박스 역할도 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이들과 완전히 다른 ‘전면 통제’ 노선을 걷고 있다. 민간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유통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불법 금융행위로 간주하며 그 자리를 중앙은행 주도의 디지털 위안(e-CNY)으로 대체하고 있다. 심지어 올해 2월부터는 본토 사업자가 관여된 역외 무허가 발행까지 명시적으로 처벌 대상에 올리며 자본 유출의 싹을 자르고 있다.

◆ ‘은행 50%+1 컨소시엄’ 등 발행 주체 놓고 싸우는 한국
아시아 주요 5개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및 도입 현황. 한국은 세부 입법 지연으로 아직 발행 단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자료=타이거리서치]
이처럼 아시아 각국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대항마를 키우기 위해 분주한 가운데 한국은 스테이블코인 전용 법률조차 갖추지 못한 유일한 주요국으로 남아있다.

디지털자산 기본법 2단계 입법을 통해 포괄적인 규제의 큰 틀은 마련됐지만 정작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관한 세부 규정은 여전히 공회전 중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발행 주체’를 둘러싼 국가기관 간 주도권 싸움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진보적인 여야 의원들은 핀테크를 포함한 민간의 폭넓은 참여를 허용해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통화량 통제 약화와 금융 불안을 우려하며 은행이 50%+1주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는 보수적인 ‘은행 중심 컨소시엄’ 구조를 강하게 고집하고 있다.

국내 규제 바깥에서 선제적으로 시도 중인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KRWQ, KRW1) 프로젝트. [자료=타이거리서치]
제도가 발을 묶고 있는 사이 규제 바깥의 시장은 이미 끓어오르고 있다. 네이버페이과 두나무(업비트)의 합병을 비롯해 FRAX, 비댁스 등 국내외 플레이어들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해 대기 중이지만, 법적 불확실성에 갇혀 본격적인 상용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타이거리서치는 “스테이블코인 네트워크는 먼저 참여한 통화에 유동성이 집중되는 승자독식 구조”라며 “오지 않은 문제점을 과도하게 해석하다 보면 좋은 신중함이 지체로 이어지고 결국 자국 화폐가 디지털 결제 인프라에서 자리를 잡을 기회 자체를 잃을 수 있다”며 강도 높게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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