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문학을 말하다] 나는 아기를 낳고 싶다.

주혜성 기자 2026. 2. 2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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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공론×한국약사문인회] 김형자

약사공론은 약사문인회와 손을 맞잡고, 약사의 삶 속에 스며 있는 감성과 사유를 문학의 언어로 풀어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코너에서는 시와 수필을 통해 약사들이 마음속에 품은 이야기들이 조용히 피어납니다.

한 편의 글이 한 알의 약처럼, 독자 여러분의 하루에 따뜻한 쉼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퇴비 한 포를 옮겨야 하는데 기운이 모자란다. 200포를 옮기고 풀어놓아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다. 작년에 도와주던 이웃집 강씨 노인도 작년 가을에 무리하게 일을 해서 겨우내 허리를 앓고 있다. 병원으로 한의원으로 다니면서 치료받는 사정을 너무도 잘 안다. 차마 부탁할 입이 안 떨어진다.

아래 집 밭에는 스무 명은 될 듯 사람들이 밭 가득히 서서 떠들썩하다. 주말이라서 노인 내외의 자손들이 모두 모였다. 노인의 자손이 5남매 배우자까지 10명에 손자들이 10명이라고 한다. 이제 손자들도 다 컸으니 장정이 20명이나 된다. 관리기로 밭을 가는 남자, 비닐을 걷는 여자들, 마늘, 양파 밭에 퇴비와 비료로 웃거름을 주는 사람, 주변을 비로 쓸고 정리하는 사람.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노인들은 팔장 끼고 서서 흐뭇한 표정으로 구경만 하고 지시만 한다.

참 부럽다! 주중에는 각자 직장이나 자기 일터에서 일하고 부모님이 필요할 때는 단체로 몰려와서 후다닥 밭일을 해 치우고 마당에서 고기파티를 한다. 전쟁이 끝나고 태어난 5남매를 기르느라고 고생도 많이 했겠지만 노년을 저렇게 다복하게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내가 아들 하나만 더 낳았어도 "아들아 내일은 밭에 거름을 펴자."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남매를 낳고 문을 걸어 잠그지 않았다면, 내가 아들 셋 딸 둘을 낳았다면, 한 놈쯤 외국에 가서 제 맘대로 살아도 내 곁에는 네 명이 동서남북으로 호위무사를 해 줄 텐데! 이제 80이 되어 아이를 더 낳고 싶다는 엉뚱하지만 간절한 상상을 한다.

군사정권의 연속은 산아제한도 군사작전 하듯이 밀어붙였다. 1963년에는 경제발전10개년 계획과 동반하여 정부주도적인 국가사업으로 가족계획 사업이 엄청나게 강행되었다. 피임시술의 무료보급, 예비군 훈련 면제 명목으로 남성불임수술을 독려하고, 가족계획요원을 보건소 공무원으로 대량 채용하여 가임여성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난관결찰 수술을 강력하게 권장하고, 임신중절수술을 자유화하였다. 어느 산부인과 병원은 하루에도 수십 명 태아를 처리하는 비윤리적 의료도 감행했고, 2자녀 불임수술을 받으면 몇 가지의 혜택을 주기도 했다.
대한가족계획협회 포스터. 국가기록원 제공

1980년 드디어 출산율 2.8인데도 아직도 억제정책은 계속되고, 이제는 "둘도 많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사랑으로 낳은 자식 아들 딸로 구별 말자." 이제 둘이 만나서 둘도 많다는 의식이 팽배하니 출산율은 2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야말로 자식농사는 폐농으로 치닫고 교육열은 세계 최고가 되고 내 자식은 험한 일 힘든 일 안 시키려고 하니 농촌에는 일손이 없고 노인들만 남게 되었다. 귀한 자녀들을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모두 대학까지 보내려니 부모는 허리가 휘었다. 힘든 노동을 경험하지 않고 공부만 잘 하라고 길러서 어른이 된 자손들은 몸으로 할 줄 아는 일이 많지 않게 되었다. 1996년 인구정책을 폐지하고 출산정책으로 전환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졌고 꼴짐은 넘어가게 되었다. 

죽도록 일한 대가로 자식들 교육은 시켰지만 농사짓고 몸으로 일하는 기능공은 절대다수가 부족하게 되었다. 부모 모시고 삼대가 사는 가정은 박물관 진열품보다 귀하게 되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른 부모들이 이렇게 외롭다. 그런데 그 자손들은 결혼도 못하는 남녀가 많고 결혼을 해도 많아야 두 명, 한 명만 자녀를 낳는다. 그들의 노후는 얼마나 외로울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강제로 산아제한을 한 업보가 너무 가혹하게 나타난다. 도시도, 농촌도 초등학교가 계속 문을 닫는다. 어린이집, 유치원도 점차 사라져간다. 내가 만나는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들어갈 학교가 없어졌다고 큰 걱정을 한다. 그래서 나는 애를 낳고 싶은데 나이가 80이다. 아! 가슴이 미어지게 슬프다.

국가가 인구절벽을 초래하는데 들어간 비용의 수천 배를 들여서라도 결혼할 수 있게 하고 아이를 많이 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사람 귀한 줄 알아야 한다. 컴퓨터만 들여다보아서는 생명산업은 날로 쇠퇴해 갈 것이다. 밭 갈고 거름 펴는 인력과 소 기르는 사람 고기 잡는 어부가 많은 세상이 되어야 먹고 살 수가 있다. Chat-GPT가 아무리 만능이라고 해도 쌀 고기 생선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장래가, 나의 자식, 손자들의 미래가 걱정되어 잠을 설친다.

김형자 약사

경기도 이천 솔약국 약사

前 초등학교 교사

초·중·고등학교 마약교육 강사

한국약사문인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