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트럼프發 ‘더센 핵군축’, 韓 핵우산은 지켜야

민병권 논설위원 2026. 2. 2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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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병권 논설위원
미러 간 군비통제 넘어 다자 협정 구상
4월 NPT 평가회의가 새 질서 시험대
中참여 대신 韓핵잠 불허 등 요구 가능
이 와중에 美와 마찰…안보 패싱 우려
민병권 논설위원


카자흐스탄의 한 지진 관측소는 2020년 6월 22일 오전 9시 18분(그리니치평균시 기준) 규모 2.75의 진동을 감지했다. 중국 핵실험장이 위치한 신장웨이우얼자치구 뤄부포 호수 일대가 진원지로 지목됐다. 미국 정부가 들여다보니 진동 패턴에서 핵물질의 초임계 실험, 즉 연쇄 핵분열 테스트 시 발생하는 특징이 엿보였다. 미국은 중국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어기고 비밀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집권 임기 막바지에 꺼내 들었던 핵군축 노선 변경 정책을 한층 가속화하는 촉매로 작용했다. 노선 변경은 중국을 핵군비 통제 협정에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앞서 미국이 약 반세기 간 맺어온 군비 통제 조약들은 주로 러시아와의 양자 간 협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중국 등 다른 핵보유국들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트럼프는 여기에 중국까지 포함시켜 미중러의 3자 간 핵군비 통제의 틀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조약 당사국들의 ‘모든 핵무기’를 규율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기존의 미러 간 합의가 이미 배치(deploy)된 전략핵무기만을 제한하는 데 그쳐 전술핵무기, 비(非)배치 핵무기 등을 놓쳤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일종의 ‘더 센 핵군축’ 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국의 비협조로 불발됐다.

정권을 넘겨받은 조 바이든 대통령도 근본적 제도 개선 없이 땜질 처방하는 데 그쳤다. 집권하자마자 2021년 2월 시한이 만료된 미러 간 핵군비 통제 조약인 ‘뉴스타트(New START·신전략무기감축협정)’를 5년 연장하는 선에서 임시 봉합했다. 그마저도 러시아가 연장 시한을 다 지키지 않고 2023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그러자 지난해 재집권한 트럼프 대통령도 별도의 보완 조치 없이 이달 5일 뉴스타트를 시한 종료시켰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더 센 핵군축 구상에 재시동을 걸고 있다. 올 4월 예정된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가 새 핵질서 모색의 시험대다. 5년마다 190여 개 NPT 회원국이 모이는 이 회의에서 미 정부는 동맹 및 우방의 지지를 요청하며 중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감축 체제 복원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 국무부에서 핵군비 통제를 담당하는 크리스토퍼 야(Christopher Yeaw) 차관보는 이달 17일 한 싱크탱크 간담회에서 “NPT 평가회의는 정부의 최우선 사안”이라며 “모든 핵무기 보유국이 (핵군비 경쟁 중단 등을 향한) 이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러시아는 영국과 프랑스도 핵군비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서왔다. 따라서 향후 새롭게 짜여질 다자간 군비 통제 프레임에는 미국·러시아에 이어 중국·영국·프랑스가 어떤 방식으로든 포함될 것이라는 게 비엔나 군축 및 비확산 센터 선임연구원 니콜라이 소코프의 분석이다. 물론 그 과정은 지난할 것이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최소 수년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자칫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및 재래식 전력 제공(확장 억제) 공약이 강대국 간 협상 조건의 하나로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군비 통제 참여를 수용하는 대신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타결된 우리의 핵추진잠수함 사업에 대해 미국에 다시 불허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반도에 배치된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철수, 주한미군 감축, 한미 군사훈련 제한 및 축소 등의 주장도 우려된다. 더 최악의 상황은 미국이 중국뿐 아니라 김정은 정권과도 군비 통제 협상을 하기 위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군축 협상의 일원으로 포함시키는 경우다.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은 이 같은 악재를 피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 적극 소통해 글로벌 핵질서 재편 속에서 ‘한국 패싱’의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에 앞장서야 할 우리 정부 안보사령탑은 동맹파와 자주파 간 내홍 속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방부까지도 최근 한반도에서의 연합훈련 실시를 놓고 미국 측과 마찰을 빚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정부와 군 당국은 급변하는 핵질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당사국 간 협상 과정에 우리의 국익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해 핵우산을 지켜내는 게 최우선 과제다.

민병권 논설위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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