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임미화의 부동산, 가격 너머] ‘살고 싶은 곳’ 묻지 않는 주택정책

이투데이 2026. 2.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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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 부동산국토정보학과 교수
공급 적지 않은데 살 만한 집은 없어
주거선택, 가격보다 삶의 질에 방점
수요 방향 부응해야 정책 효과 나와


부동산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너무 쉽게 가격부터 묻는다. 얼마가 올랐는지, 얼마나 떨어졌는지, 지금이 살 때인지 기다릴 때인지가 늘 질문의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시장을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가격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따로 있다. ‘사람들은 어디에 살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주택 공급은 숫자로만 보면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부 지역에서는 미분양이 늘고 거래가 정체된 모습도 보인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살 집이 없다”고 말한다. 이 모순은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수요의 방향에서 비롯된다. 집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 곳의 집이 부족한 것에 가깝다.

도시에서의 주거 선택은 더 이상 단순한 가구 단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삶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개인의 결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역할 변화는 도시의 수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여성은 단순한 동반 거주자가 아니라 주거 위치와 생활 환경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도시 소비자로 등장하고 있다. 안전한 보행 환경, 돌봄과 교육 접근성, 일과 생활의 균형을 가능하게 하는 도시 구조, 문화와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생활 밀도는 주거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되었다. 같은 가격의 주택이라도 어떤 삶을 가능하게 하느냐에 따라 선택은 전혀 달라진다. 가격은 조건일 뿐, 결정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럽의 주거 의사결정 연구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주거 선택 과정에서 더 큰 자율성과 영향력을 보이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미국에서도 여성 소비자가 주택 구매와 유지 관리의 핵심 의사결정 주체로 부상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의 여성 응답자가 주거 관련 결정을 스스로 주도한다고 답한 조사 결과도 보고된다.

개발도상국의 주택금융 연구에서도 상당수 여성들이 향후 주택 구매 의향을 보이며 주거 선택의 주요 수요층으로 등장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는 주거 시장의 변화가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니라 의사결정 주체의 변화와 함께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의 주택정책은 여전히 공급량과 가격 안정에 초점을 맞춘다. 몇 만 가구를 공급했는지, 분양가를 얼마나 낮췄는지가 정책 성과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도시 소비자의 선택 기준, 특히 삶의 질을 중심으로 한 수요의 변화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공급은 존재하지만 선택받지 못하고, 가격은 안정돼도 체감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도시는 단순히 주택이 모여 있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구조다. 주거 정책 역시 가격을 조정하는 정책을 넘어,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연결되어야 한다.

돌봄과 노동, 이동과 안전, 관계와 여가가 균형을 이루는 도시일수록 주거 수요는 안정적으로 형성된다. 반대로 이러한 조건이 부족한 곳에서는 아무리 많은 주택을 공급해도 선택받기 어렵다. 결국 주택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삶의 조건을 설계하는 도시의 문제로 돌아온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집값이 오르는지 내리는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왜 그곳에 살고 싶어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공급의 양이 아니라, 선택의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부동산을 가격으로만 보면 늘 늦는다. 수요가 향하는 삶의 방향을 볼 때, 비로소 도시와 주거의 미래가 보인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이미, 도시를 선택하는 강력한 소비자, 여성의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