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랜드마크의 수난사, '파괴의 정치'가 남기는 흉터들

이난희 기자 2026. 2.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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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에서 터져 나온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해체론'은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고질병을 다시금 드러낸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전임자의 흔적 지우기'라는 파괴 본능이다. 랜드마크를 공공의 자산이 아닌 정치적 전리품으로 여기는 인식은 건물을 짓는 것만큼이나 부수는 행위에도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부여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 통일 후 철거된 '공화국 궁전(Palast der Republik)'이다. 과거 동독의 의회이자 문화 공간이었던 이 건물은 통일 독일 정부에 의해 2006년 사라졌다. 표면적으로는 석면 검출이 이유였지만, 실상은 사회주의 체제의 상징을 지우고 과거 프러시아 왕조의 성을 재건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강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동독 시민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을 정치적 잣대로 지워버렸다는 비판은 지금까지도 독일 사회의 흉터로 남아 있다.

우리 곁의 동대문 운동장 역시 마찬가지다. 근현대 스포츠의 성지이자 서민의 터전은 '디자인 서울'이라는 비전 아래 허물어졌다. 누군가의 삶을 지우며 세워진 DDP가 이제는 또 다른 정치인에 의해 "상권을 죽이는 유령 도시"로 규정되어 파괴의 위협을 받는 현실은 지독한 역설이다.

이러한 수난은 서울의 랜드마크가 보수와 진보의 세계관이 격돌하는 전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 도시학자 마이크 더글라스(Mike Douglass)의 관점에서 보면 보수 성향 시장의 DDP가 경쟁 중심의 '글로보폴리스'를, 진보 성향 시장의 '서울로 7017'이 보행 중심의 '코스모폴리스'를 지향하며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를 투영했다.

하지만 두 랜드마크는 각각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라는 외국의 사례를 서울이라는 공간이 가진 고유한 맥락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이식하려 했다는 피상적 모방의 한계를 공유한다. 지역의 맥락보다 정파적 목표가 앞선 관(官) 주도의 하향식 행정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랜드마크를 '지워야 할 전임자의 흔적'으로 전락하게 했다. 이처럼 자생적이지 못한 랜드마크는 정치적 풍향에 따라 언제든 파괴의 표적이 되기 쉽다.

정치적 쾌감을 위해 수천억 원의 혈세가 투입된 공공자산을 부수겠다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건물이 제 기능을 못 한다면 그것은 하드웨어의 죄라기보다 그 안을 채울 콘텐츠와 운영 철학의 부재 때문이다. 랜드마크는 정치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가는 공공의 기록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체용 망치가 아니라 공간의 결함을 보완하고 시민의 삶과 연결할 '운용의 묘'다. 파괴는 잠시의 갈채를 부를지 모르나 도시의 진정한 생명력은 과거의 성과까지도 포용하고 발전시키는 지속성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