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언어는 몸을 통해 나와, 세계를 확장하죠

우리는 언어의 세계(이미지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언어는 기호의 상징이다. 기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뜻을 함축하고 있다. 쓰임에 따라 뜻이 변하기도, 확장되기도 한다. 늘 마주하는 문자는 스마트폰, TV, 신문, 책, 사용 설명서 등에 있다. 원초적으로 이 문자, 단어들은 어디서 시작됐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입술 안 구강 구조를 통해 발음돼 나와, 의미의 세계로 진입했다. 소리의 언어가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문자를 만들었다. 구체적인 것은 여기서 차치한다.
활동하는 무대가 넓어질수록 단어는 더 많이 필요하다. 적합한 단어 찾기에 나선다. 단어를 찾기 위해 '휴대폰'을 이용하기도 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적합한 단어 사용은 실력이다. 새로운 '봄'을 끝없이 추구하는 '시(詩)'의 세계에서 단어(시어)는 정말 중요하다.
시어는 시대의 흐름과 같이 간다. 아무리 신선한 시어라도 널리 쓰이다 보면, 파릇했던 상징은 죽고 만다. 요즘 '빨간 장미'를 시에서 사랑의 상징으로 쓰기는 부담스럽다. 여전히 붉은 장미는 아름답지만, 그 상징성이 가지는 풋풋함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운 단어(시어)를 찾아 나서야 한다. 새로운 표현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단어다. 시인은 싱싱한 상징성의 언어를 공급할 의무가 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의무를 다하지 않은 시를 읽을 때 독자는 식상한 세계를 견뎌내야 한다. 그러니 새로운 '봄'을 위해서 단어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물론 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술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가진 언어는 그 사람의 세계다.
최형일 시인의 시 '단어를 찾아서 1'는 단어를 찾아 나서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시적 화자는 단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감각까지 동원하고 있다. 단어를 만들어내는 느낌과 그것들의 촉감까지 동원한다. 내적 흐름까지 따라가고 있다. 감각과 단어 사이를 오가고 있다. '손안의 느낌', '이미지로 파르라니', '새초롬한 기호', '푸드덕대는 혀', '갇힌 기호들이 둥글게 번진다' 등의 시구를 통해서 드러난다.
단어는 어쩌면 우리에게 피부와 같고 옷과 같다. 내 몸을 통과하는 언어다. 몸을 통해 나와서 세계와 관계한다. 시적 화자는 그 세계를 얼마나 풍부한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 것인지를 고민한다. 물론 그 고민을 읽어내기 쉽지 않다.
단어를 찾아 나서는 것은 세계에 대한 사랑이자, 관계에 대한 사랑이다. 이 세계를 젊은 감각으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는 자, 세계의 그림을 세밀하게 그리고 싶은 자, 열정을 가진 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단어를 찾아서 1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전원을 켜고 감정을 설정하자 기억이 난다 불러온 단어들이 손안의 느낌으로 낫다 목록을 훑어 내린다 화면에 흐르는 입맛이 바짝 마른다 봄날이 잠시 목젖을 닦는다 눈썹 가장자리로 볕이 떨린다 꽃잎은 이미지로 파르라니 열린다 벚나무 가지가 눅눅하다 사라진 꽃가지에 새순이 돋았다 멀어진 새소리가 앉았다 새초름한 기호다 혓바늘이 돋는다 자모음이 까끌까끌 중얼대는 무늬를 새긴다 가시들이 부서진다 검색창으로 네모진 말들이 나선다 꽃잎이 하얀 거울 속을 떠돈다 푸드덕대는 혀들이 광대뼈 사이로 들랑날랑댄다 입가로 번진 주름들이 입술을 매만지며 날름거린다 구멍들이 번들거린다 갇힌 기호들이 둥글게 번진다 좁은 틈새로 발룩대다 검어진다 움쭉거리다 붉다 불룩이 휘기도 하고, 보이는 것 너머로 사그라든다 꼴깍꼴깍 봄이 지고 새순이 핀다 침샘 아래 어제 같은 오늘이, 물고기 비늘 같은 꽃잎들이
- 최형일 시집 「밤비가 파두에 젖는다」(2025, 파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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