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기차인데 서울역 간다고요?”…사상 첫 KTX-SRT 교차 운행 개시
열차 좌석난 해소 기대 속, 지역자원 유출 가속 우려도

대한민국 양대 고속열차인 KTX와 SRT의 '교차 운행' 첫날인 25일 동대구역사. 경부선 핵심 거점인 동대구역의 승강장엔 다소 생소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날 오전 11시45분쯤 11번 승강장에 매끈한 보라색 차체의 SRT 열차(11시48분 출발)가 진입했다. 평소라면 수서역으로 향했을 이 열차 측면 LED 행선판엔 '서울'이란 낯선 두 글자가 선명했다. 그렇게 2~3분을 기다린 서울행 SRT 열차는 승객을 태운 채 유유히 사라졌다.
비즈니스 협의 때문에 서울 방문이 잦다는 안모(48)씨는 "평소 서울역을 향하는 파란 KTX만 탔는데, 앱에서 예매할 때 SRT가 서울역으로 간다고 떠서 신기했다. 막상 보라색 기차를 보니 수서로 가는 건 아닌지 괜스레 의심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교차 운행에 따른 해프닝도 발생했다. 서울행 SRT 열차에 대한 안내방송에선 "도착 안내 말씀드립니다. 11시48분에 서울로 가는 K(KTX)…, 서울로 가는 SRT 열차가 타는 곳 11번으로 들어오겠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왔다. 안내 방송원이 '서울행 SRT' 운행 정보를 무심코 '서울행 KTX'로 부를 뻔 하다 곧바로 정정한 것이다.
이날 SRT가 서울역을 향한 반면, KTX 열차(상행선)는 수서역이 최종 목적지였다. 앞서 11시20분쯤 같은 승강장엔 익숙한 파란색 열차가 들어왔다. 안내 방송에선 "수서로 가실 고객은 이번 열차에 탑승하시기 바랍니다"고 전했다.
자신을 '철도 마니아'라고 밝힌 대학생 모창희(26)씨는 "오늘 같은 역사적인 순간에 가만 있을 수가 없어 일부러 승강장을 찾았다. 교차 운행 첫 시작은 반가운 일"이라며 "시행 초기엔 승객들이 헷갈릴 수 있겠지만, 금세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풍경은 KTX와 SRT의 운영사인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SR이 이날(25일부터)부터 경부선 노선(상하행선)을 각 1편씩 교차 운행하기로 한 데 따른 결과다. 기존에 KTX가 서울역~부산역, SRT가 수서역~부산역을 운행했는데, 이를 서로 맞바꾼 것이다.
경부선 중앙 지점에 위치한 동대구역의 경우 부산역처럼 시·종착역이 아닌 탓에 정차 시간은 짧은 편이다. 이에 코레일 등은 행여나 행선지를 착각한 승객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분간 역사 승강장에 역무원들을 배치해 안내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코레일 대구본부는 "고객이 혼동해 잘못 승차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김천구미역, 동대구역, 경주역 등 역사 내 주요 위치에 안내문을 부착했다. 직원 교육 및 출발 전 안내 방송 강화 등으로 고객 불편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교차 운행이 되면 승객들은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수서역~부산역은 '예매난 해소'에 따른 '좌석 확보'가, 서울역~부산역은 '비용 절감'에 각각 이점이 예상된다.
실제 좌석 수가 약 410석인 SRT(8량)와 달리 KTX는 955석(20량)을 운용할 수 있다. 만성적인 좌석 부족에 시달리던 수서역~부산역 노선에 대규모 수송이 가능한 KTX가 투입되면 이용 승객 편의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역~부산역 노선은 상대적으로 수요가 분산되는 시간대에 몸집이 가벼운 SRT를 배치, 운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통상 KTX는 SRT보다 비싼 운임 구조(일반실 성인 기준 KTX 동대구~서울 4만3천500원·SRT 동대구~수서 약 3만7천원)를 갖고 있다. 이번 시범 운행을 통해 서울역~부산역을 운행하는 SRT가 기존 KTX 대비 약 10% 저렴한 운임(3만8천300원)이 적용된다. 승객들이 '더 싼 고속열차'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구정책연구원 김수성 박사(공간교통연구실)는 "코레일과 SR은 그간 확보한 승객 데이터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시간대에 교차 운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절대적인 승객 운송량은 그대로지만, 교통 효율화에 따른 반사효과로 서울 강남지역 접근성이 향상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어 "운임 체계의 경우 변화폭이 크지 않겠지만, 상황에 따라 비용 절감 혜택을 보는 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선 서울 등 수도권 접근성이 향상됨에 따라 지역 인구와 자본이 한 쪽으로 쏠리는 '빨대효과'가 심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계명대 박용진 교수(교통공학과)는 "교차 운행에 따른 교통 선택지가 늘어나면 지역민들이 서울을 더 쉽게 찾게 되고, 이는 결국 지역 상권에 타격이 될 수 있다. 특히, 강남권 대형병원을 찾는 의료수요가 더 커질 것"이라며 "자칫 서울 위주의 정책이 지역 자원을 빨아들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