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서 탄생한 한국식 짜장면 ‘원조의 위엄’ [알보달보 인천지역유산·(3)]

1970~90년대 외식이 흔치 않던 시절, 졸업식이나 가족 행사와 같이 의미 있는 날이면 먹던 대표적인 음식은 중국집 ‘짜장면’이다. 당시에도 동네마다 크고 작은 중국집이 하나씩은 있었던 데다, 저렴하면서도 집에선 쉽게 해 먹을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지금도 ‘중요한 날 먹는 음식은 짜장면’이라는 공식은 남아 있다.
그렇다면 짜장면은 어디서 온 음식일까. 중국집에서 판다는 이유로 중국 음식으로 혼동할 수도 있지만, 사실 짜장면은 너무나도 한국적인 음식이다. 중국에도 물론 짜장면(작장면, 炸醬麵)이 있지만, 우리나라 짜장면과 음식의 형태도, 먹는 방식도, 맛도 다르다. 인천은 ‘짜장면’이라는 이름의 음식을 처음 먹기 시작한 지역으로 기록돼 있다. 화교들과 함께 넘어온 중국 음식을 재해석해 지금의 짜장면이 우리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어디, 비빌테면 비벼봐
산둥지역 가정식 ‘작장면’… 화교들과 함께 넘어온 후 재해석
검은색 춘장 등장·미국 밀가루 원조 맞물려 지금의 모습 갖춰
1964~77년 정부 주도 ‘혼·분식 장려운동’ 영향 대중음식 반열
화교 우희광이 운영한 ‘공화춘’… 인천서 최초 ‘짜장면’ 이름
1970년대까지 명성 얻었지만 상권 위축 등 이유 1983년 폐업
옛 건축물 특징 살려 복원… 2012년 ‘짜장면박물관’으로 부활
한국식 짜장면의 탄생과 대중화

인천 화교들은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다. 인천시의 지역유산 조사연구 기록을 보면, 중국 산둥지역 가정식 중 하나가 작장면(짜지앙미옌)이다.
작장면은 삶아낸 면 위에 춘장, 숙주나물, 오이, 완두콩 등 다양한 재료를 곁들인 채 비벼 먹는 식이었다. 이때 춘장은 우리가 흔히 아는 검은색 춘장이 아닌, 된장처럼 담근 장이었다. 이 가정식이 화교들과 함께 인천으로 넘어와 팔리기 시작한 것인데, 초창기 화교촌에서 만들어 팔던 짜장면도 지금과는 달랐다고 한다. 당시에는 완전히 비비지 않고, 면 위에 얹은 장을 면에 묻혀 가며 먹는 음식이었다. 춘장을 볶다 물과 전분을 넣어 풀어주고, 채소를 듬뿍 넣어 전체적으로 단맛이 나게 하는 한국식 짜장면과 완전히 다른 음식인 셈이다.
지금 형태의 짜장면이 탄생한 시점에는 의견이 분분한데, 1950년대 이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는 검은색 춘장의 등장, 그리고 미국의 밀가루 원조와 관련이 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1950년대 미국의 밀가루 무상원조가 시작됐는데, 그 영향으로 빵이나 면 요리 등 각종 밀가루 음식이 급격히 발전했다. 그중 하나로 짜장면 보급이 활성화됐고, 이때 가장 많이 사용된 춘장이 ‘사자표 춘장’이었다. 산둥지역 출신 화교였던 왕송산(王松山)은 설탕을 가열해 만든 끈끈한 갈색 캐러멜을 중국 춘장에 혼합했고, 이는 단맛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처음 한국에 상륙할 당시 황색이던 산둥식 된장이 지금처럼 검게 변한 계기는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춘장 업체들 사이에서 색이 검을수록 숙성이 잘 된 것이라는 근거 없는 말이 돌면서 점차 색이 짙어졌다. 캐러멜 단맛이 강한 검은 춘장은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으면서 짜장면의 인기에 한몫했다.
여기에 정부 주도의 ‘혼·분식 장려 운동’이 전개되면서 짜장면은 그야말로 대중음식으로 올라선다. 이 운동은 주곡인 쌀을 자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원조 곡물이 쌓여가자, 이를 해결하고 국민 식생활을 개선하고자 정부 차원에서 내린 조치다. 1964년부터 1977년까지 10여년간 진행됐다. 보리, 콩, 조 등 잡곡을 섞은 밥이 혼식이고, 밀가루 음식이 분식이다. 혼·분식 장려 운동 시작 4년 만인 1969년 연간 밀 소비량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우리나라에서 짜장면을 비롯한 면 요리 ‘붐’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짜장면 가격은 어땠을까? 짜장면박물관 자료를 보면, 1960년대 초 쌀 한가마니(80㎏)가 3천10원 하던 시절, 짜장면 값은 단돈 15원이었다. 화폐개혁 이후인 1964년엔 35원으로 올랐다. 그러다 짜장면이 대표적인 외식 음식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1970년대 중반 140원, 1980년대엔 350원으로 점차 바뀌다가, 1990~2000년대를 거치면서 급등하게 된다. 1990년대 초반 1천300원이던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은 2000년 전후로 3천원으로 올랐다.
공화춘과 짜장면박물관

‘공화춘’은 인천에서 처음으로 ‘짜장면’이라는 이름의 음식을 팔았다고 알려진 음식점이다. 산둥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이 1907년 인천으로 이주한 뒤 청국 조계지에 객잔(客棧) 성격의 숙식 업소로 개업한 ‘산동회관’이 공화춘의 전신이다. 1912년 중화민국이 수립되자 우희광은 그해 이를 기념해 ‘공화국의 봄이 왔다’는 뜻을 담아 공화춘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공화춘은 식당 메뉴에 최초로 짜장면을 선보였다고 알려진 만큼 인천 짜장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시기상 지금 형태의 짜장면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휴전 후 공화춘은 인천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중국집으로 번창했다. 우희광의 장남인 우홍장은 1953년 공동 출자로 운영되던 공화춘의 주식을 모두 매입하고 시설을 확충해 새롭게 영업을 시작했다. 1968년에는 인접 건물들까지 매입해 대형 연회장을 갖추는 등 1970년대까지 이곳 대표 중화요리점으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한국인들의 중화요리업 본격 진출, 한국 화교의 쇠락, 인천시청 이전에 따른 중구 구도심 상권 위축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1983년 결국 폐업하게 된다.
인천 중구는 2006년 4월 공화춘을 등록문화재 제264호로 지정했다.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기록을 보면, 옛 공화춘 건물은 산둥지역 장인이 참여해 지은 중정형(中庭型)의 중국식 2층 건축물이다. 외부는 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다양한 문양과 붉은색을 사용해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이를 활용해 중구는 2008년 짜장면박물관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2009년 옛 공화춘 부지 매입과 등기 이전을 완료하고, 복원 작업을 거쳐 2012년 짜장면박물관을 완공해 개관했다. 짜장면박물관을 방문해 보면, 이러한 건축물 특징이 대부분 보존됐음을 알 수 있다.

짜장면박물관에는 건축물 특징뿐 아니라 인천 짜장면과 차이나타운, 그리고 공화춘의 역사도 남아 있다. 1~2층을 주제별로 나눠 짜장면의 기원과 화교 역사에 대한 설명, 과거 판매되던 사자표 춘장과 밀가루, 당시 주방의 모습과 철가방 등 짜장면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물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또 공화춘의 주식 증서와 회계장부, 가격표, 당시 사용한 나무젓가락까지 그대로 전시돼 있다. 인천 짜장면의 흥미로운 역사를 알고 싶다면 방문하기에 딱인 곳이다.
인천시민의 소울푸드, 짜장면

지난 24일 공화춘의 후손이 차이나타운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신승반점을 찾아가 봤다. 영업 시간은 오전 11시부터인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10시40분께부터 번호표를 뽑는 손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승반점 대표 메뉴인 유니짜장을 주문했는데, 유니 혹은 유미 짜장으로 불리는 이 음식은 돼지고기를 곱게 간 덕분에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직접 짜장면을 먹어 보니, 살짝 짠 듯하면서도 달짝지근한 한국식 짜장면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한참 먹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테이블 손님들도 대부분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간혹 짬뽕을 시킨 손님도 보였지만, 테이블 가운데 짬뽕과 짜장면을 함께 두고 덜어 먹는 것을 보면 사실은 모든 손님이 짜장면을 맛보고 있는 셈이다. 평일 오전부터 ‘오픈런’을 해서 짜장면을 먹는 동안 손님들은 일상 얘기를 하며 웃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졸업식, 이삿날, 가족에게 기쁜 일이 있는 날 중국집에 가거나 짜장면을 시켜 먹은 기억 덕분일까. 짜장면은 우리에게 ‘소울푸드’(추억이 담긴 음식이나 각 지방 특색 음식)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한국식 짜장면의 역사가 시작된 인천이라면 더욱 그렇다.
인천시는 오랜 시도 끝에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인천시가 주최하는 ‘1883 인천 짜장면 축제’를 열었다. 이제 ‘인천지역유산’으로까지 선정된 짜장면은 짜장면 축제를 비롯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인천시민에게 다가가고 있다. 올해 인천 곳곳에서 짜장면이 들려줄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김희연 기자 kh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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