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오해를 이해로 착각한다…타인의 마음은 미확인 정보”

허윤희 기자 2026. 2. 2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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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타인이라는 세계’ 펴낸 홍순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타인이라는 세계’를 펴낸 홍순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인간은 누구나 두개의 세계에 살고 있어요. 바깥 현실이라는 세계와 각자의 내면에 있는 심리적 현실이라는 세계. 하지만 우리는 평소 객관적 현실만 인식하고 자기 내면의 세계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타인이라는 세계’(다산초당)를 펴낸 홍순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말이다. ‘타인이라는 세계’는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판단의 오류를 뇌과학·심리학·정신의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책이다. 홍 교수는 “심리적 현실을 망각한 채 살다 보면 오해와 편견에 취약해지고 그 심리적 현실 안에서 어떤 생각을 계속 곱씹는 반추에 빠지면 우울 같은 심리적 고통도 더 많이 받게 된다”고 말한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홍 교수는 내면의 세계를 알려면 ‘마음 이론’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개인 차원에서는 사람을 대하는 걸 너무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고 사회 차원에서는 편견, 증오, 혐오가 가득한 느낌을 받습니다. 개인과 사회 두가지 측면의 어려움이나 문제가 모두 뇌과학으로 보면 ‘마음 이론’이라고 하는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 이론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아니라 내 나름의 설명을 만들어내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저마다의 마음 이론으로 해석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떠오른 생각은 대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아요. 결국 우리가 아는 타인의 마음이란 일종의 상상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할 때 그 이해는 내가 만든 가짜입니다.”

마음 이론은 내가 만든 상상이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데 쓸모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면 이 마음 이론이 작동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 도구를 현명하게 사용하려면 타인을 보고 든 생각이 내가 만든 상상이라는 걸 깨닫고, 내 생각이 사실에 얼마나 가까운지 항상 점검할 필요가 있다.

홍 교수는 내 마음이 내린 해석을 진실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타인에 대해 판단할 때 내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이 오해일 수 있어요. 일단 그 오해만이라도 하지 않아도 결국 이해의 문은 열릴 수 있어요. 하지만 오해한 채 결론을 내리면 더는 (타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없어집니다. 어쩔 땐 오해인지도 모르고 이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게 결국 대인 갈등, 사회적 갈등 등 많은 갈등으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한편 타인을 이해하려는 것은 자신의 편견과 오해, 망상을 마주하는 일이 되곤 한다. 타인에 대한 정보 부족, 자신이 살아온 환경 등이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이럴 때 “내 생각의 발걸음이 객관적 현실로부터 단절된 심리적 폐쇄 회로 안을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홍 교수는 말한다. 일례로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내가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는 것이다. “사람에 관해 떠오르는 생각들에 주의해야 합니다. 타인의 마음에 관한 거의 모든 내용이 자신의 상상일 뿐 확인된 정보가 아니라는 점을 항상 명심하고, 거기에 의문부호를 남겨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의사가 된 건 어릴 적부터 ‘고통’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았던 영향이다. “어릴 적 생일에 소원을 빌라고 하면 ‘세상의 모든 생명이 고통 없이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했어요. 나중에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 고통이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 것도 상당히 크다는 걸 알게 됐고 정신적 고통을 줄이는 정신과 의사를 선택하게 됐어요.”

그에게도 정신적 고통을 겪은 시간이 있었다. 청(소)년기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그 당시 그는 그 생각을 멈추고 바꾸는 방법을 시도했다. 인생을 여행이라고 가정하고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여기서 여행을 끝내고 싶지만 기왕 큰맘 먹고 온 셈이니 끝까지 가보자’라고 말이다. “‘타인이라는 세계’에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개인적 이야기를 썼더니 책을 미리 본 분들이 그 부분에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는 말을 하더군요. 처음에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걸 읽고 도움을 받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겉으로 보기엔 모두가 완벽한 솔루션을 갖고 잘 살아가는 것 같지만 각자 이런 (힘든) 순간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와 치열한 경쟁, 불확실한 일상 속에서 불안, 우울 등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이 늘고 있다. 홍 교수는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 일상생활에서 짬을 내 할 수 있는 ‘생활 명상’을 권한다. “최근에 달리기 열풍이 불고 있잖아요. 저도 가벼운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이걸 하면서도 명상을 할 수 있어요. 발목의 움직임이나 호흡에 집중하고 관찰해보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딴 생각에 휘말려 몽상 속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게 돼요. 몽상을 줄이고 뇌에서 ‘기본 설정 네트워크’(내면에서 몽상 속을 배회할 때 활동하는 네트워크)를 잠잠하게 만들어서 마음의 평온을 이루고자 하는 활동이 명상이거든요. 그러면 마음이 상쾌해지고 체력도 좋아질 겁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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