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쉼’이라는 인권, 도시가 잊은 언어

카페도 집도 아닌, 제3의 쉼터 찜질방
황토색 유니폼 아래 모두가 같은 사람
한국적 온돌 감성이 빚어낸 완충 공간
눕는 자유·벗는 자유, 경계 허문 실험
며칠 봄날 같던 날씨가 돌변하더니 지방에 큰 눈이 오면서 겨울왕국이 되었다. 발이 묶인 사람도, 명절 내 피로가 쌓인 사람들도 찜질방을 향한다. 이유가 그리 거창하지는 않다. 씻고, 몸을 지지고, 따뜻한 바닥에 누워 쉬러 간다. 목욕과 온돌이라는 오래된 생활 방식이 도시의 빌딩 안으로 들어와 다른 형태로 자리 잡은 것뿐이다. 그런데 이 단순한 공간이 유독 도시적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시인의 삶을 지탱하는 이 힘은 어디에서 올까.
도시는 더욱 진화했다. 업무 공간의 생산성은 극대화되었고, 소비 공간은 구매력을 자극하기에 부족함 없이 설계되었다. 그러나, 효율성이라는 도면 위에 ‘쉼’은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사회적 조건 없이 있게 하는 곳. 카페는 앉을 수 있지만 누울 수 없고, 공원은 밤이면 나가야 하고, 역 대합실도 마찬가지다. 집조차 완전한 쉼은 아니다.
2만원 남짓하는 입장료를 내고 찾아가는 쉼터가 있다. 시민들은 누워도 되고, 잠들어도 되고, 식혜를 마시다 다시 눕기를 반복해도 된다. 집도 아니고 숙박업소도 아닌 이 독특한 곳. 도시가 놓쳐 버린 일종의 완충 공간이다. 생산하거나 소비하거나 이동하는 곳이 아닌, 그냥 있어도 되는 곳. 도시가 설계하지 못한 그 자리를, 시장이 먼저 만든 것이다.
이 공간이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건 우연이 아니다. 조선 시대 한증막에서 시작된 ‘뜨거운 바닥에 몸을 지지는’ 문화가 온돌과 만나 수백 년을 이어왔고, 1990년대 초 부산에서 목욕탕과 찜질을 결합한 형태가 처음 등장했다. IMF 사태 이후 저렴한 여가 수요가 폭발하고, 2002년 월드컵 전후 밤늦게까지 모여 시간을 보내는 생활이 확산되면서 ‘집이 아닌데 머물 수 있는 곳’이 한국인 특유의 오래된 감성과 맞닿은 것이다.
찜질방은 현대인의 모순된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우리는 익명성을 원하면서도 고립되고 싶지는 않고, 다양성을 존중받고 싶으면서도 차별받고 싶지는 않다. 찜질방 탈의실 캐비닛에 게딱지처럼 두터운 ‘사회적 갑옷’을 벗어 넣고, 황토색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순간, 이 모순이 기묘하게 해소된다. 수십억을 가진 자산가나 취업준비생이나 할 것 없이 같은 옷에 가진 것은 수건 한 장 뿐이다. 서로를 모르고, 알 필요도 없다. 익명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다르지만 차별받지 않는다. 타인의 존재가 위협이 아니라, 편안하고, 동시에 적당한 배경이 된다. 고립과 차별 사이 어딘가에서 줄타기하는 현대인에게, 이 공간은 양쪽 모두에게 편안한 거실이 된다.
이 갈망은 비단 한국만의 정서가 아니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권’(right to the city)을 통해 도시를 상품이 아닌 공유 공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을 쓰지 않아도 앉아 쉴 수 있는 곳, 신분을 증명하지 않아도 머무를 수 있는 ‘감정적 인프라’를 시민의 권리로 본 것이다.
영국의 ‘공공 거실’(Public Living Rooms) 운동은 정장 입은 신사와 노숙인이 같은 소파에 앉아도 눈치 주지 않는 공간을 만든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2024년 연방 대법원이 ‘Grants Pass’ 판결로 공공장소에서 자는 것을 범죄화하자 시의회가 정면으로 반발했다. 켄드라 브룩스 의원이 주도한 결의안은 “주거는 인간의 권리(housing is a human right)”라고 선언하며, 노숙을 처벌하는 대신 안전한 주거를 제공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몸을 둘 곳이 없는 사람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둘 곳을 만드는 것이 도시의 의무라는 것이다.

해외에서 찜질방에 열광하는 이유도 단순한 데서 시작한다. 전 세계 도시인이 목말라하던 ‘조건 없는 쉼’을, 한국은 사적 영역에서나마 이미 구현해 놓았기 때문이다. 가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가격이나 신기함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경험이다. “모르는 사람 옆에서 잠들었는데 이상하게 편했다”는 것이다. 서구에선 공공장소에서 눕고, 자고, 벗는 것은 위험하거나 극히 친밀한 관계에서만 가능한 행위다.
찜질방은 그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허문다. 집도 숙박업소도 아닌 곳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같은 옷을 입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 그 자체가 전 세계 도시인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선택지다.
그렇다면 이 발견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문명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 변화 속에서 사람들의 쉼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빈약하다. 도시가 발전할수록 쉬고 싶은 사람은 많아지는데, 쉴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주거는 인간의 권리로 선언되지만, 일상 속 ‘쉼의 권리’는 아직 개념조차 부족하다. 집이 아예 없는 사람의 문제와 별개로, 집은 있지만 쉴 틈이 없는 사람을 도시가 어떻게 품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연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비용이 수반되는 찜질방이 완벽한 답은 아니다. 집에 돌아가기 어려운 가출 청소년들이 찜질방으로 모여들었고, 이를 막기 위해 심야 시간 미성년자 출입이 제한되면서, 정작 그 아이들을 거리로 내몰기도 했다. 보호하려는 제도가 오히려 가장 취약한 사람을 밀어내는 상황. 도시가 완충 공간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이런 쉼이 필요하다. 도시가 이제 물어야 할 것은 이런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왜 사람들이 스스로 이 자리를 만들어야 했는가다.
뜨거운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 있으면, 도시의 속도가 잠시 멈춘다. 도시는 가끔 이렇게, 가장 투박하고 편안한 거실의 모습으로 삶을 보듬는다. 그 품이 조금 더 넓어질 수 있을까. 2만원짜리 입장료 바깥에도 몸을 내려놓을 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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