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이재명’은 죄가 없다 [뉴스룸에서]


이세영 | 정치부장
말로써 누군가를 움직여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게 정치라면, 개인이나 무리에 이름을 지어 붙이는 행위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인 일에 속한다. 이 당연한 사실을 ‘뉴 이재명’이란 이름을 매개 삼아 펼쳐지는 여권의 권력투쟁에서 절감하고 있다.
‘뉴 이재명’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건 지난해 9월 한겨레가 한국정당학회와 함께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STI)에 의뢰해 실시한 유권자 2차 패널조사 보도다. 동일 유권자층을 상대로 시차를 두고 벌이는 패널조사는 유권자 의식 변화의 양상과 원인을 정교하게 추적·분석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대선 전인 1차 조사(5월8~11일, 2775명) 때는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았으나, 2차 조사(9월3~7일, 2207명)에서 대통령 이재명의 국정운영을 지지하게 된 응답자(320명)를 어떻게 부를지가 고민이었다. 몇개의 후보를 두고 저울질하다 단순 명쾌한 ‘뉴 이재명’을 최종 낙점했다. ‘“이 대통령 지지” 63%…넷 중 한명은 ‘뉴 이재명’’(2025년 9월11일치 1면) 기사가 그렇게 나왔다.
조사에서 드러난 ‘뉴 이재명’의 정치 성향은 ‘올드 이재명’과 뚜렷이 구분됐다. 이념 지수는 5.3으로 ‘올드 이재명’(3.6)보다 오른쪽에 있었고(매우 진보 0~매우 보수 10), 지지하는 정당은 국민의힘(27.9%)과 개혁신당(12.8%)을 더한 수치가 민주당(29.9%)보다 많았다. 자신의 이념 성향에 대해선 ‘중도’(64.5%)라고 답한 이가 압도적이었다.
당시 한겨레가 내린 결론은 정치 상식에 부합하는 수준이었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층은 ‘뉴 이재명’과 ‘올드 이재명’이란 이질적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뉴 이재명’이 유지되면 60%대 국정 지지율을 지키지만 이탈하면 40%대로 추락한다. 안정적 국정 동력을 확보하려면 ‘뉴 이재명’을 붙잡아두기 위한 정치 기획과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해를 넘기며 ‘뉴 이재명’이 엉뚱하게 소환되기 시작했다. ‘올드 이재명=구 운동권=친정청래’ ‘뉴 이재명=중도 실용=친이재명’ 프레임이 친여 정치 유튜버들과 민주당 정치인들에 의해 확산된 것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갈등을 거친 뒤에는 ‘올드 이재명=친문재인(조국)=합당 찬성’ ‘뉴 이재명=‘찐’이재명=합당 반대’로 의미 연쇄가 확장됐다. ‘집토끼’(고정 지지층=올드 이재명)에 ‘산토끼’(부동층=뉴 이재명)의 지지를 더해야 이재명 정부의 국정 동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덧셈’의 정치 산식이, 집권 여당의 내부 갈라치기용 ‘뺄셈’의 산식, ‘권력투쟁의 언어’가 된 것이다. 이 당혹스러운 변화를 ‘8월 민주당 전당대회’라는 이벤트를 빼놓고 설명할 정치적 상상력이 내게는 없다.
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삼는 한 선거에서 ‘다수 연합’을 구성하는 것은 필수다. 유권자 구성의 복잡성이 커진 현대 사회에서 어느 한 지역이나 계층·이념 집단의 지지만으로 권력을 잡기란 불가능한 탓이다. 다수 연합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1930년대 미국의 뉴딜 연합이다. 대공황의 폭풍 속에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규모 복지·공공정책을 통해 전통 기반인 남부 백인과 가톨릭 세력에, 북동부 노동계급과 이민자, 대도시 취약계층을 묶어 안정적인 다수자 연합을 꾸리는 데 성공함으로써 30년 민주당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한국 민주당의 집권 과정도 비슷했다. 호남의 전폭적 지지와 재야의 조력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안정적 제1야당의 지위를 유지해온 김대중의 민주당은 1997년 김종필이 맹주인 충청 세력과의 연합에 여권(이회창-이인제) 분열, 외환위기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추가되는 천우신조 끝에 집권했다. 하지만 소수파 정권의 한계 탓에 재집권은 난망해 보였다. 김대중의 선택은 호남의 견고한 지지 위에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자유주의·온건진보 성향의 고학력 도시 중산층’(리버럴)의 지지를 얹는 것이었고, 그 결실이 2002년 노무현의 대선 승리였다. 이후 몇차례의 갈등-이탈-재결합의 과정을 거쳤지만, ‘호남-리버럴 연합’은 여전히 민주당을 지탱하는 핵심축이다.
‘실용 노선’을 표방한 이재명 정부 출범 뒤 친민주당 유권자 연합은 또 한번의 확장 기회를 맞았다. 기회를 살릴지 날릴지는 민주당이 ‘뉴 이재명’이란 이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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