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주의자’ 트럼프가 이란을 오판한 이유···하메네이의 ‘순교 정치’[뉴스 깊이보기]
트럼프에게 군사 위협은 ‘거래의 기술’이지만
하메네이에게 굴복은 ‘실존적 정체성 위협’
이란에 핵 보유는 ‘억지력’ 아니라 이슬람공화국 수호
이슬람 ‘순교의 정치’도 간과
저항하다 순교하면 패배 아닌 ‘도덕적 승리’

미국이 중동에 2003년 이라크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배치한 가운데 미국의 이란 공격 여부를 가를 분수령이 될 3차 핵협상이 26일(현지시간) 열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미국의 전례 없는 군사적 위협에 굴복해 ‘핵 포기’에 합의하길 바라지만, 이란은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미 연방의회에서 한 국정연설에서 아직 이란으로부터 “‘우리는 절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겠다’는 비밀 단어(secret words)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거래주의자’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란이 세계 최강 군사력을 지닌 미국의 공격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열린 이란과의 2차 핵 협상이 빈손으로 끝나자 협상에 참여한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에게 “이란이 왜 항복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데이비드 페트라우스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진심으로 위협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상대방과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모든 힘을 다해 상대방의 코를 쳐야 최대치의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과 제재, 군사적 위협을 가한다면 결국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하메네이의 신념과 정체성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며, 이란과의 전쟁이 초래할 복잡성을 오판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메네이의 ‘순교 정치’ 간과한 미국
아라시 레이시네자드 터프츠대 조교수는 24일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순교 정치’라는 글에서 하메네이에게 항복은 전술적 조정이나 정책적 결과가 될 수 없으며, 그의 권력과 정체성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군사적 위협을 외교적 지렛대로 보고 있지만, 이란은 이념적 생존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두 국가가 완전히 다른 ‘전략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하메네이는 1979년 이란의 샤(국왕)를 몰아내고 이슬람공화국을 설립한 이슬람 혁명이 현재까지 계속되는 과정에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란 핵 프로그램은 생존이나 핵무기 보유 등 ‘억지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혁명 수호에 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서구에서 하메네이의 ‘순교의 정치’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군사적 위협을 통해 굴복적 합의를 받아내려는 것은 ‘생존이 최고의 가치’라는 전제를 깔고 있지만, 하메네이의 세계관에서 순교는 단순한 죽음이나 패배가 아니라 ‘도덕적 승리’로 신성시된다는 것이다.
레이시네자드 조교수는 “만약 하메네이가 미국이나 이스라엘과의 공격으로 사망한다면 그의 유산은 저항의 결과로 재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며 “위기에 처한 통치자에서 존엄성을 수호한 순교자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침체와 국민에 대한 탄압, 정치 개혁 저지 등 그의 재임 기간 동안의 실패가 순교를 통한 희생이라는 도덕적 서사로 압축될 수 있다.
또 하메네이가 순교할 경우 그의 후계자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줄 수도 있다. ‘순교자’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란 지도부는 약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국내 정치와 핵 정책을 재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란, 샤헤드 드론·미사일로 장기간 소모전에 유능
알리 하셈 런던대 로열 홀로웨이 연구원은 ‘미국은 이란을 위험할 정도로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글에서 최근 하메네이가 “전술적 자제”라는 표현 대신 “카르발라를 통한 대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한 점에 주목했다.
시아파 이슬람에서 카르발라 전투는 신앙의 핵심으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인 이맘 후세인이 압도적 병력의 군대에 맞서 굴복을 거부하고 끝까지 항전하다 순교한 사건을 일컫는다. 시아파 정치인에게 카르발라는 단순한 상징적 비유가 아닌 도덕적·정치적 규범으로, 실존적 위협에 맞서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는 다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제한적 공격은 ‘힘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덕적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대응해야 하는 공격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셈 연구원은 또한 이란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제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광범위한 군사력을 보유한 거대한 국가라는 점에서, 일단 분쟁이 시작된다면 사태 악화를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밀한 타격보다는 지속적 공격으로 상대방 전력을 소모시키는 전략에 능한 이란과의 분쟁은 단기간에 끝나기 어려우며 여러 전선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란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공급한 무인기 샤헤드가 정확도나 기술력은 떨어지지만 방어 체계를 소모시키는 데 강점을 보였다며 “우크라이나가 이란의 시험장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에서도 드론과 위력이 약한 미사일을 이용해 이스라엘의 방공망을 무력화하고, 더 강력한 미사일로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셈 연구원은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사이버 전쟁,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역내 대리세력을 이용해 전선을 수평적으로 확장시킬 것이며, 미국 공격으로 이란 지도부가 제거된다고 해도 이란이 이에 대비한 후계 구도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전시 체제에 기반한 지도부 결집을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25125500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22164600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241544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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