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95세 남편의 절규에 "조센진 돌아가라" 우익 단체 방해
10번째 후지코시 주총 찾아 "사죄와 배상을"
후지코시 "강제동원 없었고 끝난 일" 외면
"조센진 돌아가라" 몰려와 위협 가한 우익

"당신들이 아무리 도망가려 해도 후지코시를 전범기업으로 단죄한 판결은 변하지 않는다."
22년 전 세상을 떠난 배우자를 대신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 온 김명배(95)씨는 25일 일본 동북부 도야마현 도야마시 사옥에서 열린 '제143기 후지코시(일본 기계·부품 제조업체) 정기 주주총회'에 올해로 10번째 참석했다. 김씨는 일본 정부와 사법부의 계속된 역사 외면에 2013년부터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후지코시 도야마 사옥을 찾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를 제외하면 매년 직접 참석해 책임을 묻고 있지만, 후지코시는 "책임이 없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 후지코시 관련 소송을 지원하는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구로사와 쓰토무 후지코시 사장은 김씨의 비판에 "(한국인 노동자들을) 강제노동시키거나 임금을 미지급한 사실이 없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한 주주가 "2년 뒤 창업 100년을 맞는 만큼,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고 사죄해 피해자들의 마음을 풀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지만, 구로사와 사장은 "현재 회사와 관련 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며 말을 끊었다.

주주총회에 앞서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돕는 일본 시민단체 '호쿠리쿠연락회'는 김씨와 함께 사옥 앞에서 후지코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일본 전역에서 도야마를 찾은 시민단체 인사 20여 명이 함께 했다.
그러나 우익 단체가 여러 대의 대형 승합차와 스피커를 동원해 집회를 방해했다. 김씨가 마이크를 잡자 "조센진(한국인을 비하하는 은어)은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발언을 막았고, 집회 장소 앞까지 차로 돌진하는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이 이미 돈을 가져갔다", "불만이 있으면 한국 정부에 얘기하라"고 조롱하며 1시간 넘게 소동을 벌였다. 나카가와 미유키 호쿠리쿠연락회 사무국장은 우익 단체의 집요한 훼방에도 "일본의 강제동원과 인종 차별, 혐오 발언을 해결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며 "후지코시는 역사를 직시하고 사죄하라"고 외쳤다.

김씨가 100세까지 얼마 남지 않은 고령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매년 후지코시를 찾는 건 아내의 한을 풀어주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김씨의 아내 고(故) 임영숙씨는 일제강점기인 1945년 3월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일본인 담임 교사의 거짓말과 끈질긴 회유 끝에 초등학교 6학년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학업을 포기하고 후지코시 도야마 군수공장으로 가게 됐다. 그러나 임씨는 삼엄한 감시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임금을 달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일본의 패전 후 1945년 10월 고향에 돌아왔고, 7년 뒤 김씨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임씨는 남편에게조차 '근로정신대로 일본에 갔다 왔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픈 과거를 숨기고 살았지만, 70세가 된 2003년 용기를 내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도야마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생전 후지코시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이후 임씨를 대신해 후지코시와 싸우고 있다.

2013년에는 다른 유족들과 함께 원고로 참여해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24년 대법원이 후지코시의 배상 책임을 명령했다. 그러나 후지코시는 대법원 명령에 대한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김씨는 이에 "아내가 (대법원) 판결을 듣지 못한 게 너무 억울하다"며 "후지코시는 2003년부터 21년간 법정에서 다투고도 판결을 따르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후지코시가 법적, 역사적 책임을 버린 건 변함없는 사실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며 "배상을 이행하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만이 이를 해결할 방법"이라고 말했다.
도야마= 류호 특파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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