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앞세운 행정·법무·노무 ‘3사’가 뜬다…흔들리는 전문직 지형도

이태준 기자 2026. 2. 2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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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 대응이 송사 좌우…문턱 낮은 행정사 ‘특수’
“수백만원 변호사 선임료 부담”…법무사 찾는 시민들
‘소송 대리권’ 놓고 노무사-변호사 갈등도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왼쪽 위로부터)대한행정사회, 한국공인노무사회, 대한법무사협회 로고와 대한변호사협회(오른쪽) 로고 ⓒ시사저널 양선영 디자이너

검찰개혁에 따른 사법 환경의 변화로 인해 행정사·법무사·노무사 등 이른바 '법조 인접 직역'의 위상이 급부상하고 있다. 과거 변호사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영역까지 이들이 실속형 서비스를 앞세워 잠식해 들어가면서, 법조계 내부에서는 직역 침탈에 따른 위기감이 고조되며 인접 직역 통폐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분위기다.

25일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행정사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단계에서 수사가 종결되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초동 대응을 위해 행정사를 찾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수도권 일선 경찰서 주변에는 행정사 사무소들이 대거 밀집해 있으며, 사건 초기 단계부터 의뢰인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경찰 단계의 대응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행정사들의 입지를 넓힌 요인으로 분석된다. 행정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이아무개씨는 "단순 서류 대행만으로도 승산이 충분한 사건은 행정사를 통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며 "특히 법리적 해석보다 행정 실무 지침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일수록 행정사를 찾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사 업계 역시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변호사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매년 1700여 명의 신규 법조인이 배출되며 수임료 인하 경쟁이 붙었지만 여전히 수백만원대에 달하는 변호사 착수금에 부담을 느끼는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법무사를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다. 강릉에서 법무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원아무개씨는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원고가 증가함에 따라, 비교적 절차가 간소한 사건의 경우 변호사 대신 법무사를 선임하는 수요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노무사 분야도 노동자들의 권리의식 신장에 힘입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사내 인사팀과의 협의로 마무리되던 분쟁들이 이제는 노무사를 통한 법적 대응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전문가 조력을 통해 권리를 확실히 구제받으려는 욕구가 사내 해결 방식보다 전문적인 분쟁 해결 과정을 선호하게 만든 것이다. 수도권 소재 중견기업 인사팀 관계자 임아무개씨는 "과거와 달리 노사 간 분쟁 발생 시 사내 중재를 통한 해결보다는 노무사를 선임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노무사에게 소송대리권을 부여하자는 논의도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 지난 2022년 9월 류호정 당시 정의당 의원이 관련 내용을 담은 '공인노무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으며, 19대 국회부터 21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노무사의 소송대리권 확보를 위한 입법 시도는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직역 통폐합해달라" 법조계 '반발'

이처럼 법조 인접 직역들이 영역을 확장함에 따라 변호사 업계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사건 수임 난항으로 경영난을 호소하는 변호사가 늘면서 일각에서는 인접 직역 통폐합이라는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천의 A 변호사는 특히 시민들이 행정사의 업무 범위가 지닌 한계를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A 변호사는 "행정사를 통한 고소 업무는 피해자의 소송 대리가 아닌 단순 '고소장 작성 대행'에 불과하다"며 "수사 기관 조사 동석 등 실질적인 법률 방어권 행사는 변호사 선임을 통해서만 보장받을 수 있는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사의 경우 직역 침해와 관련한 비판도 제기된다. 부산의 B 변호사는 "재판상 소송 대리는 당사자나 가족, 회사 관계자 등 법령이 정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됨에도 불구하고, 일부 법무사가 대리권을 불법으로 행사해 공판에 참석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잡한 법리가 적용되는 사건에서 비전문적인 조언을 받을 경우 그 피해는 온전히 의뢰인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우려했다.

편법적인 소송 수행 관행도 문제로 지목된다. A 변호사는 "송달 주소를 법무사 사무실로 지정해 법원 서류를 직접 수령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소송 대리를 수행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이는 엄밀히 말해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다분함에도 법원 차원의 제재가 미비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노무사의 소송 대리권 요구에 대해서도 변호사 업계에선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노동 사건 경험이 풍부한 C 변호사는 "소송은 엄격한 법리와 절차적 요건을 갖춰야 하며 서면을 통한 주장에도 일정한 규범이 존재한다"며 "충분한 법률적 훈련 없이 변론에 나설 경우 재판부의 혼란을 초래하고 사법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C 변호사는 "변리사나 노무사의 업무는 본래 변호사의 직무 범위 내에 포함되어 있다"며 "매년 배출 인원이 누적되며 갈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정치권이 관련 직역의 이해관계를 의식해 입법적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024년 12월9일 조순열 변호사(현 서울변회장)가 60대 행정사 주아무개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발했다. ⓒ뉴시스

'세무노무법인'도 새 트렌드로

업역 경계의 붕괴가 전문직 간 갈등을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지만 이미 직역 간 유기적 결합을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파편화된 법률·행정 서비스에서 벗어나 복합적인 수요에 일괄 대응하는 '원스톱(One-stop) 전략적 파트너십'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최근 경영 현장에서는 노무사와 세무사가 협력 체제를 구축한 '세무노무법인'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했다. 이는 기업의 인사·노무 관리와 급여 정산, 조세 신고가 별개의 공정이 아닌 하나의 일관된 프로세스라는 점에 착안한 모델이다. 이 같은 통합 서비스는 의뢰인에게 행정 비용 절감이라는 실익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전문 영역의 데이터가 결합하면서, 단일 직종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법적 허점을 잡아낼 수 있게 된다.

허창덕 영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법조 인접 직역 종사자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세무노무법인'과 같은 서비스 모델을 창출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 교수는 이어 "전문직 간 경쟁이 심화할수록 소비자 측면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다만 직역 간의 소모적인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전문 영역에 대한 거시적인 차원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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