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과 ABS - 정파적 의제가 된 사법개혁의 비극 [취재파일]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KBO는 2024년에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를 도입했다. ABS는 인간 심판 대신 투구 궤적 자동 추적 장비가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하는 시스템이다. ABS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을 때는 여러 논란이 있었다. 프로 경기에 적용된 사례가 드물었기 때문에 전면 도입하면 혼란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경기장 시설을 보수하고 심판 장비를 마련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기존 판정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던 선수와 심판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KBO는 우선 2군 리그에서 4년 동안 ABS를 시범 운영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2군에서 테스트를 하면서 여러 오류를 수정한 후 비로소 2024년부터 1군 리그에 ABS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전면 도입 초기에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지만 선수와 팬 모두 점차 ABS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ABS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 4년 테스트 후 도입한 ABS…재판소원 제도는 갑자기?
■ 행정재판 등에만 우선 적용하는 방안의 3가지 장점

이와 같이 일부 재판에 대해서만 재판소원 제도를 우선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세 가지 구체적인 장점이 있다.
첫째, 갑작스러운 전면 도입에 따른 혼란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현재 헌법재판소의 규모와 업무 처리 방식은 재판소원이 전면 도입될 경우 폭증할 업무량을 소화하기 어렵다. 헌재가 재판을 취소하고 법원이 새로운 판결을 하기 전까지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세부적 규정 등 당장 실무적으로 큰 혼란을 초래할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행정재판 등 일부 영역 재판과 관련해서만 재판소원을 우선 도입한 후 성과를 검토해 확대 여부를 재논의한다면 예상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혼란을 줄이기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법원과 헌재 양쪽 모두에 긍정적 자극이 될 수 있다. 4년 정도 행정재판 관련해서만 재판소원을 도입한 이후 성과를 검토해서 확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면, 우선 법원의 판사들이 행정재판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헌재가 법원의 행정재판 판결을 재판소원을 통해 여러 차례 취소하고, 그 결과 국민 편익이 커졌다는 여론이 형성된다면, 4년 뒤 재판소원의 확대를 막을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헌재 역시 재판소원 전면 확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주어진 시간 동안 국민 기본권을 더욱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가능성이 높다. 4년이라는 테스트 기간은 법원과 헌재 양쪽 모두 보다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인센티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재판소원이라는 중대한 사법개혁 의제의 정파화를 막을 수 있다. 특히 재판소원 도입이 현직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해소를 위한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선거법이나 형사소송법 같은 '게임의 규칙'에 해당하는 법률을 합의 없이 처리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게임의 규칙이 정파적 의제가 되면 소수파가 결과에 승복할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사회 분열이 심화될 뿐만 아니라 의회 구성이 달라질 때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 제도가 극단적으로 변경되는 불안정한 상황이 초래된다. 일정 기간 행정재판 등 특정 영역에서만 재판소원을 도입한 이후 성과를 검토해 전면 확대 여부를 결정하자는 방안은 극단적 갈등과 정파적 공방의 여지를 줄이는 중재안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형사재판이 아닌 영역에 대해서만 재판소원을 우선 도입하자는 것은 현직 대통령의 형사재판을 염두에 두고 재판소원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일각의 의심을 불식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다 한다. 재판소원 도입이라는 중대한 사법개혁 의제가 현직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정파적 공방의 소재가 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 재판소원 의제의 정파화가 불러올 비극
재판소원 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대법원 주장대로 '희망고문'과 '소송지옥'으로 이어질지, 헌재 입장대로 기본권 보호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국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구제하는 계기가 될지, 누구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그럴수록 행정재판과 같은 일부 영역에서 재판소원 제도를 우선 테스트한 이후 전면 도입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자는 주장의 설득력은 커진다. 적어도 야구에서 ABS 도입을 결정할 때만큼의 신중함이 재판소원 문제에 대해서도 요구되는 것 아닐까? 형사재판을 포함한 모든 재판에 재판소원을 당장 도입해야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선 일부 영역에서 신중한 테스트와 검토를 거친 이후에 재판소원 전면 확대 여부를 결정하자는 방안을 배척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임찬종 법조전문기자 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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