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 시대의 종말, 40분 만에 16일 날씨를 읽는 인공지능의 등장
- 0.3% 컴퓨팅 자원으로 전통 모델을 넘어선 기상 예측의 패러다임 전환
- 재난 대응의 6시간 법칙, 인공지능이 다시 쓴 생존의 시간 방정식

■ 물리 방정식의 제국, 무너지다
날씨를 예측한다는 것은 대기라는 거대한 유체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일이다. 온도, 습도, 기압, 바람의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편미분방정식을 푸는 작업. 이것이 1950년대 이후 기상학의 핵심이었다. 지구를 가로세로 수십 킬로미터 크기의 격자로 나누고, 각 격자마다 대기의 상태를 계산한다. 격자를 촘촘하게 할수록 정확도는 높아지지만, 계산량은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그래서 각국 기상청은 수백억 원짜리 슈퍼컴퓨터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 기상청의 5호기는 25.7페타플롭스 성능으로 2020년 도입 당시 세계 25위권이었다. 일본은 130페타플롭스급, 미국은 그보다 더 큰 시스템을 운영한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컴퓨터도 10일 이상 예보의 정확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대기는 카오스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5년, NOAA가 공개한 AIGFS는 이 한계를 다른 방식으로 돌파했다. 과거 40년간 축적된 기상 관측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은 방정식을 풀지 않고도 대기의 패턴을 포착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기존 GFS 대비 컴퓨팅 자원 0.3% 사용, 16일 예보를 40분 만에 완성, 열대 저기압 이동 경로의 장기 예측 정확도는 전통 모델을 초월했다.
물론 한계도 있다. 태풍 강도 예측에서는 여전히 물리 모델이 우세하다. 하지만 NOAA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31개 시나리오를 생성하는 AI 앙상블 AIGEFS, 그리고 물리 모델 GEFS와 AI 모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 HGEFS를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했다. HGEFS는 62개 멤버로 구성되며, 단일 모델보다 예보 기간을 18~24시간 연장하는 성과를 냈다.
■ 우리의 선택,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
한국은 다른 길을 택했다. 정확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신뢰성이다. 기상청은 2019년부터 독자 AI 모델 개발에 착수해, 2024년 7월 '나우알파'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모델의 특징은 '설명 가능성'이다.
대부분의 AI는 왜 그런 예측을 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입력 데이터가 들어가면 결과가 나오지만, 중간 과정은 수백만 개 뉴런의 복잡한 연산으로 가려져 있다. 예보관은 이 결과를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KAIST AI대학원 최재식 교수팀이 개발한 나우알파는 다르다. '태풍', '장마전선', '저기압' 같은 기상학적 근거를 함께 제시한다. 예보관은 AI의 논리를 검증하고, 필요하면 수정할 수 있다.

시간대별로 최적 모델이 다르다는 이 발견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결국 미래 기상청은 물리 모델과 AI 모델을 시간대별·현상별로 조합해 사용하게 될 것이다. 한국 기상청은 2026년까지 동아시아 최적화 중기 모델(14일 이상)을, 2029년까지 범용 고성능 AI 시스템을 완성할 계획이다.
■ 위기 대응 시간, 20분에서 4시간으로
"기후 위기로 재난이 발생하면 사람들을 대피시키거나 도로를 차단하는 데 최소 6시간이 필요하다." 이혜숙 과장의 이 말은 초단기 예보가 왜 생명과 직결되는지를 보여준다. 기존 기상 레이더는 20분~2시간 앞의 비를 예측했다. 이것으로는 대규모 인명 대피가 불가능하다.
홍콩과기대 수휘 교수팀이 2026년 1월 발표한 DDMS 모델은 이 한계를 돌파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뇌우와 집중호우를 최대 4시간 전에 포착한다. 중국 기상국과 공동 개발한 이 모델은 펑윈4호 위성의 적외선 밝기 온도 데이터를 학습해, 15분마다 새로운 예측을 생성하며 정확도를 15% 이상 끌어올렸다.
위성 데이터를 사용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레이더는 비구름이 형성된 후에야 감지하지만, 위성은 대류 활동 초기 단계부터 관측한다. 수 교수는 "위성은 구름 형성을 다른 어떤 시스템보다 빠르게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은 2025년 최고 등급 폭우 경보를 5회, 차상위 경보를 16회 발령하며 관측 사상 최다 기록을 세웠다. 기후변화가 만든 새로운 일상이다.
■ 유럽과 실리콘밸리의 각축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는 2025년 2월 AIFS 모델을 실전 투입했다. 자사 물리 모델의 과거 결과를 AI에게 학습시킨 이 시스템은, 열대 저기압 경로 예측에서 최대 20% 성능 개선을 달성했다. ECMWF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예보 정확도를 자랑하는데, AI로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이다.
구글 딥마인드는 GenCast와 WeatherNext 2로 15일 예보의 속도와 정밀도를 극대화했다. 엔비디아는 StormScope를 통해 킬로미터 단위 국지 폭풍 예측에 집중한다. 엔비디아 제프 아디 수석 엔지니어는 2025년 9월 제주 포럼에서 "기후 변화 예측은 CEO 젠슨 황이 직접 챙기는 최우선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 기술 접근성, 100억 원에서 100만 원으로

AI 기상 예측의 진정한 혁신은 여기에 있다. 전통 수치예보는 100억 원 이상의 슈퍼컴퓨터가 필수다. 개발도상국은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반면 AI 모델은 한 번 학습되면 일반 GPU 서버로도 실행된다. 엔비디아가 오픈소스로 공개한 Earth-2 플랫폼, 구글의 GraphCast, 한국 기상청의 국제 협력 프로젝트는 모두 이 방향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슈퍼컴퓨터를 보유한 소수 선진국만이 정밀 예보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제는 개도국도 오픈소스 AI와 보급형 하드웨어만 있으면 자국 기후 특성에 맞는 예보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기상 예측의 기술 장벽이 해체되고 있다.
■ 정부 지원, 엇갈리는 명암
한국 기상청의 투자는 체계적이다. 2026년까지 동아시아 중기 모델, 2029년까지 범용 시스템 개발이라는 '국가 기후적응 역량 강화' 국정 과제도 시행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혼란스럽다. 국립과학재단(NSF)이 2,000만 달러를 투입한 AI 기상연구소는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 예산 삭감으로 존폐 위기에 몰렸다. 국립기상청(NWS)의 AI 번역 프로젝트는 장기 계획 부재로 예산이 40% 깎였다. AI 기상 예측 분야를 선도하는 미국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연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 아직 남은 과제들
완벽한 기술은 없다. NOAA는 태풍 강도 예측, 한국 기상청은 1시간·6시간 단기 예측, ECMWF는 전례 없는 극한 기상 예측에서 개선 여지를 인정했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기 때문에, 데이터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유형의 극한 기상을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설명 가능성 문제도 여전하다. 대다수 AI 모델은 판단 근거를 드러내지 않는다. 왜 그런 예측을 했는지 설명하지 못하면, 예보관은 AI를 맹목적으로 신뢰하거나 무시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나우알파가 이 문제 해결을 시도하지만, 글로벌 표준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 변화의 시작점
2026년 현재, 날씨 예측은 역사적 전환기를 맞았다. 70년간 지속된 슈퍼컴퓨터-물리방정식 체제는 끝나가고 있다. AI는 단순히 보조 도구가 아니라, 예보 시스템의 핵심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유럽, 한국, 중국, 홍콩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혁명에 동참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극한 기상이 일상화되는 시대, 더 빠르고 정확한 예측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리고 그 기술이 소수 선진국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엔비디아의 오픈소스 공개, 구글의 GraphCast 배포, 한국 기상청의 개도국 기술 이전 노력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다. 날씨 예측은 이제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누려야 할 권리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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