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선 갑상선 들어낼 뻔, 한국 오니 "암 아냐"... 가로수길엔 '붕대쇼핑족' [K관광 2000만 시대]
2024년 외국인 환자 117만명, 최대 기록
암 수술 외 미용·관광 접목 여행객도 많아
외국인 환자 수 1위 성형외과서 피부과로
"강남 유명 병원들 외국인 위주로 운영 중"
귀국 후 관리 지속할 원격진료 시스템 필요

12일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진료실. 일주일 전 갑상선암 의심 종양을 떼내는 로봇수술을 받은 촐로바타르 어드게럴(43)의 얼굴에 안도감이 번졌다. “조직 검사 결과, 암이 아니라 양성 종양”이라는 의사의 말에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몽골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어드게럴은 마음고생이 심했다. 갑상선 왼쪽에 8㎝ 크기의 종양이 식도를 눌러 불편함이 컸지만, 몽골 내 여러 병원에 다녀도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없었다. 한 병원에선 암일 수도 있다며 목을 길게 째고 갑상선 전부를 들어내는 수술을 권했다.
평생 안고 가야 할 흉터와 후유증을 걱정하던 그는 고심 끝에 한국행을 택했다. 어드게럴은 “중국이나 튀르키예에서 수술받는 것도 고민했지만, 한국 의료기술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특히 한국에서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친구가 적극 추천했다”고 말했다.
갑상선 일부를 절제한 로봇수술 직후 식도를 짓누르던 이물감이 씻은 듯 사라진 어드게럴의 목에는 어떤 흉터도 남지 않았다. 갑상선 로봇수술은 겨드랑이나 입으로 기구를 삽입하기 때문에 목에 흉터가 생기지 않는다. 암에 대한 공포를 떨치고 이날 귀국길에 오른 그는 두 달 뒤 경과 관찰을 위해 다시 한국에 올 예정이다.
성형외과 입구에 6개 국어 안내문
‘K열풍’이 의료계에서도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외국인환자 유치실적 통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117만 명(2024년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1.9배 급증한 수치다. 202개국에서 온 외국인 환자 중 일본인(44만 명)이 가장 많았고, 중국인(26만 명)과 미국인(10만 명)이 뒤를 이었다. 외국인 환자와 그의 가족이 쓴 의료비용과 관광 지출은 7조5,000억 원에 달한다.
암 진료나 수술 외에 미용과 관광을 접목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많다. 11일 찾은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선 ‘K의료관광’의 현주소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피부과‧성형외과가 즐비한 이곳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거나 두꺼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화장품 쇼핑에 열을 올리는 외국인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 대형 헬스앤뷰티(H&B) 스토어에 들어서자, 안면윤곽 수술을 받은 듯 머리 전체를 압박 붕대로 감싼 외국인이 계산대에서 능숙하게 현금을 내밀고 있었다. 코 성형수술을 한 젊은 외국인 남성이 매장 직원에게 번역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화장품 위치를 묻기도 했다. ‘얼굴에 붕대를 감은 외국인 환자가 얼마나 오냐’는 질문에 매장 직원은 “숫자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고 답했다. 인근 성형외과 출입구에는 6개 언어(영어‧일본어‧중국어‧태국어‧인도네시아어‧러시아어)로 된 안내문까지 붙어 있었다.

외국인 환자가 급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강경호 이화여대의료원 국제의료사업단장(이대서울병원 갑상선센터장)은 “체계적인 감염 관리, 합병증 최소화 등 질 높은 한국의 의료 수준이 널리 알려진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의 ‘2024년 한국 의료서비스 해외 인식도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6명(59.8%)은 ‘향후 의료서비스 이용, 의료관광 목적으로 한국을 재방문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론 ‘우수한 의료기술과 치료 효과’(60.1%), ‘최첨단 의료장비와 시설’(51.1%)을 꼽았다. 검사부터 진단·치료까지 동일 기관에서 신속하게 진행되는 시스템, 상대적으로 가까운 공항 접근성도 매력 요소다.
외국인 환자 68%가 피부과·성형외과
진료과목 중에선 ‘K뷰티’를 등에 업은 피부과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피부과 방문 외국인 환자는 2019년 8만5,163명에서 2024년 70만5,090명으로 5년 만에 8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성형외과 환자 수도 9만494명에서 14만1,845명으로 약 57% 늘었으나, ‘외국인 환자 1위’ 자리는 피부과에 내줬다. 박주혁 더힐피부과 대표원장은 “코로나19 이후 중국 의료관광객 선호가 성형수술에서 피부 시술로 변했다”며 “강남의 많은 유명 병원이 외국인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선 믿을 만한 미용의사를 찾기 어려운 점도 한국행을 택하는 이유"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K의료관광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현재는 외국인 환자의 절반 이상(2024년 기준 68%)이 피부과(56.6%)와 성형외과(11.4%)에 쏠려 있다. 강 단장은 “단기 치료 외에도 정밀 건강검진과 사후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환자가 시술·수술 후 본국으로 돌아가도 원격진료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받는 시스템을 마련하면, 한국 의료 신뢰도를 높여 신규 환자 유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의료관광 업무가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법무부 등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말레이시아는 의료관광위원회(MHTC), 튀르키예는 국제보건서비스공사(USHAS) 같은 전담 부서를 중심으로 의료관광 진흥에 나서고 있다. 이관영 야놀자리서치 부연구위원은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 신설과 투명한 시장 생태계 조성, 사후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한국 의료관광은 미용 중심의 단편적 시장에서 벗어나 중증질환 치료와 장기 환자 관리가 가능한 다층적 산업 구조로 진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상 속으로, K관광 2000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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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두피 관리실, 점집까지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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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외국인 관광객이 지갑 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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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한국 또 오게 하려면 이걸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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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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