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기소만 100건인데…‘양형기준’ 없는 중처법
올해 100건 이상 관측에도…양형기준 無
유사사건에도 징역·집행유예 판단 엇갈려
양형위, 설정 착수에…예방 조치 반영 의견
당근·채찍 병행하는 중처법 패러다임 바꿔야

중대해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 지난해 100건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식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 늘면서 충분한 판례가 쌓이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양형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죄의 무게를 재는 기준인 양형기준이 설정돼야 재판부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이른바 ‘고무줄 판결’을 막고, ‘기업들의 안전 조치 등 예방 활동으로 중대재해를 막는다’는 중처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5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97건에 달했다. 이는 2024년(43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중처법 시행 첫해인 2022년(11건)보다 9배나 급증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해마다 현장 사고나 질병 발생에 따른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올해 100건을 돌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마다 200~300건가량 재판에 넘겨지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만큼 사건 수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212건이다. 2023년 394건에 이어 2024년에도 315건을 기록하는 등 다소 줄고 있는 추세지만 해마다 200건 이상이 재판에 넘겨지고 있다.
문제는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중처법의 경우 여전히 양형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의 경우 2016년 7월 1일부터 양형 기준이 설정돼 시행 중이다. 산업안전보건 범죄 가운데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의 경우 기본형은 6월~1년 6개월이지만 가중 요소 적용 시 1년~2년 6개월, 감경 요소가 반영되면 4월~8월로 처벌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 또 근로자가 사망한 때의 기본형은 1년~2년 6개월이지만 가중 요인이 적용되면 2년~5년으로, 반대로 감경 요인이 감안되면 형량은 6월~1년 6개월로 바뀔 수 있다.
반면 중처법 위반 사건의 경우 지난해 기소 건수가 100건에 육박했지만 양형 기준이 없는 탓에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 재판부의 판결을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해 9월 협력업체 직원이 작업 과정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과 관련, 삼강에스앤씨 전 대표이사 A 씨와 법인에 대해 각각 징역 2년과 벌금 20억 원을 선고했다. 반면 인천지법은 같은 해 10월 현장 근로자의 추락·사망 사고로 기소된 금속 가공 제품 제조업체 대표 B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같은 사망 사고가 발생했지만 한 쪽은 징역형을, 한쪽은 집행유예를 받은 셈이다. 이에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기준 설정 작업을 시작했지만 빨라도 내년에나 기준 마련이 가능해 법조계에서는 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근로자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중처법 위반 사건 기소 건수는 해마다 급증할 수 있다”며 “양형 기준이 설정돼 있지 않다 보니 재판부에 따라 징역형·벌금 등 처벌 수위의 편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양형기준 설정 작업에 돌입하자, 법조·산업계 안팎에서는 중대재해 사전·사후 조치 등을 감경 사유로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존 판례에서도 중대재해 발생 이전은 물론 이후의 안전 조치 등 적정한 대응에 나섰는지를 처벌의 수위를 결정하는 데 반영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인천지법은 지난해 11월 중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C사 대표이자 경영 책임자인 D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피해자 유족과의 원만한 합의·처벌 불원과 함께 산업안전진단협회의 안전진단 결과 보고서에 따라 사업장 문제점을 개선한 점을 감형 사유로 제시했다. 또 정기적 안전 교육을 실시하는 등 안전보건관리 조치를 강화한 점도 유리한 사유로 꼽았다.
노동 분야의 한 변호사는 “기업에서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부분은 물론 유사한 공정에 대해서도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등 공장 전체 시스템에 대해 점검한 뒤 개선 조치에 나선다”며 “특정 공정에서 사고 위험성을 제거한다는 측면에서 자발적으로 사전·사후 조치에 착수한 부분은 충분히 형의 감경 사유로 인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정부·여당이 처벌 강화 위주의 정책을 추진했으나, 실제 중대재해가 줄고 있지 않은 만큼 이른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식으로 중처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안현덕 법조전문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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